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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Jul 15. 2024

콩쥐, 영웅의 탄생

<한뼘소설> 25화

 옛날옛적 호랑이 담배피턴 시절, 산 좋고 물 좋은 시골 마을에 천성은 선하나 혼기를 한참 넘긴 공(公)씨 성의 사내가 살았다. 전생에 쌓은 덕이 있었던지 다행히 늘그막에 심성 고운 처자를 만나 혼인했다. 천생배필(天生配匹), 가난한 형편에도 부부 금실이 좋았다. 어느 날 만삭 아내에게 산기(産氣)가 있자, 공가는 산모 몸에 좋은 잉어며 미역, 갓난쟁이를 위한 배냇저고리를 장만하려 여름내 키운 콩 서 말을 챙겨 장터로 향했다. 


 장터로 향하는 길에 백발노인이 마치 짐짝처럼 지게에 실려가고 있었다. 지게를 진 초로의 사내는 두 눈이 퉁퉁 붓고 몰골 또한 말이 아니었다.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지 곁에 다가가 말을 건네는 공가. 

 "한숨이 끊이지 않으니 말 못 할 사연이라도 있는가 보오." 

 "에휴, 뒤에 계신 노인은 내 모친이라네. 식솔은 여럿인데 벌이는 시원치 않으니 입 하나라도 줄여야 한다고 어찌나 고집을 부리시는지, 기어이 홀로 산속에 들어가시겠다고…. 몇 해 동안 고로나(苦擄懦-괴로움이 사로잡으니 무기력해지다)가 퍼져 백성들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니, 이제 내 발로 어미를 산속으로 모시고 있다네. 방도 없는 세상에서 방도를 얻지 못하니, 그저 하늘을 원망하는 수밖에...."

 공가는 세상 이치는 몰라도 사람 사는 도리는 잘 알았다. 메고 있던 콩 서 말을 사내에게 통째로 건넸다. 

 "이 콩으로 한 달은 입에 풀칠할 수 있을 겁니다. 안 듣고 못 봤으면 모를까 기구한 사정을 듣고 어찌 모른 척할 수 있겠소. 하늘을 원망하더라도 살 방도를 찾으셔야지요."

 사내가 극구 사양했으나 공가 고집 역시 만만치 않았다. 결국 콩 서 말을 들려 보내고 집을 향해 돌아서는데 그제야 땅이 꺼질 듯 한숨이 터져 나왔다. 당장 끼니 걱정은 안 해도 된다지만, 만삭 아내와 태어날 자식에게 면목이 없었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터벅터벅 발거음을 옮기는데 고갯마루에서 웬 동자를 만났다. 눈빛이 초롱초롱한 게 예사 사람이 아닌 듯했다. 

 "이토록 깊은 산중에 혼자 어인 일이니, 행여 길이라도 잃은 게니?" 

 "아닙니다. 귀인님을 기다렸습니다." 

 "귀인이라니? 나를 말하는 게야?"

 "네, 그렇습니다. 오늘 한 사내를 만나 콩 서 말을 주셨지요? 사실 그분은 옥황상제님의 막내 자제분이셨습니다. 하계에 관심이 많으시지요. 천상에서 내려보니 인간이 도(道)를 잃어 근심이 하해를 덮었는데, 마침 오늘 귀인을 만나신 것입니다. 귀인의 갸륵한 마음에 보답하려 중한 소식을 전하러 왔습니다."

 공가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거절했으나 동자의 고집 또한 만만치 않았다. 

 "여자 아이를 낳을 것입니다. 이름을 지(祉)라고 지으십시오. 하늘에서 복을 내려 그 이름이 후세에 오래도록 기억될 것입니다. 또한 이 땅에 고로나(苦擄懦)가 다시 창궐할 것입니다. 역병은 이 의서(醫書)에 나온 백신(白汛-흰 물)이 물리칠 것이오니 반드시 후세에 전하라 당부하셨습니다." 


 공가는 동자의 말대로 딸 이름을 공지(公祉)라 지었다. 동네 사람들이 아이 이름은 부르기 쉬워야 오래 산다고 귀띔해 부부는 아이를 '콩쥐'라고 불렀다. 또한 "고로나 백신'이 기록된 의서는 가보(家寶)로 삼아 후대에 전했다. 그러나 몇 번의 전란을 겪으면서 중하디중한 가보가 홀연히 자취를 감춰버렸다. 의서를 직접 보았다는 이들이 그 제목이 '거리두기(拒離蠹記-사물을 좀먹어 해독을 끼치는 것을 방어해 끊어내는 기록)'였다는 증언만 전해질뿐이다. 공가 후손들은 '고로나는 거리두기'라는 노래를 만들어 자식에서 자식으로 전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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