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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할아버지, 선물 반품해 주세요!

착한 거짓말에 속고 있던 사람은 누구?

by 조이홍

크리스마스이브 자정, 졸린 눈을 연신 비비며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기를 기다립니다. 이 늦은 밤에 산타 할아버지에게 드릴 쿠키와 우유를 준비한다고 부산 떱니다. 왠지 올해는 자기들이 원하는 선물을 받을 것만 같다고 잔뜩 희망에 부풀어 있습니다. 입가 한가득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던 아내와 비밀스러운 눈빛을 교환합니다. 사랑으로 충만한 크리스마스이브 풍경입니다. 언젠가 산타 할아버지가 진짜 누구인지 눈치챌 터이나 가능한 오래도록 아이들이 그분의 존재를 믿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가난이 불편할 뿐이었던 어린 시절, 그분으로부터 제대로 된 크리스마스 선물 한 번 받아본 적 없는 설움을 이렇게라도 치유하고 싶었습니다.


크리스마스 한 달 전부터 산타 할아버지에게 어떤 선물을 받고 싶은지 아이들에게 은근히 캐묻습니다. 너무 티 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철들었는지 언제부턴가 아이들 선물 리스트가 현실적이 됩니다. 아무리 산타 할아버지라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줄 아는 걸까요. 세 발 자전거, 다양한 레고 장난감, 아이돌 음반, 천체 망원경 등등 산타 할아버지로부터 참 많은 선물을 받았더랬습니다. 집이 떠나갈 듯한 아이들 환호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는 행복 가득한 크리스마스 아침 풍경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착한 거짓말이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럴 줄만 알았습니다.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죠.


한창 장난감 총(장난감이라고는 하지만 사람을 향해 발사하면 매우 위험한)에 빠져 있던 둘째 아이가 산타 할아버지에게 받고 싶어 한 선물은 실물 크기의 K-2 소총이었습니다. 연사까지 가능한 최첨단 무기였죠. 가격은 둘째치고 아직 어린아이에게 위험한 장난감이라 아내와 저는 곤경에 처했습니다. "올해는 형아랑 너무 싸워서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안 주실지도 몰라." 밑밥을 깔아 두긴 했지만, 벌써 가풍이 되어버린 산타 선물을 중단할 수는 없었습니다. 장난감 총 말고 다른 건 없냐고 아무리 물어봐도 아이는 단호했습니다.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였습니다. 말이 그렇지 언제나 받으면 좋아했던 레고 장난감으로 '퉁' 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드디어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 새벽 일찍 잠에서 깬 아이들이 선물 앞으로 후다닥 달려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우리 부부는 늘 그렇듯 쿨쿨 자는 척합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거실이 떠나갈 듯한 환호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자기들끼리 쑥덕쑥덕하는가 싶더니 이내 잠잠해집니다. 30분쯤 지났을까 슬그머니 거실로 나와 봅니다. 중학생이 된 첫째 아이는 선물이 마음에 들었던지 자기 책상에 가지런히 올려두었는데, 둘째 아이 선물은 크리스마스트리 앞에 떡 하니 그대로 있습니다. 웬일인가 싶어 선물 상자를 슬쩍 봤더니 둘째가 산타할아버지께 써놓은 편지가 붙어 있습니다. 편지를 읽고 아내와 저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자기한테 준 선물이 자기 것이 아닌 것 같으니 반품해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산타 할아버지에게 받은 선물을 반품해 달라니요, 처음 겪는 일에 황당하기 그지없었습니다.

큐선물반품.png

하지만 진짜 황당한 일은 그날 저녁에 일어났습니다. 일찍 잠자리에 든 아이들의 대화를 그만 엿듣고 만 것입니다. 첫째 아이가 둘째를 다그쳤습니다. "야, 산타 할아버지한테 계속 선물 받고 싶으면 뭘 받아도 기분 좋은 척 해!" 그렇습니다. 아이들은 벌써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를 눈치챈 것입니다. 착한 거짓말에 속고 있던 건 아이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부부였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았도 선물을 받아서 좋은 것인지, 아니면 산타 놀이하는 엄마, 아빠의 행복한 모습을 보는 게 좋아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한 가지는 확실했습니다. 착한 거짓말을 그만둘 때라는 것을 말입니다.


벌써 4년 전 일입니다. 아이들 환호성에 깨던 크리스마스 아침이 가끔 그립습니다. 늦잠 자고 일어나 친구 만나러, 게임하러 각자의 크리스마스를 즐기러 집을 나서는 아이들. 하루만 쉬어도 몸이 달라진다는 아내도 운동하러 나갑니다. 오늘은 모두가 바라는 화이트크리스마스입니다. 참 로맨틱합니다. 이런 날 컴퓨터 앞에 홀로 앉아 소복하게 눈이 내린 겨울나무를 바라보며 추억에 젖습니다. 고즈넉한 크리스마스 아침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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