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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Feb 04. 2020

나의 편식 극복기

내 입맛의 8할은 군대에서 키워주었다

  어린 시절 나는 아주 허약한 체질이었다. 성인이 된 이후 나를 처음 본 사람은 절대 상상할 수 조차 없는 작고 깡마른 아이였다. 이유는 분명했던 것 같다. 어린 시절의 나는 밥을 잘 먹지 않았다. 그 당시 밥상에 올라오는 반찬은 어린 내가 좋아하지 않는, 아니 먹을 수 없는 것들 뿐이었다.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는 엄마표 된장찌개, 두부조림, 배춧국 그리고 고등어구이 같은 반찬은 어린 내가 먹을 수 없는 음식이었다. 매운 김치도 아예 쳐다보지 않았다. 유일하게 좋아하던 마른반찬이나 밑반찬류는 눈 씻고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 어머니는 건강한 밥상을 차려주셨지만 나는 아버지가 좋아하는 반찬만 만드신다고 어머니께 불평을 늘어놓고는 했다. 


  태백산맥은 강원도를 영동지방과 영서지방으로 나눌 뿐 아니라 나에게는 해산물 한계선이기도 했다. 춘천이 고향인 나는 대학교 2학년 때까지, 즉 군(軍)에 입대하기 전까지 해산물을 거의 먹지 않았다. 생선조림이나 구이, 회뿐만 아니라 어패류도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싱싱한 해산물을 먹을 기회가 적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밥상에 해산물이 올라오지 않는 것은 아니었는데도 그 특유의 비릿함이 몹시 싫었다. 가끔 장을 보러 어머니와 시장에 가면 생선가게 옆을 지나갈 때는 코를 막고 뛰어갈 정도였다. 


  군에 다녀온 장점을 나에게 한정해 말해보자면 가족애 (특히 부모님에 대한 孝心?)가 깊어졌다는 것과 초딩 입맛이 드디어 성인의 입맛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민통선 안과 GOP에서의 군 생활은 각종 해산물과 김치의 맛을 알게 해 주었고, 고추, 마늘, 파도 먹을 수 있게 해 주었다. 맛의 신세계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들을 그동안 왜 먹지 않았는지 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군을 전역한 이후에도 도저히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던 음식들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젓갈류였다. 어린 시절에도 아버지가 즐겨 드시던 명란젓이나 창난젓 같은 것들을 보면서 왜 사람이 이런 음식까지 먹어야 하는지 의아해했었다. 평생 젓갈류는 먹지 않겠다고 다짐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나는 애써 찾아 먹지는 말아야지 생각했었다. 물론 회사 생활 덕분에 젓갈의 맛을 아는 지금도 즐겨 먹는 음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입맛 없는 날 참기름과 깨소금을 살짝 가미해 밥 한 그릇을 비울 정도로 그 맛을 알게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생굴과 생전복뿐이다. 아마도 내게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을지 모르지만 언젠가 생굴과 생전복을 맛있게 먹는 그 날을 상상해 본다. 


  여러 가지로 나와 많이 닮은 큐가 나와 가장 다른 점은 입맛이다. 큐는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명란젓에 밥을 비벼 먹었다. 그럴 때면 밥 한 공기로는 어림도 없었다. 말리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먹을 기세다. 알탕도 좋아한다. 맑은 국물로 끓인 알탕을 그렇게 좋아할 수 없다. 그런 큐를 보면 놀랍다는 말로는 내 감정이 잘 표현되지 않을 정도로 신기하고 또 신기했다. 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비로소 먹을 수 있었던 명란을 어떻게 어린 나이에 이토록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조금 과장하자면 나는 국민학생 때 풀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풀 수 없었던 수학 문제를 큐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척척 풀어내고 있다는 느낌 정도??? 게다가 이번 설 명절에는 외할머니가 해 주신 오징어 젓갈의 맛을 알게 되어 밥 한 공기에 오징어 젓갈 반찬 하나만 달라고 한다. 나보다 약 20년쯤 빠른 큐의 미각 여행은 과연 어디에 이르게 될까오징어 젓갈에 밥을 쓱쓱 비벼 먹는 큐를 보면서 갑자기 별게 다 궁금해졌다. 당장은 잘 먹고 잘 자라주니 고마울 따름이지만. 


  아내와 어쩌다 한번 해장국집에 가면 선지가 듬뿍 담긴 우거지 해장국을 한 그릇씩 먹는다. 아내는 선지를 맛나게 먹지만 양이 너무 많아 반쯤은 내게 덜어 준다. 나도 선지를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대부분 반 이상은 남기게 된다. 그럴 때면 아내는 여지없이 남겨둔 선지가 아깝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러는 어느 날 아내가 선지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선지가 내장의 일부인 줄 알았다는 것이다. 아내는 당분간 선지 해장국을 안 먹겠다고 선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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