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놈놈놈

불량한 놈, 얍삽한 놈, 착하지만 덜 떨어진 놈

by 조이홍

4교시 수업을 끝낸 철수와 영식이 도망치듯 교실을 빠져나옵니다. 오늘은 2 분단이 청소 당번인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칩니다. 이들이 향하는 곳은 홍콩영화를 동시 상영하는 중앙극장입니다. 무려 상영작이 천녀유혼과 영웅본색이니 두 아이들이 서두를만합니다. 국민학교 4학년 때 한 반이 된 이후로 철수와 영식은 단짝이 되었습니다. 홍콩영화를 좋아하고 주윤발과 장국영, 왕조현의 브로마이드를 모으는 취미가 같다는 것이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을 더욱 끈끈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학교에서 중앙극장까지 큰길로 뛰어가면 30분이나 걸립니다. 영화 상영 시작 시간에 도저히 맞출 수 없습니다. 천녀유혼 첫 장면을 어떻게 놓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은 골목골목 지름길을 택합니다. 평소라면 절대 가지 않을 길이지만 오늘은 어쩔 수 없습니다. 왕조현 누나를 만나러 가야 하니까요.


책가방에 실내화 주머니를 쑤셔 넣은 두 아이는 마치 곡예를 부리듯 골목길을 헤치고 나갑니다. 이제 마지막 골목을 돌면 중앙극장이 보일 테지요. 오늘은 왠지 숨도 차지 않습니다. 그런데 철수 눈에 어떤 장면 하나가 포착됩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저 멀리 골목에 숨어 담배를 피우는 고등학생 형들 때문입니다. 철수네 동네에 살아 가끔 멀리서 볼 때면 재빨리 뒤돌아 다른 길로 가는, 마주하기 싫은 형들입니다. 현재 속도, 그 너머에 있는 극장과 자신을 기다리는 왕조현 누나, 주윤발과 장국영 형님까지 멈출 수 없습니다. 철수 머릿속이 복잡합니다. 64비트 컴퓨터 CPU처럼 빠르게 돌아갑니다.


"영식아, 잠깐. 멈춰 봐."

"왜? 늦었어."

"잠깐만. 내가 지난번에 돈 빌렸잖아. 2천 원. 그거 지금 갚을게."

"엥, 갑자기? 돈 없다며?"

"비상금 숨겨둔 게 생각나서. 빌린 건데 빨리 갚아야지."

철수는 실내화 주머니 안쪽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두 장을 꺼내 영식에게 건넵니다.

"뭐야. 좋아. 그럼 영화 끝나고 이 형님이 떡볶이 쏜다."


철수가 본 장면을 영식은 보지 못했습니다. 영식이 손으로 돌아온 2천 원은 5분 후 불량한 형들의 주머니로 들어갑니다. 어디 그것뿐인가요? 영화 관람료 3천 원도 같은 처지가 됩니다. 역시 '뒤져서 나오면 십 원에 한 대'는 막강합니다. 영식이 필통 아래 깔아 둔 비상금 5천 원까지 탈탈 털립니다. 그렇다고 두 아이가 불향한 형들한테 맞지 않은 건 아닙니다. 좁은 골목길에서 위험하게 왜 뛰냐고 가슴을 두 대씩 맞았습니다.


불량한 형들이 떠나고 간 골목길에 마치 영화처럼 한 줄기 햇살이 비칩니다. 서럽도록 눈부신 5월의 하늘입니다. 가슴을 부여잡은 철수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합니다. 돈을 빼앗겼기 때문인지 아니면 맞은 가슴이 아파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토록 보고 싶은 천녀유혼과 영웅본색을 보지 못했기 때문인지 철수 자신조차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왠지 영수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이유는 알 것 같습니다. 오늘 영수는 단짝 친구를 잃었으니까요.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한 이야기입니다.

이야기 속에서 저는 어떤 놈으로 출연했을까요?


<이미지 출처 : 놈놈놈 공식 홈페이지>

keyword
작가의 이전글무지개 섬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