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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Oct 28. 2023

그림책 5천 권 읽은 아이가 청소년이 되면…

미니멀리스트의 길

인문·교양 크리에이터(?) 답게 제 브런치에는 유독 책과 관련한 글이 많습니다. '센-텐스'나 '한뼘소설', '본격 SF 소설 지구 연대기' 등을 썼기에 소설가로 불리고 싶었지만, 알고리즘(또는 브런치팀)의 예리함은 피해 갈 수 없었나 봅니다. 평범한 가정집 치고 책이 제법 많기도 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책과 관련한 글을 쓰는 건 숨 쉬는 일만큼이나 자연스러웠습니다. 도전 골든벨(일종의 독서 퀴즈)이나 '책의 여행' 같은 소소한 이벤트를 통해 책 읽는 재미를 동료 작가님과 나누었습니다. 기후 변화 & 환경, 다이어트, 세 번 읽는 그림책, 올해의 책 등 다양한 테마로 제 도서 목록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조금 억지스럽지만 영화 '모가디슈'의 책으로 덮은 방탄차, '투머로우(The Day after Tomorrow)'에서 극단의 추위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도서관 책들을 태우는 에피소드를 통해 책이 왜 우리 곁에 여전히 필요한지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책을 불태우는 것보다 더 질이 나쁜 행동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 책을 읽지 않는 것이다."라는 인용을 통해 책 읽지 않는 세태를 꼬집기도 했습니다. 책은 아무리 많아도 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굳게 믿으며 집안 구석구석에 책들을 쌓아나갔습니다. 


영원한 건 절대 없습니다. 


아내가 '미니멀리스트의 길'을 선택하면서 '책으로 만든 집'에 변화의 물결이 일었습니다. 오래도록 입지 않는 옷가지들을 정리한 후, 아내의 눈길이 닿은 곳은 책입니다. 그리고 청소년이 된 아이들의 손길이 더 이상 닿지 않는 그림책이 첫 번째 타깃이 되었습니다. 빽빽했던 그림책 책장이 텅 빈 날 한쪽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듯했습니다. 이제 전쟁이 일어나도 방탄차는 만들지 못하겠구나, 기후 변화로 갑자기 극심한 한파가 찾아와도 태울 책이 없어 얼어 죽겠구나, 철없는 어른의 허튼 상상은 "이고 살래?" 절대존엄의 말 한마디에 공중에서 산산이 흩어졌습니다. 마을 도서관과 옆동네 도서관의 '도서 대여 현황'을 확인해 보니 대략 3천 권쯤 그림책을 빌렸습니다. 집에 소장한 그림책도 몇 번이나 조카딸에게 물려주어도 1천5백 권쯤 되었습니다. 대충 계산해도 아이들에게 5천 권의 그림책을 읽어주었습니다. 5천 권 그림책을 읽은 아이, 그것도 부모가 품에 안고 한 권 한 권 정성스레 읽어준 아이가 청소년이 되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사춘기를 겪습니다. 

반항아가 됩니다. 

불경한 말투를 장착합니다. 

"무자식이 상팔자" 사자후를 연거푸 발산하게 합니다. 


아무래도 그림책이 만병통치약은 아닌 듯합니다. 1년 전쯤에 <아이에게 그림책 4천5백 권을 읽어주면>이라는 글을 썼더랬습니다. 그때 그림책 읽기의 효과(장점)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1. 심심치 않게 글쓰기 대회에서 상을 받는다.

2. 청소년 소설이나 공부법, 관심 분야에 관한 책으로 독서가 이어진다.

3. 가족 독서 모임으로 사춘기와 갱년기 사이에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4. 어휘력/문해력이 발달한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습니다. 가족 독서 모임을 계속 가졌더라도 아이들은 사춘기를 겪었을 터입니다. 사실 주말에도 바쁜 아이들 일정에 가족 도서 모임은 딱 두 회만 가졌더랬습니다. 1번과 4번은 어느 정도 유효하지만, 2번은 결국 스마트폰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어느새 아이들보다 부모가 그림책을 더 많이 읽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림책 운명은 처음부터 이렇게 되기로 결정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텅 빈 책장 앞에 서니 소중한 역사의 일부를 상실한 것 같습니다. 잡념이 잡초처럼 생각의 마당에 우후죽순 돋아납니다. 그토록 열정적으로 그림책을 읽어준 우리(특히 아내)의 노력이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질문부터 잘못되었습니다.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준 건 이런저런 아이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때는) 아이와 함께 한 모든 순간이 행복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무릎에 앉히면 보들보들한 아이 피부에서 기분 좋은 냄새가 났습니다. 살짝 비린 젖(분유) 냄새도요. 아기 피부는 말 그대로 아기 피부였죠. 만지기만 해도 구름 위를 걷는 듯했습니다. 한 글자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하는 아이를 보면 왜 그리 웃음이 나오던지. 그림책 읽는 순간은 아이가 아니라 오히려 저에게 선물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거면 충분했던 겁니다. 그러므로 나머지 효과들은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것이지요. 그림책이 떠난 빈자리에서 이제야 겨우 그림책 읽기의 진정한 효과를 깨달았습니다. 


책은 결코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책을 읽은 사람들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여기서 책은 물리적인 형태를 가진, 종이로 만든 매체만을 말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지 않더라도 책을 읽는 즐거움, 책 읽는 순간의 행복을 우리 아이들이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아이의 아이들에게 그림책 읽어 주는 아빠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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