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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안 되고 지금은 된다고?

생애 첫 안경을 맞췄습니다.

by 조이홍

한 시간 만에 끝난 '질풍노도'의 시기, 사춘기. 일찍 철든 탓이었습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고 그렇지 않아도 고된 삶을 살아가는 어머니를 흔드는 무리(?)에 동참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소심한 반항 몇 번은 있었더랬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안경'입니다.


중학생 시절, 제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너무 못 생겨 보였습니다. 어린 마음에 짜낸 대안은 머리를 기르거나 안경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으로라도 맨 얼굴을 가리고 싶었던 것이죠. '소학교' 시절은 아니지만 머리를 기르는 건 학교에서 허락지 않았습니다. 겁 많은 모범생이었던 저는 교칙을 위반할 용기조차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희망은 안경밖에 없었습니다.


얼굴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했습니다. 책도 교과서도 얼굴에 바짝 붙여 읽었더랬습니다. 일부러 조명도 희미하게 맞췄습니다. 그렇게 한 달을 보냈습니다. 시력이 엄청 떨어졌으리라 믿었습니다. 웬걸요. 좌, 우 1.5 시력은 울산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정말 남은 건, 칠판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거짓말뿐이었습니다.


결국 어머니 손에 이끌려 안경점에 갔습니다. 거짓말도 일관되게 하면 통할 텐데, 고도로 숙련된 안경사 아저씨의 난해한 질문의 벽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시력이 워낙 좋아서 안경 쓸 필요가 없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결국 마음에 안 드는 얼굴, 못 생긴 얼굴로 살아가야 했습니다. 소심한 반항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2년 전, 노안이 온 듯해 안과에 검사를 받으러 갔습니다. 좌, 우 시력은 1.2였습니다. 눈 하나는 정말 끝내준다고 생각했습니다. 시력과 별개로 노안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원장님은 안경은 천천히 쓰는 게 좋다고 했습니다. 일찍 쓰면 노안이 더 빠르게 진행된다고 하더라고요. 어제 외근 나갔다가 갑자기 상품 라벨을 읽을 일이 생겼는데 도무지 읽을 수 없었습니다. 조명이 다소 희미하기도 했지만 이렇게 안 보일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노안이 급격히 진행되었나 봅니다.


퇴근 후 안경점에 들렀습니다. "이 정도면 생활이 무척 불편했을 텐데 참 잘 참는 분이시네요."라는 핀잔 같은 칭찬을 들었습니다. 여러 가지 검사를 거친 후에 결국 생애 첫 안경을 맞췄습니다. 중학교 때 그렇게 쓰고 싶었던 안경인데, 40대 후반이 되니 얼마나 쓰기 싫던지요. 안과 원장님 말씀을 금과옥조로 삼으며 최대한 안경 쓰는 시점을 늦추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더 늦추면 급속도로 나빠질 수도 있다고 안경사님이 부드러운 말투로 경고했습니다. 경고도 경고지만, 이제 안경을 쓰지 않으면 카톡을 읽을 수 없습니다. 그날그날 컨디션에 따라 다르지만 못 읽는 날이 더 많아졌습니다. 새로 받은 명함의 너무 작은 휴대폰 번호도 읽을 수 없습니다.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다행히 아직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니까요. 처제와 아내가 얼굴에 딱 맞는 안경테를 골라주었습니다. 철없던 시절 때처럼 얼굴이 마음에 안 들면 좋겠지만, 지금은 제 얼굴에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자포자기는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내와 (말은 안 듣지만) 아내를 닮은 아들 둘을 얻었으니까요. 새로운 사실도 하나 알게 되었습니다. 제 얼굴이 무척 커 가장 큰 안경테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요. 반백년을 살면서 더 이상 새로운 경험은 없으리라 믿었는데 아닙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백 세 시대, 어쩌면 저는 여전히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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