픽스-업 소설 지구연대기(파트 2)
날씨가 미쳤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시뻘겋게 부푼 태양이 온 세상을 거대한 불가마 안으로 밀어 넣어버린 듯했다. 숨만 쉬어도 온몸에서 땀방울을 토해냈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이 뜨겁게 달궈진 프라이팬 위로 떨어지는 식용유처럼 희뿌연 시멘트 바닥 위로 후드득 떨어졌다. 순간 치익치익 소리와 함께 솟아나는 흰 연기를 본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날달걀 하나 떨어뜨리면 그대로 맛 좋은 달걀부침이 될 것 같은 날씨다. 하긴 지난해부터 뜨겁게 달궈진 자동차 보닛 위에 달걀부침을 만들어 먹는 콘텐츠가 먹방 좀 한다하는 유튜버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슈퍼카 가격과 '좋아요' 수는 정확히 비례했다. 태양을 가리켰는데 사람들은 손만 쳐다보았다. 몇 해 전부터 남부지방의 몇몇 도시가 아프리카보다 더 더워졌다고 하루가 멀다고 머리기사를 장식하더니 한두 해 전부터는 서울 더위도 만만치 않다는 게시물들이 SNS에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가장 화제가 된 사진은 강남 한복판에서 아스팔트가 땡볕에 녹아내려 도로가 봉긋이 솟아오른 사진이었다. 원인 모를 싱크홀이 여러 차례 발생했었지만, 지독한 무더위로 다른 도시도 아닌 서울에서, 그것도 테헤란로 도로 표면이 뒤틀리는 이변은 처음이었다. 사람들은 불빛을 발견하고 달려드는 나방 떼처럼 공감을 누르고 사진을 퍼 나르고 지구가 뜨거워진다는 현실에 열변을 토했다. 빨리 뜨거워진 프라이팬은 금방 식었다. 한여름의 소나기 같았던 관심은 이내 사그라들고 불볕더위는 삶의 일부가 되었다. 사계절이 뚜렷하다는 말은 교과서에나 나올 뿐 봄과 가을은 하루살이가 꾸는 달콤한 내일 꿈과 같았다. 곁에 왔나 싶으면 어느새 멀리 달아났다.
뜨거워진 대한민국에서도 무덥기로 손꼽히는 이곳 제주의 날씨는 덥다는 말로는 참모습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불가마 안에 들어앉아 입안까지 얼얼해지는 불닭볶음면을 먹는 기분이랄까.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까지 더워 죽겠다고 아우성쳤다. 평소 같으면 뙤약볕이 날파리 떼처럼 죽어라 덤벼드는 날씨에 야외 활동을 한다는 건 어림도 없었다. 변변한 그늘 하나 없는 항구에서 30분째 허수아비처럼 서 있으려니 가슴 속에서도 열불이 났다. 이 모든 게 동생 때문이다. 정호민. 사사건건 인생을 방해하는 재수 없는 녀석 말이다. 한동안 MMO 슈팅 게임에 푹 빠져 살더니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얼마 전부터 바다낚시 콘텐츠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제주로 여행 가면 가장 하고 싶은 걸 하나씩 해보자는 아빠 제안에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바다낚시를 외쳤다. 한여름에 바다에서 물놀이하는 것도 아니고 낚시가 웬 말인지. 배 타는 것도 싫었지만, 물컹한 물고기를 만지는 건 더 싫었다. 비릿한 냄새도 나와는 영 맞지 않았다. 손사래를 치는데 엄마가 덜컥 동생 편을 들었다. 오랜만에 함께 하는 가족 여행에 형제간의 우애니, 화합이니 닭살 돋는 의미를 부여해 온 가족이 똘똘 뭉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치사하게 최신형 애플 워치를 인질 삼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시원한 호텔 방에서 혼자 에어컨 빵빵하게 틀고 다음 학기 예습에 한창일 텐데, 굳이 이 더위에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끌고 나와 고생시킨다. 이상하게 엄마는 다른 아줌마들과는 달리 고1 아들을 조금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공부해야 한다는 핑계도 통하지 않았다. 여름 방학 때 적당히 쉬지 않으면 공부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나. 도대체 무슨 논리인지 모르겠다. 정오에 출발하기로 한 낚싯배가 항구에 묶인 채 꾸벅꾸벅 졸았다. 잠깐 얼굴을 내비친 선장님은 급하게 확인할 일이 있다며 10분만 기다리라더니 30분이 넘어도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기상관측 이래 최고로 무더운 날이라는데 졸지에 뙤약볕에서 극기 체험 중이다. 애꿎은 생수병만 축냈다. 이런 날씨에는 에어컨 빵빵한 스터디 카페에서 새콤달콤한 복숭아 티 마시며 수학 문제나 풀면 제격인데 왜 꼭 다 함께 제주도에 와서, 하고 싶지 않은 바다낚시를 해야 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다. 요즘이 어느 땐데 가족의 화목을 들먹인담. 아무튼 이 모든 게 꼴도 보기 싫은 저 녀석 때문이다. 아까부터 뭐가 그리 신나는지 주인 없는 배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설레발치고 있다. 아, 맞다. 원래 생각이 없었지. 속으로 거친 말들을 쏟아내려는 순간 후덥지근한 바닷바람을 헤집고 밥맛 없는 목소리가 허공을 가로질렀다.
“저기 선장님 오신다! 드디어 출발하나 보다! 바다야, 기다려. 낚시왕이 나가신다. 누구는 물고기도 못 만지면서 무슨 낚시를 한다고. 뭐 내 알 바 아니지만.”
“야! 시끄러워. 여기 너밖에 없냐? 적당히 좀 해라.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니가 뭔데 참견이야! 내 입으로 말하는데.”
“니? 형한테 니가 뭐야?”
“어쩔티비!”
“이게, 정말! 혼나고 싶어?”
“자신 있음 덤벼보든가.”
“정주민, 정호민 그만.”
챙 넓은 하늘색 소풍 모자를 쓰고 연신 땀을 닦아내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던 엄마 얼굴이 순간 얼음장처럼 변했다. 차분한 목소리와 달리 사정없이 두 눈에서 쏘아대는 광선에 온몸이 따끔거리는 듯했다. 스콜이 퍼부으면 재빨리 피해야 하는 법, 이럴 때는 얼른 입 다무는 게 현명하다. 이번 여행의 목적이 가족 간 화합이라더니 쌩쌩 부는 칼바람은 여전하다. 오죽하면 매사에 어긋나는 동생과 한 목소리로 엄마를‘눈의 여왕’이라고 부를까. 그나저나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을 어떻게 손봐줘야 할까. 형한테 감히 너라니. 용서가 안 된다. 언제나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밉상에 자기 세계에 콕 처박혀 주위 시선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얼마 말대로 백번 양보해 자유분방한 성격이라지만, 하는 행동을 보면 확실히 정상은 아니다. 안 보면 마음 편한데 매번 형제라는 족쇄로 엮이니 티격태격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사과가 익으면 땅으로 떨어지고, 100℃에서 물이 펄펄 끓듯이 녀석과의 다툼도 자연법칙이 되었다. 지금도 둘만 있었다면 한바탕했을 게 틀림없다. 남들 시선도 있으니 인격적으로 완벽한 이 몸이 참을 수밖에. 아무튼, 정말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이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