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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Dec 27. 2019

결국 산타는 오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Phase 2로 돌아온다

  12월 초부터 준과 큐 형제에게 올 해는 산타할아버지가 우리 집에 오지 않을 것이라고 예고했었다. 엄마, 아빠가 산타할아버지였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또 한 해 동안 (각자 나름 열심히 생활했지만) 형제가 끊임없이 티격태격하는 통에 약간의 징벌 의미도 담아 사전 포석을 깔아 놓은 것이었다. 물론 다른 의미도 좀 있긴 했지만...... 아무튼 산타할아버지 선물은 없어도 엄마&아빠, 할머니&할아버지, 고모와 이모의 크리스마스 선물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날을 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 먼저 일어난 준이 거실로 나가 살펴보더니 한숨을 쉬며 침대로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다시 누웠다. 조금 늦게 일어난 큐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거실로 나가 둘러보고 오더니 산타가 오지 않았다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전 예고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깜짝 선물이 준비되어 있을 줄 알았나 보다. 아이들은 아직 아이들이었다.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다. 지난 몇 년 동안 크리스마스 아침이면 집이 떠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산타할아버지께 받은 선물을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즐거워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세상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한 얼굴을 했는데 처음으로 조용한 크리스마스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익숙해져야 한다. 


  준과 큐는 교회 부속 유치원 (선교원)을 다녔다. 해마다 연말이면 아이들의 음악회를 열었다. 한 해는 사회를 보시는 원감 선생님이 음악회에 참석한 부모들한테 크리스마스를 산타할아버지께 선물 받는 날로만 아이들이 인식하지 않도록 당부하는 말을 했다. 그런데 그 말에는 산타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뉘앙스가 담겨있었다. 당시에는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에 원감 선생님의 그 말이 조금 당황스러웠다. 선한 의도로 하신 말씀인데 아이들이 상처 받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맘때 자연스럽게 산타할아버지의 정체를 드러내는 편이 좋았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때 당부하신 원감 선생님의 말처럼 이제는 아이들이 내 기쁨, 내 행복에서 소외받는 이웃과 함께 기쁨과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우리'로 나아갔으면 한다. 우리 가족은 종교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준과 큐 형제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좀 더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지금까지의 왁자지껄한 크리스마스와 안녕을 고한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크리스마스는 Phase 1으로 끝이 났다. 다음 해부터는 Phase 2, 새로운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볼까 한다. 1년에 딱 하루, 1년에 딱 한 시기만이라도 소외받는 사람들을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고자 한다.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비록 작은 행동에 지나지 않더라도 시작해 보려고 한다. 나는 작은 씨앗을 하나 심지만 그 씨앗이 어떤 나무가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준과 큐라면 그 씨앗을 멋진 나무로 키워나갈 수 있으리라 믿고 싶다. 나도 당분간은 곁에서 지켜볼 테니까.  


  크리스마스 Phase 2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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