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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Jun 09. 2024

슈퍼개미 X의 하루

<한뼘소설> 20화

 새벽 3시 30분, 지훈은 항상 같은 시간 잠에서 깬다. 커피를 내리는 동안 미 증시부터 확인했다. 엔비디아 실적 상승에 따라 자본시장에선 AI 랠리에 대한 기대감이 다시 살아났다. 지훈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디커플링이니 G2니 해도 여전히 미국이 세계 경제에 끼치는 영향력은 막강했다. 적어도 오늘하루 미 증시로 스트레스받을 일은 없을 듯했다. 동해에 엄청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되어 있다는 정부 발표로 국내 증시도 들썩였다.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장이 시작되면 포트폴리오 일부를 정리하리라 마음먹었다. 수익률은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 지훈의 확고한 투자 철학이었다. 


 지훈은 전업투자자다. 대학을 졸업하고 100군데 넘는 기업에 지원했지만 그를 원한 회사는 한 곳도 없었다. 스펙은 남들에게 뒤지지 않았다. 지방 국립대를 졸업했지만 어학연수와 교환학생 경험이 있었다. 상위 5% 학점에 입상 경험도 다양했다. 취업운이 따르지 않았던 그는 재빨리 주식투자로 눈을 돌렸다. 대학 시절 모의투자 대회에 참가해 괜찮은 수익률을 여러 번 경험했다. 친구 집에 얹혀살기로 하고 뺀 원룸 보증금 5백만 원을 종잣돈 삼았다. 목숨보다 귀한 5백만 원이 한 달 만에 반토막이 되었다. 모의투자가 소꿉놀이라면 실전 투자는 피 튀는 전쟁이었다. 라면 하나를 세끼로 나눠 먹으며 주식 관련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이름난 투자자들의 블로그와 유튜브를 찾아 밤잠을 설쳤다. 그렇게 강산이 한 번 바뀌었다. 여전히 하루에 4시간만 자는 지훈의 계좌에는 수백 억에 달하는 잔고가 있었다. 주식 커뮤니티에서 재야의 고수라 불리는 지훈이 바로 슈퍼개미 X였다. 당연한 결과지만 자신에게 잘 맞는 매매 기법도 찾았다. 짧게는 수 초, 길게는 수 분 안에 결과를 내는 스캘핑이 그의 투자성향과 잘 맞았다. 20억 잔고가 찍힌 날 더부살이 신세도 끝냈다. 전세 2억, 스무 평 남짓한 오피스텔이었지만 바랄 것이 없었다. 그게 전부였다. 지출이라고는 배달 음식 시켜 먹는 게 전부였다. 외출할 일이 없으니 옷도, 신발도 거의 사지 않았다. 명절에 고향집에도 내려가지 않았다. 자식 얼굴 보고 싶다던 부모님도 넉넉한 용돈에 더는 채근하지 않았다. 온종일 방에 틀어박혀 생활하는 그가 건강을 위해 한 일은 해외주식 거래를 그만두는 것이었다. 스캘핑 매매 특성상 장중에는 온통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해외주식까지 몸이 견뎌내질 못했다. 아닌 게 아니라 최근에는 컨디션이 영 좋지 않았다. 유일하게 즐기는 커피마저 쓰게 느껴졌다. 


 지훈은 DART에 접속해 관심 기업 공시를 확인했다. 개장까지 3시간이나 남았지만 마음이 급했다. 스캘핑이 초 단위 매매기법이라고는 하지만 차트분석과 기업가치 분석, 재무제표 확인은 기본이었다. 관심종목에 포함시킨 열 개가 넘는 기업을 확인하려면 시간이 부족했다. 동트기 전인데 벌써 커피를 석 잔이나 마셨다. 네 잔 째 커피를 마시려는데 모니터가 흐릿해졌다. 아랫배가 살살 아렸다. 식은땀이 뺨을 타고 또르르 굴러 떨어졌다. 그 순간 들고 있던 커피 잔이 키보드 위로 툭 떨어졌다. 놀랄 새도 없이 지훈의 거대한 몸이 모니터 쪽으로 스르륵 기울었다. 모니터 한쪽에 띄워둔 잔고가 유난히 크게 보였다. 끝없이 이어진 0들의 행렬이 갑자기 우습게 보였다. 쓴웃음이 터졌다. 수백 억 자산가였지만 웃을 수 있는 몇 초의 시간도 허락되지 않았다. 단 몇 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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