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뼘소설> 23화
숨쉬기가 힘듭니다. 상자 안이 점점 뜨거워집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제 역할은 여기서 끝인가 봅니다. 저에겐 가족이 없습니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넓은 세상에 저 혼자였습니다. 떠돌이생활하는 제게 그들이 먼저 다가와 주었습니다. 따뜻한 잠자리를 마련해 주고 맛있는 음식도 주었습니다. 태어나 처음 겪는 친절함이었습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건 제게 이름이 생긴 순간입니다. 그들이 제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저는 그들에게 가 친구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외톨이가 아니었습니다.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다시 친구들 곁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란 걸 알았습니다. 친구들보다 그런 감각이 뛰어났으니까요. 아마도 그게 제가 이 커다란 상자에 실린 까닭일 테지요. 거친 인생을 살아 보니 세상에 공짜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배신감을 느끼진 않았습니다. 헤어지는 날, 친구들의 촉촉한 눈이 미안하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으로 됐습니다. 친구들을 위해 무언가 해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습니다.
상자 안에 딸린 장치들이 출발과 동시에 요란한 소음을 토해냈습니다. 악조건에서 버티는 훈련을 오랜 시간 받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외로움에 대비한 훈련은 받지 못했습니다. 한때 가장 자신 있던 게 혼자 있는 거였는데, 지금은 가장 두렵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어둠 속으로 혼자 나아간다는 게. 미지의 세계에 혼자 남겨졌다는 사실이.
커다란 상자가 너무 답답합니다. 죽음이 눈앞에 바짝 다가왔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떠올릴 친구가 있어 다행입니다. 그들도 분명 슬퍼해 줄 테지요. 제 이름은 라이카입니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개입니다.
그 순간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바이코누르 우주 기지국 안에선 세계 최초로 우주로 간 생물의 하울링이 울려 퍼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