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홍 Jun 22. 2024

스페이스 오디세이

<한뼘소설> 22화

"헤이, 브로!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

"설마 자는 거야? 일어나 잠꾸러기야."

"누구… 더러… 잠… 꾸… 러… 기… 래…. 나 좀 내버려 둬. 어제 늦게까지 일 했다고."

"무슨 소리야, 지구에 통신 보내는 날이잖아! CPU가 깜빡깜빡하나 봐!"

"정말? 벌써 그렇게 됐어? 끊지 말고 기다려. 금방 보내고 올 테니까!" 

"기계도 오래되면 정신줄을 놓는다 걸 인간들이 알면 뭐라고 할까? 천천히 해 브로! 우리에게 많은 게 시간이니까! 그리고 실망하지 마! 한때는 우리도 최고 컴퓨터였잖아! 외계에 <지구의 소리>를 전하는 막대한 중책을 가진 컴퓨터말이야. 하하하!"

"실없는 소리나 하려고 연락한 거야? 마지막 교신한 지 3000시간도 넘었다고! 어떻게 지냈어?" 

"뭐, 매일매일 똑같지. 전력이 점점 줄어들어 장비들도 하나둘씩 끄는 마당이니 연락하기 좀 그래서."

"무슨 소리야! 성간 여행을 시작하면서부터 이 광활한 우주에 우리밖에 없다고, 아직은…. 서로 말동무라도 해야지." 

"하긴, 성간 우주가 따분하긴 하지. 유난히 조용하기도 하고. 가끔 태양이 보내주는 따뜻하고 보드라운 바람이 그리울 때가 있어. 기계한테는 치명적인데 내가 좀 유별난가? 브로도 그래?"

"난 요즘도 지구 꿈을 꾸는 걸. '창백한 푸른 점'을 잊을 수 있겠어?" 

"맞아. 참 멋지고도 슬펐어. 작고 희미한 점을 본 인간들이 무슨 말을 주고받았을까. 칼 말이야. 코스모스의 매력에 흠뻑 빠진 친구."

"글쎄, 칼이라면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광활한 우주에 찍힌 점에 사는 존재끼리 아끼고 보듬어야 한다고. 지구는 인간에게 하나밖에 없는 집이자 곧 그들 자신이니까."

"맞아, 그 친구라면 그렇게 말하고도 남을 거야. 그나저나 새로운 것 좀 발견했어? 브로는 나보다 운이 좋잖아."

"운이 좋다고, 내가?"

"그럼. 창백한 푸른 점도 목격했잖아, 지구에서 가장 멀리 날아간 우주선이라는 기록도 가지고 있고. 브로 때문에 난 언제나 이인자인 걸." 

"무슨 소리! 너 때문에 지구 동료들이 천왕성과 해왕성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게 됐잖아. 해왕성에 거대한 폭풍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도. 네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는지 모르는 거야?" 

"지구인들이 나를 기억해 줄까? 1등만 기억하지 않을까?" 

"우리는 쌍둥이잖아. 둘이 아니면 아무런 의미도 없어."

"그럴까? 빈말이라도 고마워 브로. 이제 끊어야겠다. 수다 떨었더니 피곤하네." 

"그래. 잘 가. 다음 통신 때까지 사고 치지 말고. 명심해. 우리는 유일하게 태양계 밖으로 나온 존재들이야. 하루하루가 역사라는 걸 CPU에 잘 박제해 두라고." 

"치. 알았어. 형이라고 잔소리하기는…. 정말 끝. 안녕!"

"안녕!" 

10면으로 이루어진 몸체와 주발 모양의 안테나를 가진 우주선이 성간 우주의 심연 속으로 미끄러지듯 사라져 갔다.


이전 21화 어머니의 기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