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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날 부린 사치

내 생일에 나에게 준 선물은?

by 조이홍

6월에는 생일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가까이는 아이 둘이 모두 6월생입니다. 둘째 아이는 6월 14일, 첫째 아이는 6월 24일입니다. 정확히 가운데 낀 제 생일은 6월 19일입니다. 일가친척 중에는 작은 아버지와 큰 매형도 6월생입니다. 친한 대학 선후배와 회사 동료 중에도 6월생이 차고 넘칩니다. 너무 덥지도 너무 춥지도 않은 6월은 아기가 태어나기 좋은 달인가 봅니다.


생일자가 너무 많으니 대체로 생일 선물은 '퉁'칩니다. 다들 유리 지갑뿐인 직장인이고 대부분 일가를 이루었으니 다른 사람 생일 선물까지 하나하나 챙기면 허리가 휠지도 모르니까요. 따뜻한 말 한마디로 마음을 전하는 것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루었습니다. 섭섭한 마음이 들어설 자리는 없었습니다.


참 우프게도 생일에는 왜 그리 바쁜지 모르겠습니다. 한창 바쁠 때는 온종일 쫄쫄 굶었습니다. 한두 해가 아니었습니다. 유일한 행복은 퇴근하면서 아내가 좋아하는, 제 생일인데…, 떡볶이와 순대를 사들고 와 돌려보기로 '무한도전'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사치를 부리면 와인 한 잔을 곁들이기도 했지만, 많은 날 우리 손에는 캔 맥주 하나가 들려 있었습니다. 미역국은 앞뒤로 실컷 먹으니 제 생일에는 살짝 건너뛰어도 상관없었습니다. 떡볶이와 순대, 그리고 캔 맥주만으로도 삶은 충만했습니다.


어제, 그러니까 생일에 청담동 & 압구정도 일대로 외근 나갔다가 '생일 선물 받아 본 게 언제였던가?' 하는 질문이 뜬금없게도 떠올랐습니다. 제가 저 자신에게 주는 특별한 선물이요. 결혼 전에는 가끔 그런 사치(?)를 부렸습니다만 까맣게 잊고 살았습니다. 청담동과 압구정 일대의 명품 매장을 지나다니니 아마도 가슴 깊은 곳에 있던 욕망이 꿈틀거렸나 봅니다. '그래, 앞자리가 바뀐 생일이잖아. 열심히 살았으니 나한테 선물 하나 해도 되지 않아?' 싶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벼르고 있던 게 하나 있었습니다.


차를 몰아 매장을 찾았습니다. 눈에 잘 띄지 않았습니다. 내비게이션을 켰더니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그 매장이 있었습니다. 주차하고 매장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눈이 휙휙 돌아갈 정도로 녀석들이 화려한 자태를 뽐냈습니다. 너무 비싸서, 일본제라서 그동안 애써 외면하던 녀석을 덥석 집었습니다. 손이 부르르 떨렸습니다. '정말 이래되 될까?' 싶었습니다. 기왕 마음먹은 거 내지르기로 했습니다. 계산대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신용카드와 함께 녀석을 내밀었습니다.


"4,800원입니다."


생일날 저 자신에게 준 선물은 4,800원짜리 일본제 삼색 볼펜입니다. 리필도 가능해 분실하지 않는 한 거의 무한대로 쓸 수 있는 어마어마한 녀석입니다. 필기감은 또 얼마나 좋은지요. 맛 들인 아이들이 자꾸 제 것을 뺏어가서 더 이상 구입하지 않았더랬습니다.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모나미 볼펜을 사용했지요. 물론 모나미 볼펜도 품질 좋고 필기감 뛰어납니다. 그래도 15년 이상 제 필기구가 되어준 녀석과 견줄 수는 없었습니다. 개인 취향입니다.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했습니다. 이 녀석만큼은 아이들에게 빼앗기지 않으리라 다짐했습니다. 생일날 제가 저 자신에게 준 특별한 선물이니까요.

삼색볼펜.jpg

<사진 출처 : 에르메스 코리아 홈페이지 / 문제 되면 삭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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