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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풀 Jun 21. 2020

집 이야기 1

어려서부터 내가 살고 싶은 집을 상상하는 걸 좋아했다. 잠들기 전 눈을 감고 허공에 집을 그리는 일은 가장 설레고 가슴 뛰는 시간이었다.  

 세모난 지붕의 다락방이 있다면 참 좋을 텐데 / 나무 위에 지은 작은 오두막도 참 근사할 거야 / 천정을 유리로 만들어 잠들기 전 밤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다면 정말 멋지겠지? / 숲 한가운데에 유리로 된 원룸을 지어 혼자 살아도 좋을 것 같아.

상상 속에선 어떤 집도 가능했다.




한 방에 여섯 식구가 모여 살던 어린 시절에는 주로 내 방에 대한 상상에 집착했던 것 같다. 집에 대한 생각은 크면서 조금씩 바뀌었지만 관심은 쭉 이어져 대학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때는 주로 해외 인테리어 잡지에 나오는 공간들에 매혹되었다. 동화 속에나 나올법한 유럽의 농가주택을 보며 군침을 삼켰고, 모던, 빈티지, 인더스트리얼 어쩌고 하는 다양한 스타일의 주택과 상점들은 언제나 내 눈을 후리기에 충분했다. 디자인 회사에 다닐 때에는 청담동이나 신사동에 있는 고급 매장들을 돌며 늘 새로운 재료와 트렌드에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내 취향대로 한껏 꾸민 집에서 잘 나가는 디자이너로 사는 것. 그게 당시 내 꿈이었고 성공한 삶이라 여겼다.




인테리어나 건축 잡지에 소개된 디자이너들은 대개 유학파였다. ‘잘 나가는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는 유학을 다녀와야 하는구나.’ 생각했다. 파리로 가리라 결심하고 불어 학원을 다니며 유학 준비를 했다. IMF사태가 터진 해였다. 조용히 유학을 접었다. 대신 유학 준비한답시고 조교를 하며 1년 반 동안 저축한 돈으로 호주와 뉴질랜드를 여행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관심 있는 건 단지 물리적인 형태의 집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 속에서 삶을 꾸려가는 사람과 그들의 이야기가 내 심장을 뛰게 하는 실체였음을. 철없는 허영과 헛된 욕망으로 유학을 떠났더라면 우리 집은 거덜 났을 것이며 내 능력의 한계를 뒤늦게 깨닫고 깊은 절망에 빠졌을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와 회사에 취직했지만 직장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내가 맡은 업무는 광고대행사의 전시와 이벤트 담당 부서로 코엑스나 킨텍스 같은 전시장에 기업의 신제품 홍보를 위한 전시부스 디자인과 설치를 책임지는 일이었다. 밤낮없이 디자인하고 준비했던 모든 것이 대개 삼일 정도 지나면 고스란히 쓰레기장으로 향했다. 그 당시 모 환경단체 회원으로 맹렬하게 활동하던 중이어서 산업폐기물을 양산하는 일에 더 이상 가담할 수 없었다. 양심의 가책이 끝없이 밀려왔다.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에 재취업했지만 그것도 몇 달 만에 그만두었다. 일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밀려왔다.  어느 순간 책과 잡지에 소개된 공간에 대한 수사들이 본질을 빼먹은 껍데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다시 긴 여행을 떠났다. 네팔, 인도, 파키스탄, 티베트, 중국. 히말라야 산맥을 둘러싼 나라들을 신나게 돌아다녔다. 그 길 위에서 집에 대한 생각도, 내가 머물고 싶은 공간에 대한 상상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집에 대한 생각의 변화는 곧 삶을 대하는 방식과 태도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내게 있어 구경 중의 으뜸은 집 구경이다. 어딜 가나 남의 집 담장 안을 들여다보는 걸 좋아한다. 크고 화려한 집에는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물론 굳건히 닫힌 위압적인 대문이 내 출입을 허락하지도 않을 테지만 말이다. 반듯하게 잘 지어진 새 집보다 주인의 손때와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집에 더 마음을 뺏기는 편이다. 작은 정원과 마당이 있는 집이면 그 관심은 배가 된다. 여행지에서도 이름난 관광지 투어보다는 현지인들이 사는 마을 구경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곤 했다. 도시보다는 자연 그대로의 물성을 드러낸 채 가진 게 많지 않아 보이는 집일수록 내 발길을 잡아끌었다. 그런 집들은 대개 열려 있었다. 값나가는 게 없으니 굳이 문을 걸어 잠글 이유가 없는 것이다. 마당에서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흘러넘쳤고 불쑥 찾아온 이방인에게도 환한 미소와 따뜻한 차를 내주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풍족하진 않아도 베풀 줄 아는 여유와 아량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자연에 기대어 그저 자연의 일부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한 그루 나무 같은 담담한 사람들.  한 줌 햇살처럼 따뜻한 사람들. 바람처럼 구름처럼 그저 무던히 주어진 생을 사는 이들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백수를 자처하며 ‘이제부터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겠노라’ 고 스스로에게 선언했다. 날마다 고밀도의 지하철을 타고 회색 빌딩 속으로 출근하는 일을 버렸다.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하나씩 찾아가기 시작했다. (서른 중반에 접어든 딸년이 여행을 다녀와 집안에만 있었으니, 그 당시 부모님 속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때 되면 알아서 하겠거니 믿어주는 게 부모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미덕이라 나는 여긴다.^^) 우선 집 근처에 다닐 만한 공방을 물색했다. 나무를 만지고 다듬는 작업은 내게 큰 위안과 즐거움을 주는 일이었다. 여러 공방을 다니다가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공방 하나를 소개받았다. 자전거를 타고 저수지를 한 바퀴 빙 돌아 오솔길을 달리면 한적한 동네에 전원카페가 나왔다. 카페 너른 마당 한편에 후덕한 인상의 청년 혼자서 가구를 만드는 공방이 있었다. 제자를 받지 않는다는 청년을 겨우 설득해 책상이나 의자 등 가구 만드는 일을 배워나갔다. 나무를 깎고 다듬으며  독립할 방도를 궁리했다. 그 시절 환경단체 회원들과 함께 읽고 토론하던 책 속의 주인공들이 내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헬렌과 스콧 니어링,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제인 구달, '무탄트 메시지'의 호주 원주민들과 '오래된 미래'에 소개된 라다크 사람들.... 그들처럼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안개처럼 피어났다. 그들이 앞서 보여준 삶을 나도 구현해보고 싶은 열망이 점점 깊어갔다.



새가 스스로 제 둥지를 만들 듯이 인간 스스로 자기 살 집을 짓는 게 맞다. 사람들 손수 제 살 집을 짓고 자신과 가족을 위해 간소한 식량을 정직하게 마련한다면 그들 속의 시심(詩心)이 꽃을 피울지도 모를 일이다. 새들이 그런 일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듯이 말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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