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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Jul 20. 2024

길고양이의 노래

<한뼘소설> 26화

 현우는 어둠 속에서 가냘프게 들려오는 고양이 울음소리에 위안을 찾곤 했다. 누군가에게 눈부시게 아름다운 '청춘'은 오히려 그에게는 멍에에 가까웠다. 취업은커녕 생계조차 위협받던 그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길고양이들에게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빠듯한 형편에도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매일 밤 낡은 배낭에 먹이를 챙겨 골목 구석구석을 누볐다. 하악거리며 경계하던 녀석들도 언제부턴가 그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가 골목 어귀에 등장하면 어느새 서너 마리가 그의 다리를 둘러싸고 갸르릉거렸다. 말은 통하지 않았도 살아 있는 존재들의 따스함은 꽁꽁 언 그의 마음을 녹여주었다. 하지만 길고양이에게 먹이 주는 일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동네사람 대부분이 현우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특히 주인집 순애의 눈총은 가히 살인적이었다.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면서 어쩌자고 골칫거리들한테 먹이를 주냐고!" 따위의 비난을 들으라는 듯 서슴지 않고 토해냈다. 두 번의 계절이 섬광처럼 흘러갔다. 


 첫눈이 예보된 겨울 초입, 뉴스를 검색하던 현우는 깜짝 놀라 그만 얼굴로 스마트폰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대구에서 길고양이 집단 떼죽음'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속보로 떴다. 아픔도 잊은 채 두 눈이 숨 가쁘게 텍스트를 추격했다. 기사는 M, H, D 등 유명 업체가 생산하는 고양이 사료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되었다는 경찰 발표와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전담반을 꾸려 고양이 사료 업체를 전수조사하겠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되었다. 'M사! 혹시 내가 준 먹이도...?' 현우는 외투를 입는 둥 마는 둥 하며 길고양이 먹이통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슬픈 예감은 왜 틀리지 않을까. 차가운 길고양이 시체들이 먹이통 주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자신은 컵라면 하나로 끼니를 때워도 품질 좋은 사료를 먹이고 싶었던 현우는 자기처럼 눈 위에 상처가 있어 '스카페이스'라고 부르던 브리티시 숏헤어 앞에 무릎을 꿇고 엉엉 울었다. "미안해, 나 때문에. 미안해…." 차갑고 하얀 결정이 현우와 스카페이스와 이름 없는 길고양이들 위로 무심하게 흩날렸다. 


 "현우 총각이 무슨 잘못이 있어? 다 그놈들 잘못이지. 죽은 녀석들은 불쌍하지만, 이제 총각도 자기 앞가림해야지. 기운 내." 건조한 순애의 목소리에서 현우는 얼마간의 연민을 느꼈다. 한없이 차가운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런 순애가 조금은 달리 보였다. 선한 의도라고는 해도 어쨌든 자신 때문에 죄 없는 고양이들 수십 마리가 죽임을 당했다. 현우는 다시는 그런 아픔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몇 주 후,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던 현우는 우연히 자신의 먹이통에 사료를 채우고 있는 소녀를 만났다. 중학생이나 되었을까 앳된 모습이 싱그러웠다. "고양이들한테 먹이 줄 때 주의해야 해. 특히 요즘 문제가 되는 M, D, H사 사료는 절대 주면 안 돼."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던 그가 알은척했다. "괜찮아요. 이건 올해 생산한 사료예요. 문제 제품은 죄다 작년 거고요. 길고양이라면 치를 떠는 동네에서 이 정도는 기본이죠. 생명을 다루는 일이기도 하고요." 아이치곤 제법 야무지네, 하던 현우는 순간 뒷목이 뻣뻣해졌다. 다른 걸 몰라도 생산년월일은 꼼꼼하게 챙기던 그, 분명 작년에 만든 사료는 하나도 없었다. 한동안 조각상처럼 굳어 있던 그는 개와 늑대의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움직였다. '내 잘못이야. 함부로 이웃을 의심하지 말자.'  


 "현우 총각, 이거 먹어. 우리 거 사는 김에 총각 거까지 샀어. 한겨울에 방 안에서 까먹는 귤만큼 맛있는 게 있나. 오늘 내가 기분이 좀 좋아. 새 학기부터 다시 일하기로 했거든. 방과 후 학교. 퇴직하고 얼마만인지. 참 내가 말했나? 30년 동안 고등학교에서 화학 가르쳤거든. 집은 깨끗하게 쓰고 있지? 세 밀리지 않게 주의 좀 해 줘. 흐흐흐." 늦은 겨울밤, 어디선가 스카페이스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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