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입대 꿈에 관하여
이게 말이 됩니까? 분명히 어제 전역(제대)했는데 오늘 재입소하라니요. 어제까지 후임병들이 이제 선임이 된다고요? 이건 행정착오입니다. 26개월 만기 제대했고 이렇게 전역증도 있습니다. 이런 제가 왜 다시 군대에 가야 하는 겁니까?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습니다. 또 군생활할 순 없습니다. 싫습니다, 싫다고요! 휴, 꿈입니다. 악몽이지만 꿈이라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요. 군대 두 번 가는 건 상상만으로도 끔찍합니다.
군대를 다녀온 분들이라면 공감하실 듯합니다. 이런 악몽을 자주 꾸죠. 한때 일주일에 두세 번 군대에 다시 가는 꿈을 꾸었더랬습니다. 재입대 이유도 얼마나 다양하고 그럴듯한 지 결국 내무반에 각 잡고 있는 저를 3인칭 시점으로 발견하게 됩니다. 억울한 건 억울한 거고 결국 다시 군생활해야 하는 거구나 체념하게 됩니다. 국가란, 공권력이란 꿈속에서조차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그게 군대입니다. 한 번만으로도 차고 넘치죠.
민방위 교육 소집 대상에서 제외된 이후에도 계속 재입대 꿈을 꾸었습니다. 도대체 군생활이 인생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력을 끼쳤으면 이 나이에도 재입대 꿈을 꾸는 걸까. 솔직히 그렇게 '빡세게' 군생활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작전병이라 몸은 편했습니다. 아무리 군생활이 편안해도 재입대는 아니죠, 정말 아닙니다. 재입대 꿈은 코카서스 바위에 묶여 낮에는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히고 밤이 되면 다시 회복되는 능력 때문에 영원히 고통받는 프로메테우스의 업(業)에 비견할 만합니다. 절대 호들갑 떠는 거 아닙니다.
언제부턴가 군대에 다시 가는 꿈을 꾸지 않습니다. 마침내 정신적으로도 완전히 '전역'하게 된 것입니다. 그 해방감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기분이 묘합니다. 시원섭섭하다고나 할까요. 군대에 재입대하는 꿈조차 꾸지 않을 만큼 나이 들었다는 의미일까요? 그럼 너무 서글픈 데요. 서로 상반대는 두 가지 감정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닙니다. 애매모호한 상황, 가장 견디기 힘든 심리상태입니다.
칼 융은 꿈이란 무의식의 자발적 표현이자 개인의 심리적 균형을 회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았습니다. 융의 이론에 의하면 재입대 꿈을 꾸지 않으면서 비로소 저는 무의식과 의식을 통합해 진정한 자아를 실현하게 된 것입니다. 하긴 100세 시대를 넘어 150세 시대라는데 이 정도 나이면 아직 팔팔한 청춘 아닙니까. 무엇이든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갈 수 있는. 그래도 좀 서글프긴 합니다. 청춘은 자기를 청춘이라고 표현하지 않으니까요. 꿈보다 해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