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onversation during the lunch
2025년 2월 21일 점심을 준비하다가 생긴 일이다.
배경설명이 좀 필요한데,
나와 남편은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이다. 나와 남편은 국제부부이다. My husband is Chinese, and I am Korean.
남편과 나는 동기이다. 같은 과는 아니지만 과 단위에서만 보면 뭐 비슷하다. 보통 5년 차 초가 되면 우리 분야에서는 잡마켓, job market,에 나간다고 하는데. 그 말은 다시 말해, 구직활동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보통은 3개월, 길면 6개월도 뭐.. 직업을 못 찾으면 본인 의사와 학교의 동의하에 1년도 걸리고 2년도 걸릴 수 있는 일이긴 하다.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치열한 마켓을 거치고, 남편은 Shanghai에 있는 학교 중 한 곳으로부터의 교수직 오퍼를 받아들였다. 나는 작년엔 준비가 되지 않아 마켓에 나가지 않았고, 올해 가을 마켓에 나갈 예정이다. 자세한 이야기는 뒤로하고.. 아무튼.
남편이 마켓에 나가기 전 그리고 나가있는 동안 점점 narrow-focused 상태를 유지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내가 그를 챙겨야 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나는 남편과 집안일을 함께하는 것에 매우 만족하고 있는 편이었는데, 남편이 너무 바쁘고 자기 연구에 빠져있는 동안 내가 주방에 있어야 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남편한테 네가 좀 해라고 할 수 있는데, 배려하는 차원에서 그리고 뭐, 남편을 챙긴다는 그런 뿌듯함에 취해 좀 귀찮아도 할 만했다. 남편도 어느 정도 나의 support를 인정하는 듯했고, 나는 남편의 마켓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마켓이 끝났다고 다 끝난 게 아니라는 걸,, 마켓의 치열함에 취해 잠시 잊었던 것 같다. 남편은 디펜스를 준비하느라 또 정신이 없었고, 나는 여전히 주방을 지켜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전 11시쯤, 물을 마시러 나왔는데 싱크대에 아침을 먹은 (우리는 달걀을 삶고, 오트밀, 시리얼, 과일, 요구르트 뭐 이런 걸 먹기에, 기름진 설거지 거리들은 없다) 플레이트들이 그대로 있고, 지난 저녁에 쓴 머그들과 차를 우린 티팟 등이 그대로였다. 사실 이건 매우 흔한 일이다. 나는 설거지를 바로바로 해야 하고, 남편은 컨디션에 따라 바로 하기도 하고, 모아놨다가 하기도 한다. 나만 학교에 다녀오는 날, 그가 먹고 난 점심 그릇 (그는 나보다 그릇을 덜 쓰기에 한두 개 정도이다)을 치우는 날들도 종종 있었다. 그런 날은 "나에게 선물을 남겨줬네?"라고 놀리며 설거지를 하곤 한다. 딱히 기분이 나쁘진 않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설거지를 하고 주변을 좀 정리하고 나니 30분? 이 지난 것 같다. 밥을 하는 데 1시간 정도 걸리니까 "밥을 짓자"라는 생각으로 팬트리 문을 열었는데, 쌀을 담아두는 작은 컨테이너에 쌀이 채워져 있지 않았다. 그러자 문득,
"아니, 이 쌀통은 최근 들어 내가 채우는 날이 너무 흔한데?"라는 생각이 들며 기분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쌀을 옮기고, 전기밥솥을 돌린 후 손을 보니 손톱을 자른 지 3일도 안 되었는데 벌써 다시 자를 정도로 길고, 손톱이 약하기에 흰색으로 갈라져가고 있었다. 밥을 짓고 방으로 돌아가려 했는데 점심 준비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냉장고에 닭 thigh 살이 있기에 그걸 가지고 간장 양념 후 감자도 넣어서 조리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닭을 꺼내 다듬는데, 뭔가 기분이 계속 나빠지는 것이다. 어느 정도로 나빠졌냐면, 닭에 뼈가 있어서 이걸 정육 하는 작업을 하던 중이었는데,
"아니, 얘는 왜 순살 놔두고 뼈 있는 걸 산 거지?"라는 생각을 할 정도.
