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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풀 May 14. 2020

야성의 나린

ⓒ 바람풀


나린이 손을 잡고 강둑으로 나갔다. 노란 달맞이꽃이 아이 키보다 훨씬 크게 자라 있었다. 얼마 전 나린이 머리를 바리캉으로 밀어주었다. 자꾸만 머리를 벅벅 긁어댄 탓에 두피에 붉은 딱지가 가득했다. 땀을 많이 흘려서 그랬나? 솜털 같은 머리카락 사이로 바람이 슝슝 불어오니 이젠 시원하겠지?


세상에 나온 지 열일곱 달, 이제 혼자서도 잘 걷고 잘 뛰어다닌다. 아이를 데리고 나가면 사람들이 자꾸만 쳐다보며 귀엽다고 말해준다. 그럴 때마다 내가 관심을 받은 양 으쓱해진다. 아이가 귀한 시골이라서 더 그럴지도 모른다. 아이가 웃으면 주위에 좋은 향기가 번진다. 보호막처럼 빛이 아이를 에워싸고 맑게 빛난다. 너무 귀여워서 볼록하게 올라온 젖살을 자꾸만 깨물고 얼굴에 입술을 비비며 쪽쪽 거린다. 밤새 악마가 나타나 혹시 아이를 데려가진 않았을까  하고 자다 일어나 아이의 존재를 확인한 적도 여러 번이다. 쌔근쌔근 잠자는 아기를 보고 크게 안도했던 마음이라니.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무조건적인 사랑이란 게 이런 걸까?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벅찬 감동과 이보다 더 힘든 일은 다시없을 것 같은 빡센 돌봄의 무한 반복. 육아가 그랬다.


요 녀석, 요즘 동네 아이들 팔뚝과 손가락에 이빨 자국을 남기고 다닌다. 한 달 먼저 태어난 선유도, 석 달 빠른 뀬이 오빠도 나린이에게 깨물려 여러 번 울었다. 어느 날은 선유가 으앙 하고 아주 크게 울어서 달려가 봤더니 팔뚝에 나린이 이빨 자국이 두 군데나 찍혀 있었다. 뀬이 오빠도 한 번 물리고 난 뒤부터 나린이 앞에서는 빽빽 소리를 지르고 손을 격하게 내저으며 뒷걸음질 친다. 뀬이로 말할 것 같으면 괴산군이 주최한 모유 수유 대회에서 무려 일등상을 차지한 우량아이다.


친구를 물려는 순간에 재빨리 뛰어가면 혼날 줄 알고 후다닥 도망치는 나린이. 나도 물려봐서 아는데 그건 노란 별이 뺑글뺑글 돌아가는 장면과 함께 찾아오는 아픔이다. 그러니 가녀린 팔뚝을 지닌 아가들은 얼마나 아팠을까. 아기들이 울면서 손가락을 내밀면 거기엔 어김없이 선명한 나린이 이빨 자국이 콕! 증거가 명백해서 빼도 박도 못 한다. 순한 동네 아이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나린이의 이 넘치는 야성을 어찌하면 좋을까. 육아서를 보니 애정 결핍과 욕구불만이 원인일 수 있다고 하는데 내 애정이 부족한 걸까? 너무 귀여워서 자꾸만 쭉쭉 빨고 핥은 게 문제였나? 초보 엄마다 보니 모든 게 알쏭달쏭하다.

에잇, 육아에 정답이란 없잖아. 좀 더 애정을 주며 천천히 지켜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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