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뼘소설> 24화
철썩!
상구는 제가 날린 손찌검에 본인이 더 화들짝 놀랐다. 경선의 뽀얀 볼이 벌겋게 부풀어 올랐다. 하나뿐인 딸에게 이렇게까지 하리라 예상하지 못했는지 경선도 아연실색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 상구는 일말의 죄책감을 쓴 약 삼키듯 삼켜버리고 사그라들었던 화를 다시 한번 불살랐다.
"이 아비가 어떻게 뒷바라지했는데, 학생이면 공부나 할 것이지, 무슨 데모를 해, 데모를!"
"명백한 부정선거예요, 아버지. 관권 선거에 공개 투표도 모자라 투표함 바꿔치기까지 했다고요. 독재정권을 끝내야 할 때에요. 역사의 수레바퀴가 앞으로 나갈 시간이라고요!"
"머, 뭐라고! 지금 네가 떠드는 소리가 무슨 뜻인지는 아는 거냐? 이 나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데! 경찰 아비 둔 덕에 좋은 집에서 따뜻한 밥 먹고, 남한테 아쉬운 소리 안 하고 사는 거야."
"그래서 거리로 나가는 거예요. 쪽팔리기 싫어서요."
"뭐라고? 앞으로 외출 금지다. 학교도 가지 마!"
"아빠!"
"윤동수, 정말 너!"
경선은 자신도 모르게 아들의 뺨을 때릴 뻔했다.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은 자신이 순간 대견하기까지 했다. 고성이 오가더라도 아들에게 손찌검하는 일은 허락할 수 없었다. 해외 유학파 교양 넘치는 어머니로서 품위를 한순간에 잃을 순 없었다. 그녀는 가슴 깊은 곳까지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분노에 찬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아들을 향해 길게 내뿜었다.
"아들, 세상의 모든 엄마가 그렇듯 엄마도 네가 잘 되길 바란단다. 지금은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데모나 할 때가 아니야. 정의가 반드시 승리하진 않는다고. 세상 이치란 그렇게 단순한 법이 아니야."
"선생님께서 신념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하셨어요. 군부독재를 청산하고 이 땅에 절차적 민주주의를 꽃피워야 해요. 이것이 우리 세대의 소명이자 시대정신이라고요. 더 이상 역사의 수레바퀴가 뒤로 가는 걸 두고 볼 수 없어요!"
"뭐라고! 지금 무슨 소리하는 건지 알고는 있는 거니? 잘 나가는 군인 아버지 덕분에 좋은 집에서 비싼 옷 입고 떵떵거리고 사는 거야. 뭐가 아쉬워서 데모를 해, 데모를!"
"그래서 하는 거예요. 쪽팔려서요!"
"얘가 아버지가 들으면 어쩌려고! 앞으로 외출 금지야. 이상한 책들도 읽지 마!"
"엄마!"
찰싹!
동수는 저도 모르게 휘두른 손찌검에 깜짝 놀랐다. 무남독녀 귀한 자식의 뽀얀 볼에 손자국이 선명했다. 서연의 무표정한 얼굴에서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지금 가정폭력방지법, 청소년 보호법을 모두 위반하셨어요. 검사니까 더 잘 아시겠죠?"
"본질을 흐리지 마. 지금이 어느 땐데 중학생이 촛불을 들어? 공부나 열심히 할 것이지.
"역사의 수레바퀴를 앞으로 돌리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에요! 무능한 검찰독재정권을 끝내고 권력을 국민의 품으로 돌려보내야 할 때에요."
"뭐라고! 지금 무슨 소리하는 건지 알고는 있는 거니? 아빠 친구 로펌에서 스펙 쌓으면 출세길이 훤한데 네가 뭐가 아쉬워서 이 추운 날씨에 촛불을 들어? 앞길 막히면 어쩌려고!"
"그래서 투쟁하는 거예요. 아버지가 시대와 조국에 진 빚을 갚기 위해서요!"
"앞으로 외출 금지다. 휴대폰도 압수야!"
"아빠!"
동수는 오래전 어머니와 비슷한 대화를 나눴던 일이 떠올랐다. 순간 입꼬리가 올라가는 그. 동수는 서연의 유학 계획을 조금 앞당기기로 마음먹었다. 모름지기 바퀴란 어디서든 잘 굴러가는 법이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는 앞으로도, 뒤로도 좀처럼 굴러가지 않았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만 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