사실 저 생각을 할 때는 인지하지 못했고 순간의 감정이긴 했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어이가 없는 생각이었다. 그만큼 뭔가가 맘에 안 든 거다.
설거지 + 쌀통 채우기 + 밥 짓기 + 점심거리 준비라는 어느 때와 같은 자연스러운 집안일을 한 후에 남편 연구방으로 들어가 손톱을 보여주며, "왜 또 내가 오늘 점심을 하고 있냐, 내 손톱 좀 봐봐"라고 투정을 부렸다.
그랬더니 남편도 어이가 없었는지 평소보다 강하게 반응했다. 내가 종종 그러면, 그냥 "Okay Okay" 하며 뽀뽀하는 시늉을 하고 마는데, 이날은
"I didn't ask you to acknowledge me when I cook for you."라고 말하며, "Why do you blame me?"라고 물었다. 내가 종종 손톱타령했는데, 얘도 맘에 담아놓았던 게 확실하다.
그러자 나도 욱해서,
"I’m not blaming you. I just want your care, but these days I feel that I am not properly taken care of by you. I was expecting something to pay off after your job market, but now you are busy with your dissertation defense."라고 받아쳤다. 솔직히 저렇게 받아칠 것까진 아니었는데, 이미 말이 나와버렸다.
그러자 이 남자는 "Then let's make an Excel chart and start counting from now on."이라고 말한다. 오 마이갓.
내가 의도한 건 이런 대화가 아니었는데, 대화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I don't mean that we need to make scientific evidence and argue."라고 말하며 일단은 내 방으로 돌아왔다.
나는 남편이 알아서 눈치로 뭘 해주길 바라는 타입은 아니다. 나와 남편은 문화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에, 애초에 눈치를 보는 게 불가능하다. 그래서 원하는 게 있으면, 나는 직접적인 부탁 또는 요구를 한다. 사실 원하는 걸 말하는 게 경제적으로 효율적이고 감정적으로도 편하다. 그런데 내가 왜 굳이 이런 상황을 만들었을까? 그냥 "있다가 저녁은 준비는 네가 해줘"라고 하면 편할 것을. 짧게 내 마음을 돌아보니, 결국 정답은 내가 서운함을 느껴왔다는 데 있었다. 내가 더 많이 챙겨주고 있는 게 맞고, 이 사람도 그걸 인정하는데, 뭔가 난 그 인정이 불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보상심리가 충족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보상이란 그가 나를 챙겨준다는 느낌인데, 그 느낌이 결여되었던 것이다. 그는 그의 방식을 고수하는 편이기에, 나를 챙겨주는 일도 그의 방식대로 한다. 그러나 나는 상대의 편의를 맞추는 편이다. 그 차이점 때문에 나의 보상 심리가 충족되지 않았던 것 같다.
점심을 먹으려고 앉아서 보니, 남편 입이 잔뜩 나와있다. 그래서 "내가 너한테 내 감정을 그냥 너무 맥락 없이 전이해서 미안해."라고 사과하며, 왜 그렇게 된 것 같은지 위와 같은 나의 분석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I think I often feel that what I have been doing for you is unfair, but I wasn’t very nice when I expressed that feeling earlier. I enjoy being a supportive wife, but I just felt overwhelmed at that time when I stopped coding and went to do the kitchen work while you continued your work comfortably. I wish you would make some bandwidth for me now. Work will always be there, but we need to balance and distribute our focus between work and life."라고 덧붙였다.
남편은 이해했다, 알겠다고 말하며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하루가 지난, 오늘, 그가 오래간만에 "Do you want me to prepare lunch?"라고 물어왔고, 점심을 먹은 후엔 "Do you want me to wash the dishes?"라고도 묻기에 "YES!! I WILL ACCEPT YOUR OFFER."라고 즉답했다. 난 기회를 놓치지 않지, 하하.
- 오늘 점심에 있었던 일,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