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홍 Feb 12. 2020

계속해서 앞으로 갑시다!

고전의 재味발견 : 콜레라 시대의 사랑 1, 2

 

  민음사의 두 권짜리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처음 읽은 것은 2005년이었다. 1권을 읽기 시작한 것은 11월 7일, 2권은 11월 16일에 읽기 시작했다. 2권 면지에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 빠져들다’라고 메모해 둔 것으로 보아 이 책을 아주 좋아했던 것 같다. 어떤 계기로 이 책을 읽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바로 직전에 읽은 알랭 드 보통의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 덕분에 이 책이 더 재미있게 느껴진 것은 확실하다. (1권 면지에 이를 암시하는 내용이 적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당시 다니던 직장이 나름 독서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을 때라 책을 읽는 동료들이 제법 많았는데 나에게도 읽을 만한 책이나 감명 깊게 읽은 소설을 소개해 달라고 하면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추천해 주곤 했었다. 내 책을 빌려주기도 했다. 이 책을 추천받은 동료들 중 몇 명이나 실제 읽었는지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적어도 나 스스로는 60대 이후에 다시 한번 읽어 보리라 결심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새해 기념으로 책장 정리를 하다가 먼지가 뽀얗게 앉은 고전들 속에서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고는 별생각 없이 몇 페이지를 읽다가 그 계획을 좀 더 앞당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마침 예전에 읽었던 고전들을 다시 읽고 있는 터였고, 비록 두 권의 분량이 살짝 부담되기는 했지만 이미 몇 페이지를 읽은 것만으로도 책에 흠뻑 빠져 잡은 책을 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책이 뭐가 그렇게 재미있냐고 물어보면 답은 의외로 간단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문학사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주제, 바로 사랑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지독한 사랑에 대한. 외형적으로는 10대에 만난 첫사랑을 51년간 기다린 끝에 결국 다시 만나게 된다는 행복한 결말의 러브 스토리지만 그 안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제법 묵직한 사회적 담론(결혼제도, 여성의 성 해방, 노인의 성 그리고 노화 등)들을 담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다른 고전들의 번역도 그렇지만 특히 이 책을 보면 번역도 하나의 문학이라는 생각을 더욱 하게 한다. 외국어(스페인어) 소설을 우리말의 문장으로 이토록 공감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창작만큼이나 고통과 노력을 요구하는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남미 문학의 특징 때문인지, 작가의 문장력 때문인지는 전문적인 식견이 없어 모르겠지만 투박하면서도 정교하고, 정감이 있으면서도 때론 냉소적인 문장들이 마음에 드는 작품이다.  


  이 소설에는 세 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작품의 전반부에 등장해 이야기를 이끄는 인물은 옛 식민지 시대의 엘리트 출신 의사 후베날 우르비노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하는 실천적인 지식인이지만 계급적인 한계가 명확한 인물이다. 또한 기독교적 가부장제도가 몸에 밴 전형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사랑해서라기보다는 ‘나를 이렇게 대하는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라는 의미에서 끈질기게 구애한 덕에 결혼하게 된 상대가 상업자본주의 출신의 여성 페르미나 다사다. 그녀는 결혼생활에 적합하지 않은 자유분방한 성격의 여성이었지만 결국 결혼을 하고 안정된 생활 속에서 자신만의 확고한 자리를 지키며 살아간다. 남편이 건설한 행복한 제국에서 '신성한 하녀'로 살아가지만 그의 가문과 명성에서 얻은 배경을 누리며 (여성으로서) 시대의 아이콘이 되기도 한다. 


  후베날 우르비노와 페르미나 다사는 사랑보다는 ‘안정적인 결혼생활’에 초점을 맞춘 완벽한 부부였다. 그런 안정성이야 말로 (하느님의 세계에서) 무엇보다 소중하며 때론 그 탄탄한 반석 위에서 사랑이라는 감정도 느끼고 아이도 낳으며 50여 년의 결혼생활을 행복하게 유지한다. 


  하지만 후베날 우르비노 보다 훨씬 먼저 페르미나 다사를 사랑한 인물이 있으니 그가 작품 후반부를 이끄는 플로렌티노 아리사다. 그녀의 나이 열세 살, 그의 나이 열일곱 살 때 처음 마주치고 한눈에 반해 그녀에게 평생을 받치기로 결심을 한다. 외형은 매우 유약해 보이지만 강하고 영리하며 카리브 하천 회사에서 바닥부터 시작해 최고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는 능력 있는 인물이다. 


  플로렌티노 아리사와 페르미나 다사는 제대로 말 한번 나누지 않고, 오직 편지를 통해서 열렬히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고 기꺼이 평생을 같이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녀 아버지의 방해로 오랜 시간 떨어져 있게 되었고, 그 시간이 둘의 사이를 더욱 친밀하게 만들었지만 마침내 다시 만나는 순간 (환상에서 깨어난) 그녀의 변심으로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된다. 헤어진 그녀는 결국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고,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그녀에게 걸맞은 사람이 되어 그녀를 끝까지 기다리기로 결심한다. 마침내 그녀의 남편이 엉뚱한 사건(앵무새를 잡으려다 나무에서 떨어졌다)으로 죽고 장례식을 치르던 날 그는 페르미나 다사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게 된다. 그녀는 죽은 남편을 끝까지 사랑하겠노라 다짐하지만 결국 인생의 의미를 찾던 자신에게 답을 보여준 그를 받아들이게 되고 두 사람은 사랑으로 하나가 된다. 


