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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Mar 02. 2020

3.1절과 태극기

<안중근과 방학 숙제> 

  3.1절 아침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났다. 일찍이래야 시계는 이미 8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서둘러 준과 큐를 깨웠다. 요즘 코로나 19 때문에 바깥 활동을 전혀 하지 못하는 아이들과 모처럼 동네 뒷산을 오르기로 했다. 그런데 잠에서 깬 준이 일어나자마자 먼저 태극기를 꺼내 와 게양을 했다. 아내와 나에게서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이제 다 컸네"라는 감탄사가 나왔다. 아이들 깨우고 내가 막 하려던 참이었는데 선수를 빼앗겨 버렸다. 이럴 때 보면 참 듬직한 준이다. 


  날씨가 그리 좋지 않아 보여서 아이들에게 길을 재촉했다. 언제라도 비가 한 번쯤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을 회색빛 구름들이 머리 위로 듬성듬성 떠 있었다. 동네 뒷산을 가려면 아파트 단지 뒤로 난 텃밭을 지나가야 했다. 텃밭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다 우연히 뒤를 돌아봤는데 얼핏 봐도 태극기를 게양한 집들이 많지 않았다. 우리 아파트는 (다른 아파트도 마찬가지겠지만) 거실 창가에 태극기를 게양할 수 있도록 게양대가 만들어져 있었다. 흐린 날씨 탓인지는 몰라도 평소보다 적게 보이는 태극기에 마음이 좀 씁쓸했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방법은 모두 제각각 일 테고 그것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강요한다고 되는 일도 아닐 터이니 접어두더라도 국경일에 태극기를 다는 일 정도는 모두 함께 했으면 좋겠다. 


  지난 해 준과 큐는 <안중근 의사 순국 109기 추모 제17회 전국 학생 글짓기 대회>에 참여했다. 항상 소월로를 통해 출근을 하던 내가 안중근 의사 기념관 앞에서 본 현수막 덕분이었다. 나는 아이들의 겨울 방학 숙제로 글짓기 대회 참가를 추가했다. 한 달여를 준비해서 준은 산문 부분에, 큐는 운문 부분에 출품을 했다. 준은 3학년 때까지 내게서 강도 높은 글쓰기 훈련을 받았기에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지만 큐는 걱정이 좀 되었다. 그래서 산문보다는 운문(시) 부분에 참여를 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고, 일단 생각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원고지에 써 두도록 했다. 그렇게 큐가 써 놓은 열몇 장이나 되는 원고지를 정리해서 한 편의 시가 탄생했고 그 시로 큐는 우수상을 받았다. 


  제목은 <안중근과 방학 숙제>이다. 큐에게 허락을 구하고 이곳에 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아빠가 소월로를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한 현수막 하나

  “안중근 추모 전국 글짓기 대회” 

  처음 안중근은 나에게 방학 숙제였다.      


  엄마와 외갓집에 밥 먹으러 갔다가 

  우연히 눈에 띈 작은 훈장 하나

  외증조할아버지의 “건국훈장 독립장” 

  내가 독립운동가의 후손?      


  영화처럼

  멋지고 특별하지 않았지만,

  왠지 마음이 으쓱 

  그리고 아빠의 방학 숙제가 생각났다.     


  안중근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죽였고,

  일본은 뤼순 감옥에서 안중근을 죽였다.

  외증조할아버지에 대해 몰랐던 것처럼,

  나는 안중근도 잘 몰랐다.      


  일본 군인이지만 

  안중근을 존경하게 된 헌병 간수, 

  그리고 그를 기억하기 위한

  일본의 어느 작은 불당     


  안중근이 저격한 자리가 표시되어 있는 하얼빈 역,

  그리고 그 옆에 세워진 기념관과

  9시 30분에 멈춰 있는 

  기념관의 시계     


  아빠의 방학 숙제를 끝내야 한다.   

  일본도, 중국도 기억하고 있는데,

  나는 어떻게 

  안중근을 잊지 않고 기억할까?      


  부모님을 따라 간 시청 광장

  그리고 내 손의 작은 촛불 하나처럼

  꺼지지 않을  

  내 마음속 촛불, 슈퍼 히어로 안중근.


  아마도 큐는 아빠의 겨울방학숙제 덕분에 평생 동안 안중근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올 해에도 글짓기 대회가 진행 중이고 3월 6일이면 마감인데 큐는 한번 더 도전하겠다고 큰 소리를 친다. 


  오랜만의 야외활동이라 아이들도 좋아할 줄 알았다. 매일 수영을 하던 아이들이라 운동을 안 하면 좀이 쑤시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등산(사실은 산책)은 너무 힘들다며 다시는 동네 뒷산에 올라오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내와 나는 너무 상쾌하고 좋았는데 준과 큐도 이렇게 우리와 달랐다. 


  그렇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 세상은 조금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변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우리라도 위기에는 하나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꼭 다름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 너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이 그런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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