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홍 Mar 20. 2020

코로나 19 때문에?

<투게더> 두 개 더!

  큐는 초콜릿을 좋아한다. 말리지 않으면 ABC 초콜릿 한 봉지쯤은 앉은자리에서 10분도 안 걸려 해치워 버린다. 우유도 초콜릿 우유를 좋아하고, 아이스크림도 초코맛을 가장 좋아한다. 내 경우는 어려서 못 먹고 자란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초콜릿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집에 초콜릿이 아무리 많아도 하나를 먹는 경우가 없다. 가끔 아내가, 아빠는 어려서 초콜릿을 안 먹어 봐서 초콜릿 맛을 모르는 것이라고 준&큐 형제에게 말하곤 하는데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큐는 "아빠도 미군 지프차 쫓아다니면서 초콜릿 받아먹었어?"라고 물어본다. 내 나이가 그 정도는 아니라고!!!


  주전부리를 좋아하지 않지만 나도 집착한다 싶을 정도로 좋아하는 것이 있다. 아이스크림이다. 계절에 상관없이 아이스크림은 언제나 냉동실에 한가득 채워 놓았다. 게다가 '아이스크림 전문점'이 생겨나면서 가격도 무지 저렴해졌기 때문에 아이스크림이 떨어지는 날이 없을 정도였다. 퇴근 후 하나, 운동(탁구) 후 하나, 식사 후 하나씩 먹는 아이스크림이야말로 행복 그 자체였다. 그렇게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행운의 여신이 언제나 내 편은 아니었다.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아빠 덕분에 덩달아 아이스크림을 많이 먹던 큐에게 약간의 피부 트러블이 생긴 것이다. 아내는 큐에게 아이스크림 금지 명령을 내렸지만 큐는 굴복하지 않았다. 몰래 먹다 걸린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문제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아내는 어쩔 수 없이 집안 전체에 아이스크림 추방령을 내렸다. 괜한 불똥이 나한테까지 떨어졌다. 그렇게 아이스크림 없이 몇 개월을 지내야 했다. 


  큐의 피부를 원상태로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보습이 중요하다고 했다. 샤워를 하고 나온 큐를 전담 마크해 보습을 책임져야 하는 것은 내 몫이었다. 그렇게 몇 개월 간 정성을 들인 덕분에 큐는 원래의 '피부미인'으로 돌아왔다. 큐의 피부도 다시 좋아졌으니 아이스크림 추방령을 철회해 줄 것을 아내에게 요청했다. 아내는 마뜩잖게 생각했지만 그동안의 노력을 인정해 일시적으로 아이스크림 추방령을 철회해 주었다. 


  그렇게 몇 개월 만에 아이스크림이 우리 집에, 우리 냉동실에 오게 되었다. 다만 이전처럼 무분별한 과대 구입은 할 수 없었다. 가정의 화합과 개인의 취향을 동시에 만족할 수 있는 아이스크림 <투게더>만이 허락되었다. 나는 기본 맛인 바닐라 맛과 가장 좋아하는 딸기 맛을, 준은 블루베리 맛을 골랐고, 큐는 역시나 초콜릿 맛을 골랐다. 기본적으로 각자가 선택한 아이스크림만 먹을 수 있었고, 다른 사람이 고른 아이스크림에 손댈 경우 "처절한 응징"이 따르기로 동의를 했다. 오랜만에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게 되다니 실로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PPL 아닙니다. 정말 사심 없이 투게더를 사랑합니다>

  온 가족이 동네 뒷산 산책을 전투적으로 했다. 정상을 찍고 돌아오는 1시간 30분 코스에 실증을 느낀 아내가 종주코스, 즉 3시간 코스를 제안했기 때문이다. 냉장고에 아이스크림이 있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 두 통이나 있으니까 그 정도쯤은 감당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동네 뒷산 종주 코스를  無산소가 아니라  無간식,  無식수로 가까스로 성공했다. 이제는 샤워하고 나와 아이스크림을 즐길 일만 남아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직 꽃길을 걷는 것처럼 행복했다. 그때였다. 준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누가 아이스크림 두 통이나 밖에 내놨어?" 


  설마 아니겠지, 내가 잘못 들었겠지. 마지막에는 진심으로 내 것만은 아니기를 바랐다. 하지만 슬픈 예감은 항상 틀린 적이 없었다. 냉동실에 있어야 할 내 아이스크림이 두 통 모두 버젓이 냉장고 앞에 놓여 있었다. 아직 개봉도 하지 않은 새 아이스크림이었는데 몇 시간이나 실온에 방치되었던 것이다. 귀에 대고 흔들어 보니 찰랑찰랑 소리가 났다. 이미 다 녹아 버린 것이다. 그렇게 원하고 원했던 아이스크림인데, 바로 내 입 앞까지 왔던 아이스크림인데 결국 맛은커녕 포장도 뜯어보지 보지 못하고 떠나보내야 했다. (다시 얼리면 된다고 하지만 그러면 원래 맛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말 한 사람이 범인이다!)


  범인 색출 작업에 나섰다.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었다. 그깟 아이스크림 못 먹는다고 화를 낼 수도 없었다. 말은 "괜찮아, 다시 사 오면 되지"라고 쿨내 진동하게 뱉었지만 속은 그렇지 못했다. 아까웠고 화도 났다. 밤에 다 같이 영화를 보며 자기 아이스크림을 먹는 아이들에게 "한 입만"을 외쳤다. 기꺼이 아이들은 허락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맛이 아니었다.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집 밖으로 나왔다. 밤하늘에 떠 있는 둥근달이 바닐라 맛 투게더를 크게 한 숟갈 떠 놓은 모양이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금 나왔다. 


  장 보러 가는 아내에게 아이스크림을 다시 사다 달라고 했다. 아내는 그러마 했다. 몇 시간 후 잔뜩 장을 보고 온 아내에게 아이스크림은 어디 있냐고 물어보았다. 아내가 장 볼게 너무 많아서 아이스크림 사 오는 것을 깜빡 잊었다고 한다. 나는 우두커니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코로나 19 때문에 외출을 못하는 요즘 나는 점점 아이가 되어 가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어른이 읽어도 재미있는 청소년 도서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