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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섬 (11)

픽스-업 소설 지구연대기(파트 2)

by 조이홍

“진짜 할 수 있어? 물고기라면 질색하는 형아가 무슨 손질한다고 그래?”

“아니야. 네 몫은 충분히 했으니까 이것만큼은 내가 해볼게. 걱정 마.”

물고기 습성을 잘 아는 동생의 활약 덕분에 첫 물고기 사냥은 성공이었다. 폐품으로 만든 족대도 제법 쓸만했다. 각양각색 쓰레기들을 걷어내느라 고생 좀 했지만 애쓴 보람이 있었다. 어떤 물고기들은 눈으로 좇을 수도 없을 만큼 빨랐지만, 물고기 이동 경로를 귀신 같이 예측한 동생이 시키는 대로 족대를 갖다 댔더니 신기하게도 정말 물고기가 잡혔다. 동생은 더 이상 유튜브만 보며 뒹굴거리는 미련퉁이가 아니었다. 꿈틀거리며 몰려드는 쓰레기들만 아니었다면 열 마리가 아니라 수십 마리를 잡았을지도 모른다. 평소 나비고기라고 부르는 범돔은 너무 작고 예뻐 차마 먹을 수 없어 놓아주고 전갱이 다섯 마리와 고등어처럼 생긴 물고기 세 마리를 저녁거리 삼기로 했다. 불피우기부터 족대 만들기와 물고기 사냥까지 전부 동생이 해냈다. 명색이 형인데 무엇이라도 해야만 했다. 물고기를 굽기 전에 비늘과 내장을 제거해야 한다는 사실 정도는 재난 영화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알았다. 깨진 플라스틱 바가지 한쪽이 칼처럼 날카로웠다. 하지만 선뜻 물고기 배를 가르지 못했다. 죄책감 같은 건 아니었다. 산딸기를 닮은 열매만 먹고 무지개 섬에서 버틸 수 없었다. 한동안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던 동생이 답답했는지 자기가 하겠다고 나섰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물고기 한 마리를 다시 손에 꼭 쥐었다. 꿈틀거리는 생명이 손끝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두 눈을 질끈 감고 물고기 배에 플라스틱 칼을 쑥 밀어 넣었다. 마지막 탈출이라도 시도하려는 듯 물고기가 온 힘을 다해 펄떡거렸다. 깜짝 놀라 그만 물고기를 놓치고 말았다. 모래 위로 떨어진 물고기가 본능 때문인지 푸른 바다를 향해 한껏 뛰어올랐다. 물고기 배 근처에서 붉은 피가 흘렀다. 물고기 피가 이토록 선명했나 싶었다. 어쨌든 현재로서는 유일한 먹을거리였다. 동생과 내가 살려면 저 물고기들을 먹어야만 한다. 어설픈 동정심이 물고기를 더 괴롭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본능에 충실한 물고기를 주워 들었다.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정확하게 배를 갈랐다. 물컹한 느낌이 들더니 플라스틱 칼끝이 뼈에 닿는 게 느껴졌다. 동시에 물고기 내장이 훤히 드러났다. 머뭇거리지 않고 내장을 쭉 잡아 뺐다. 파르르 떨던 물고기에서 아무런 미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축 늘어진 물고기를 바위 위에 올려놓고 비늘을 제거했다. 절대 해내지 못하리라 여겼던 일을 처음으로 해냈다. 이제 왠지 세상에 못 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무지개 섬에 들어온 이후 동생뿐만 아니라 나도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배불러, 그만 먹을래.”

“진짜? 그럼, 마지막 한 마리는 내가 먹는다.”

무지개 섬에서 배부르다고 말하게 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 며칠 전만 해도 먹을거리를 찾지 못해 온종일 굶지 않았던가. 생존 고수가 된 기분이었다. 구운 물고기 여덟 마리가 결코 많다고는 할 수 없었다. 지난 며칠 동안 굶기를 밥 먹듯 한 덕분인지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불렀다. 신기하게 우리 몸이 변화된 환경에 먼저 적응했다. 동생은 평소 피자 한 판 정도는 가볍게 먹어 치웠다. 고깃집에 가면 공깃밥 두 그릇은 기본이었다. 그렇게 배불리 먹고도 후식으로 빵이나 아이스크림 먹을 자리는 비워뒀다. 그런 동생에게 먹깨비라고 놀리다 싸운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동생에 비할 바는 아니어도 나도 제법 잘 먹었다. 그런 먹보들이 이곳에서 먹은 거라곤 산딸기가 전부였으니 몸에 변화가 생긴 게 분명했다. 더 먹고 싶다는 갈망과 달리 몸은 더 이상 음식을 허락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끼니로 배를 채우니 킬러 문항 천지인 수학 시험에서 만점 받은 양 행복했다. 무지개 섬 생활이 오늘만 같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동생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하나 손질해 잘 구운 물고기는 엄마가 만들어 준 생선구이를 잊게 할 만큼 담백하니 맛 좋았다. 힘든 하루의 끝에서 맛있는 음식으로 위로받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을 터였다. 한동안 잊고 지냈지만, 몸이 그걸 기억했다. 배가 든든해지자 자꾸만 눈이 감겼다. 마지막 물고기 구이를 야무지게 먹는 동생을 보며 꾸벅꾸벅 졸았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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