  이 작품의 배경은 콜레라와 내전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가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의 콜롬비아 어느 해안마을이다. 민중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정권(정부)은 자주 바뀌고 아직 완전하게 정복하지 못한 콜레라로 여기저기서 시체가 썩어가지만 상류층(지배층)은 무척이나 낭만적이고 화려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시대적 모순만큼이나 등장인물의 모순도 만만치 않다. 


  의사로서 사명감이 투철했던 젊은 시절의 후베날 우르비노는 단지 장염에 걸린 페르미나 다사를 (콜레라로 오해할 만한) 불필요한 진찰로 희롱하고 그녀의 아버지 앞에서 심한 모욕감을 안겨 준다. 또한 안정적인 결혼이 사랑보다 중요하다며 아내에게 일장 연설을 하지만 정작 자신은 바람을 피우다 꼬리를 밟히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어머니의 혹독한 시집살이에는 그저 눈을 감고 모른 척 해 버리는 이중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오직 페르미나 다사만을 사랑하며 언제까지라도 그녀를 기다리겠다던 사랑의 화신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실제로는 매우 교묘하고도 은밀하게 방탕한 성생활을 한다. 많은 과부들과 관계를 맺었고 심지어는 자신이 보호자 역할을 했던 열네 살의 소녀와도 관계를 맺는다. 자신의 하녀를 임신시키는가 하면, 남편이 있는 여성의 몸에 낙서를 해 그녀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다. 여성의 성의 해방과 사회적 제도로서 결혼제도를 비판하기 위한 장치로서의 캐릭터인 만큼 모순의 정점에 있는 인물이라고 할 만하다. 


  두 남자의 영원한 연인인 페르미나 다사는 모순적이면서도 무척 솔직한 인물이다. 자기감정에 충실하고 언제나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소설을 읽다 보면 참으로 인간적인 그녀의 말과 행동에 피식하고 웃게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노년에 욕실의 비누 때문에 부부 싸우이 벌어지게 되는데 비누가 일주일째 떨어졌다는 남편의 불평에 자신도 이미 비누가 떨어져 사흘 째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남편에게 오히려 고함을 지르기도 한다. “난 매일 목욕을 했어요. 욕실에는 비누가 있었고요.” 


  그리고 욕실의 비누통에 비누가 정말 있었는지 대주교 앞에서 최후의 재판관인 하느님이 결정하도록 하자는 남편의 제안에 “무슨 빌어먹은 놈의 대주교!”라는 시대를 초월하는 표현을 남기기도 한다. 시대적 배경에서는 비현실적인 캐릭터지만 그녀는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우리나라에서 영화로 만든다면 누구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할지 쓸데없는 상상을 해 본다. 몽상에 지나지 않지만 캐릭터를 구체화해 소설을 읽으면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 같아 혹시 이 글을 읽고 한 명이라도 이 소설을 읽게 된다면 작은 도움이라도 되지 않을까 싶어 오지랖을 부려 본다. (상상에는 비용이 들지 않으니 최대한 초호화 캐스팅으로......)

   

  - 젊은 후베날 우르비노 : 남주혁 배우 

  - 젊은 페르미나 다사 : 이지은(아이유) 배우

  - 젊은 플로렌티노 아리사 : 박보검 배우 


  - 중장년의 후베날 우르비노 : 송강호 배우 

  - 중장년의 페르미나 다사 : 배종옥 배우 

  - 중장년의 플로렌티노 아리사 : 한석규 배우


  이렇게 배역을 정하고 다시 한번 소설의 내용을 천천히 음미해 보니 캐스팅이 꽤 그럴듯해 보인다. 텍스트보다는 영상에 익숙한 세대도 이런 상상력을 발휘해 고전을 읽다 보면 그 깊고 짙은 묘미를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왜 시대는 빠르게 변하는데 여전히 텍스트를 고집하냐고 물어본다면 딱히 변명할 이유가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냥 좀 더 이 시대에, 이 분위기에 머무르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말 밖에는. 고전을 읽는 이유도, 몇 명이나 읽을지도 모를 이런 독후감을 남기는 것도 아직은 텍스트에 머무르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속절없는 바람일지도 모른다. 인생의 막바지에 이른 플로렌티노 아리사가 결국 사랑에는 성공하지만 현실이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서 던질 수밖에 없었던 마지막 대사 "계속 갑시다. 계속해서 앞으로 갑시다."처럼 앞으로 가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오늘도 고전을 읽고 또 쓴다. 

작가의 이전글 아보카도 싹 틔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