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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홍 Mar 22. 2020

우리 가족 소확행

평범한 일상이 행복이 되었다

 

  한 동안 오르지 않던 동네 뒷산을 코로나 19 덕분에 자주 오르게 되었다. 우리 가족이 자주 오르는 동네 뒷산의 정체는 성남시(분당구)와 광주시(오포읍) 경계에 있는 불곡산수지구(죽전동)와 처인구(모현읍) 그리고 광주시(오포읍)에 걸쳐 있는 대지산 어디쯤이다. 처음에는 대지산 정산을 찍고 집으로 복귀하는 1시간 30분 코스를 애용했지만, 운동량이 부족하다고 투덜대는 아내 덕분에 대지산 정상을 통과해 불곡산으로 내려와 집까지 걸어오는 3시간 코스를 이용하고 있다. 


  예전에는 불곡산으로 내려오면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요즘에는 코로나 19 때문에 버스 탑승도 자제하고 있어 20~30분 정도 걷는 시간이 늘어났다. 불곡산 정자(쉼터) 근처에서 늘 마시던 막걸리 한 잔도 요즘은 눈을 질끈 감고 그냥 지나치고 있으니 동네 뒷산 산책의 묘미 중 하나를 잃은 셈이다. 아내와 내가 시원한 막걸리 한 잔으로 갈증을 해소할 때면 옆에서는 준과 큐가 평소에는 먹지도 않던 마른 멸치를 고추장에 찍어 먹곤 했는데.......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일상의 재미 하나를 잃었다. 그 대신 불곡산을 내려오면 편의점에 들러 아내와 나는 시원한 커피를, 아이들은 초콜릿 우유를 하나씩 마신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음료인 넥타르(Nectar)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황홀한 맛을 비로소 느낀다. 이 맛을 잊지 못해 다음번 동네 뒷산 산책은 쉬어야지 하면서도 제일 먼저 집을 나서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불곡산 트레킹 코스는 아내가 준과 큐를 가졌을 때 운동 삼아 오르던 코스이기도 하다. 이제 그 코스를 둘이 아닌 넷이 함께 걷다 보면 감회가 새롭기는 하다. 멀리서 보면 참 아름다운 그림이다. 하지만 사실 가까이서 보면 딱히 아름답지만은 않다. 준과 큐는 들고 온 등산스틱을 서로 갖겠다든지, 서로 안 갖겠다든지 하는 이유로 티격태격하기도 하고, 불과 몇 미터 걷지도 않고 물을 마신다며 자주 멈춰 서곤 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철인 3종 경기 선수 포스를 철철 풍기는 아내는 어느새 저만치 앞장서 가고 있다. 아웅다웅하는 형제를 말리기도 하고, 힘들다며 쉬어가자는 형제를 밀고 끌고 하며 마치 삼보일배하는 마음으로 준&규 형제를 추슬러 여정을 마무리하는 것은 언제나 내 몫으로 돌아온다. 그러고 보면 동네 뒷산 산책이 힘든 이유가 꼭 긴 거리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그럼에도 산길을 걷다 보면 좋은 것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이름도 모르는 예쁜 산새를 만나기도 하고, 딱딱딱딱 나무를 쪼아대는 딱따구리를 만나기도 한다. (물론 그중 다수는 딱따구리라 아닐 것이다.) 준은  혼자서만 새끼 고라니 두 마리를 보고 무지 기뻐했고, 따뜻한 봄기운에 먼저 나온 나비를 만나기도 한다. 일부 구간이지만 어린 삼나무 숲도 아름답고 봄을 맞이하는 이름 모를 나무들의 변화 과정을 지켜보는 일도 즐겁다. 일상이 주는 소소한 즐거움이, 온 가족이 건강하다는 사실이 무척 행복하다. 


  예전에는 당연히 공짜라고 여겼던 것들이 더 이상 공짜가 아니다. 국민학교 시절 체육시간이 끝나면 누구나 수돗가로 달려가 자연스럽게 수돗물을 마실 수 있었지만 물을 사 먹는 시대가 된지도 오래되었다. 공기는 아직 공짜지만 조금 더 맑은 공기를 위해 집집마다 공기 청정기가 한 대 이상은 돌아가고 있기도 하다. 우리의 편안함을 대가로 우리(지구)가 지불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부디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이런 소소한 행복들을 우리 아이들도,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도, 그 아이들의 아이들도 누리게 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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