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쾌락

건강한 뇌를 유지하는 방법

by 최작가

저녁에 혼자 시간을 보낼 때는 오디오북이나 팟캐스트를 들으며 걷는 게 내 일상이다. 운동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건강이 장기투자 종목이라는 의견에 동감하며, 시간이 날 때마다 걷고 몸을 움직이려고 노력한다. 누구는 운동하면서 흡수하는 정보가 기억에 오래 남는다고 했다. 캄캄한 밤, 걸으면서 배우는 나만의 세계, 나름 중독성이 강하다.


가끔씩 Hidden Brain이라는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걷는다. 얼마 전에 들었던 주제, "The paradox of Pleasure". 쾌락의 역설! 제목이 신선해서 듣기 시작했는데 큰 영감을 주었다. 스탠퍼드 대학의 Anna Lembke이라는 교수가 쓴 Dopanin Nation이라는 책을 토대로 현대사회에서 쾌락과 고통의 역학관계를 설득력 있고 흥미롭게 풀어갔다.


그녀는 요즘 소위 잘 나간다는 사람들 사이에 중독문제가 심각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녀는 심리학자로서 고객들을 만나 심리치료를 하는데, 직업적인 성공과 안정적인 가정을 갖추고 남부럽지 않게 사는 사람들 사이에 알코올중독, 스포츠베팅, 대마초중독, 포르노 등 다양한 중독에 병들어 있는 환자가 많다고 했다.


Anna 자신도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40대 중반에 로맨스 소설에 중독이 되어,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에도 흥미를 잃어갔다. 그날그날 최소한의 임무만 끝내면, 자극성이 강한 로맨스 소설을 밤낮으로 읽어 생활이 마미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느 날, 동료와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이 중독상태임을 깨닫고 로맨스 소설을 끊었는데, 마치 알코올 중독자가 금단증상을 겪는 것처럼 몸과 마음이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한 달이 지나고 이제는 괜찮겠지 하며, 다시 로맨스 소설을 읽었는데, 또다시 중독상태가 되는 자신을 보고, 한번 중독에 노출되는 뇌가 완치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면서 그녀는 현대인들의 뇌가 도파민 중독에 쉽게 노출되어 있다고 했다. 별다른 노력 없이 온라인 게임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편리하게 놀거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뇌는 더 중독상태에 빠진다고 설명했다. 뇌는 점점 더 강도가 센 쾌락을 찾으면서 중심을 잃고 쾌락의 노예가 되어간다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면 움직이질 않는다.


이 지점에서 Anna는 고통과 쾌락의 상관관계에 대해 설명한다. 인간의 뇌는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특성이 있어서, 쾌락 지수가 올라가면 그만큼 고통의 깊이도 커진다는 것이다. 마치 시소처럼, 쾌락과 고통이 각각의 축을 이루고, 시소를 타듯 우리의 뇌는 쾌락과 고통을 유기적으로 활성화시키며, 평형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쾌락이 치솟은 후에, 고통은 바닥을 치며, 그 과정이 장기화되면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고 했다.


그녀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일부러라도 일상 속에서 고통을 설계하고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적당한 고통은 쾌락 지수를 올리며, 작은 일상에도 기쁨을 느끼게 해 준다고 했다. Runner's high가 그 예이다.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경험한다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엔도르핀의 짜릿한 경험. 시작하기는 싫어도, 일단 집을 나가서 숨 가쁘게 뛰고 나면, 뇌가 맑아지고 나도 모르게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상태. 그런 선순환을 안정적으로 경험하면서 도파민 중독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운동뿐만이 아니다. 내 역량 밖의 일을 시작하는 자신감, 불편하지만 해야 할 말은 하고 갈등을 풀어내려는 용기, 단기 보상은 적어도 장기적인 가망성에 시간을 투자하는 등, 지금 당장 내게 보상과 즐거움을 주지는 않아도 자신의 원하는 바에 한 걸음씩 우직하게 걸어 나가는 것이 그 고통의 예라고 생각했다.


도파민은 우리 뇌에서 동기부여라는 중요한 역할을 책임진다. 그러나 뇌가 도파민에 지나치게 자극되면, 지속가능한 일상이 힘들어지고, 심한 우울증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럴 때, 고통을 적절히 활용해야, 도파민 중독을 막고 도파민의 긍정적인 영향을 똘똘하게 활용할 수 있다.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일종의 고통을 설계하는 방법이다. 생각의 꼬리를 붙들며 문자로 생각을 정리할 때, 처음에는 글이 될까 싶다가도 일단 생각이 가는 대로 글을 쓰다 보면 마침표를 찍게 되는 순간, 그때의 짜릿함때문에 나는 자꾸 이곳에 오는 것 같다.


내게 고통이란,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복잡하던 머릿속에서 빠져나와 뭔가를 밖으로 끄집어내려는 과정과 결과라 생각한다. 습작을 해보는 행위, 악기를 연습하는 행위, 달리며 걷는 거리와 시간, 생각을 연결시켜 계획안을 만드는 행위, 재수 없는 상사에게 할 말은 하는 용기, 하루하루 중요한 일을 해내는 것, 배달시키지 않고 집밥 해 먹기...


당장 재미는 없어도 꾸벅꾸벅 고통을 감내하다 보면, 당장 결과가 좋지는 않아도 우리의 뇌는 고통과 쾌락의 평형상태를 유지하며 삶을 윤택하게 이끌지 않을까? AI로 시끌시끌한 요즘, 고통의 중요성이 더 크게 다가온다. 개미와 베짱이가 생각난다. 편안하게 살고 싶었는데 늙어서 건강하게 살려면, 또 개미처럼 열심히 살아야 하는구나. 2026년 어떻게 고통을 설계할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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