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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글 Dec 23. 2022

인도에서 생긴 일(16)

조드푸르로 가는 버스

 모래 카레를 두어 번 더 먹고 나자 어느덧 사막 사파리의 종점에 다다라 있었다. 이윽고 지프를 타고 도착한 처음 장소로 도착했다. 그 사이 우리는 꽤 가까운 사이가 됐다. 기차에서 만난 여자라고 부르던 여자를 소영이라 부르게 됐고, 소영이는 나를 언니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덩달아 내게 누나, 누나거리며 궁금하지 않은 둘의 러브스토리를 기어코 들려줬다.


 한인식당 매니저에겐 오빠라고 부르기로 했다가 한국에 와이프와 아이가 있다는 말에 형님으로 호칭을 정리했다. 한인식당 여자 손님 두 명과는 그다지 친해지지 못했지만 사는 지역이 지근거리여서 한국에서 만나기로 약속하며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다. 소영과 일행으로 함께 온 두 커플과는 SNS 맞팔을 맺었다.


 운 좋게도 모두 모나지 않고 유쾌한 사람들을 만난 덕분에 사막에서의 2박 3일을 무사히, 또 즐겁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만남을 기뻐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헤어짐은 분명 슬프지만 또다시 만날 것을 알기에 웃으며 각자의 길로 돌아섰다.


 나의 다음 목적지는 조드푸르였다. 조드푸르로 가는 이유는 간단했다. 진짜 목적지인 푸쉬카르로 가기 위해서였다. 푸쉬카르까지 한 번에 닿는 길이 없었기에 먼저 조드푸르로 가야만 했다. 조드푸르는 관광 도시를 잇는 거점으로 많은 여행자들이 한 번쯤 들렀다 가는 곳이다. 자이살메르에서는 기차로 6시간, 버스로는 5시간이 소요된다. 기차는 연착시간까지 더한다면 10시간쯤은 걸릴 것이다. 비교적 큰 연착 없이 제시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공영버스는 하루에 손에 꼽을 정도로 편수가 얼마 없긴 하지만, 사설버스를 이용하면 선택지가 다양해진다. 적당한 시간대의 버스표를 끊고 남은 시간 동안 버스 스탠드 주변에서 어슬렁거렸다.


 “버스표 샀어?”


 영인이었다. 영인, 그리고 주언을 버스 스탠드에서 마주쳤다. 그들과 나의 최종 목적지는 달랐지만 그들이 향하는 곳 또한 조드푸르로 가야 닿을 수 있기에 자연스러운 만남이었다. 2박 3일 함께 시간을 보낸 동갑내기들이라 금세 친해진 우리는 동네에서 우연히 마주친 초등학교 동창들처럼 편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응. 지금으로부터 제일 빨리 가는 걸로 샀어. 너희는?”


 “우리도.”


 주언이 대답했다. 주언과는 그다지 길게 대화를 나누진 않았지만 왠지 편안했다. 주언도 그런 내가 불편하지 않은 듯 자연스럽게 대했다. 둘째 날 밤에도 주언은 내게 자신의 담요를 덮어줬었다. 그리고 아침이 되어 내가 짜이를 마시는 동안 슬며시 담요를 걷어갔었다. 내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을 주언도 알고 있을까. 아님 별로 의미 있는 행동이 아니라 신경 쓰지 않는 것일까. 궁금했지만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았었다.


 “우리랑 같은 버스 아니야? 봐바.”


 영인이 내가 들고 있던 버스표를 가져갔다. 영인은 편한 친구 같기도 하고 남동생 같기도 하다. 말이 많아서 성가시다가도 오지랖 부리며 챙겨주는 모습을 볼 땐 든든하고 고맙다. 사막에서 내가 볼일을 보러 갈 때마다 멀찌감치 서서 사람들이 내쪽으로 오지 못하도록 괜히 말 걸어준 것을 안다. 어떻게 아냐고. 영인이 본인 입으로 하도 생색을 내서다. 물론 그 행동은 내게만 해줬던 것은 아니다.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볼일을 볼 때마다 영인은 길을 막아줬고 더 떠들어댔다.


 “맞네. 같은 버스. 또 같이 가겠네. 잘됐다. 너 혼자 보내서 조금 걱정됐는데. 그치?”


 “그러게. 마실 것 좀 사서 탈까?”


 영인의 말에 주언이 무심히 대답하며 작은 슈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군것질거리를 잔뜩 사가지고 나왔다. 그리고는 내손에 콜라 한 병을 쥐어주더니 콜라를 벌컥벌컥 마신다.


 “아, 나는 사막에서 콜라가 그렇게 생각나더라고.”


 주언의 말에 델리에서 함께 걷다 벌컥벌컥 콜라를 마셨던 일이 떠올랐다. 벌써 떠올릴 추억이 있다니. 오늘도 며칠 후 또 추억이 되겠지. 우리는 사이좋게 콜라를 마시며 버스로 향했다. 출발 시간이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버스로 올라탔다. 버스는 생각했던 것보다 쾌적했다. 버스표에 적힌 대로 자리를 찾았다. 내 자리는 거의 맨 뒤쪽이었다. 맨 앞쪽인 영인과 주언의 자리와는 거리가 있었다.


 내 옆자리에는 또 다른 배낭여행객이 앉았다. 덩치가 큰 남자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인사를 건넨다. 이스라엘에서 왔다며 악수를 청하는데 술 냄새가 풍겼다. 조금은 무례한 제스처에 순간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사막에서 대화를 나눴을 때 누군가 이스라엘 여행객을 조심하라고 했던 게 떠올랐다. 이스라엘 여행객과 시비가 붙었던 모양이다. 그 말에 또 누군가가 말을 거들었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조금 억세고 무례하다고. 하지만 내 옆에 앉은 남자는 그냥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일지도 모른다. 이 두려움은 편견이 만들어 낸 것이다. 애써 웃으며 악수에 응하려는데 나 대신 누군가 이스라엘 남자의 손을 덥석 잡았다. 영인이었다.


 “저기 앞에 가서 앉아. 자리 바꿔줄게.”


 영인은 맞잡은 손을 흔들며, 이스라엘 남자에게 여기는 원래 자신의 자리라며 자기와 여행메이트가 된 것을 축하한다며 농담을 건넸다. 그리고 내게 눈짓을 보냈다. 나는 얼른 짐을 챙겨 자리를 옮겼다. 영인이 신경 쓰이고 미안했지만 다섯 시간 내내 이스라엘 남자의 술주정을 들을 생각을 하니 거절의 미덕을 보일 수도 없었다. 주언의 옆에 앉아 뒤를 흘끔 돌아보니 영인과 이스라엘 남자는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그제야 불편한 마음이 조금 가셨지만, 미안한 마음이 사라지진 않았다. 조드푸르에 도착하면 맛있는 걸 사줘야겠다. 아님 선물을 사주는 게 좋을까.


 “괜찮아? 영인이가 보더니 너 울 것 같다고 하던데.”


 주언이 내 어깨를 토닥였다.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뒤를 돌아봤다. 영인의 얼굴은 조금 피곤해 보였지만 이스라엘 남자가 하품을 쩍쩍하는 것으로 보아 곧 잠들 테니 괜찮겠지. 버스가 출발했다. 창밖으로 자이살메르의 풍경이 스쳐 지나간다. 푸쉬카르의 풍광은 어떨까. 그 역시 절경이고, 장관이겠지. 영인과 주언의 배려로 이동 내내 느꼈을 공포감대신 다음 여행지에 대한 설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달할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다. 다섯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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