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이들의 노래

사월의 들풀

by 바람풀


야생화.jpg 괭이눈/큰개불알꽃(봄까치)/광대나물 ⓒ 바람풀



여기저기서 꽃송이 터지는 소리가 봄바람에 실려온다.

시선을 두는 곳마다 찬란한 꽃들이 피어나는 4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계절이다.


저마다 한껏 생명을 피워 올리는 자연 앞에서

언제부턴가 찬탄할 아름다움과 무력한 슬픔을 동시에 느끼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아름다움과 슬픔은 본디 같은 뿌리에서 나온 감정일까?

올해도 환하게 만발한 벚꽃을 보며 가슴 한편이 아려오는 통증과 아름다움과

알 수 없는 쓸쓸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산골마을에 들어와 두 딸을 낳아 키우던 시절, 그땐 나도 마냥 어린아이였다.

아이들과 함께 들판과 계곡을 누비며 신나게 뛰어놀았다.

몇 번의 사계절을 지나고 보니 아이들은 훌쩍 자라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고통의 씨앗이 움트며 나라는 존재에 대한 고민이 불쑥 고개를 드는 시기.

예측하지 못한 딸들의 성장통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밖의 일이었다.

그때가 딱 이맘때였다.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매 순간 먹먹해서 눈물이 나던 때,

무력하게 올려다본 허공에서 벚꽃이 바람에 흩어지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사월에 움트는 생명의 몸짓에서 가슴 한편이 아려오는 묵직한 슬픔을 느끼는 이유가.

'저 여리고 보드라운 것들이 수천 번 수만 번 흔들리며 크겠구나.'

태초부터 각인된 모성애의 DNA가 새봄에 싹트는 모든 식물에게 투영되는 지나친 감정 이입.

그건 아마도 자식을 낳아 키우는 '엄마'라는 이름의 생명체가 지닌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숙명과도 같은...


그럴 땐 시선을 땅에 두고 걷는다.

언 땅을 뚫고 올라온 작은 꽃들이 수줍게 인사를 건넨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설렌다.

고깔제비꽃, 자주알록제비꽃, 꽃마리, 봄맞이꽃, 큰개불알꽃, 괭이눈, 현호색, 광대나물, 민들레, 냉이꽃, 꽃다지, 별꽃, 쇠별꽃, 개별꽃, 말냉이, 망초, 애기똥풀, 소리쟁이, 쇠뜨기, 노랑괴불주머니, 붉은토끼풀, 환삼덩굴...

미처 이름을 다 불러주지 못한 풀들이 끊임없이 고개를 내민다.

산책에 나선 나는 좀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몸을 낮추고 앉아 소박하게 올라온 꽃잎과 이파리를 찬찬히 살피다 보면

봄바람에 살랑대는 풀들의 말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저마다 다른 색과 모양으로 새봄의 대지를 물들이는 존재들.

키가 작으니 다른 풀에 뒤질세라 어서 씨앗을 맺고 퍼뜨려야 한다.

한껏 화려하게 피었다가 금방 지고 마는 꽃이 아니다.

몇 달간 무리 지어 잔잔하게, 끊임없이 피고 진다.

'인간에 의해 재배되는 식물이 아닌, 주로 산과 들에 알아서 번식하는 잡다한 풀'

인간에 의해 '잡초'라 명명된 바로 그 들풀들.


이제 곧 둥굴레가 속곳속곳 올라오고 아가의 솜털 같은 다복쑥이 다복다복 올라오겠지.

딱지풀, 씀바귀, 구슬붕이, 은방울꽃, 큰꽃으아리, 엉겅퀴, 닭의장풀, 고마리, 여뀌..

물결치 듯 쉼 없이 피어날 것이다.

누군가는 뽑고 또 뽑아버리고, 누군가는 몸을 납작 엎드려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볼 것이다.

밟혀도 뽑혀도 계속 자라나는 잡초 같은 마음이 내 마음에서도 계속 자라난다.

내 주변의 이웃의 얼굴과도 닮아있는 들풀들.






산책할 때 발밑의 풀들을 잘 살펴보시기를.




사월에 피는 들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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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개불알꽃(이름이 거시기?하다고 봄까치꽃으로 개명됨) / 꽃마리 / 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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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맞이 / 괭이눈 / 현호색
KakaoTalk_20250421_100909171.jpg 씨앗이 맺힌 괭이눈."I See You"라고 말하는 것 같다.


고양이 눈을 닮았대서 '괭이눈'이라는데 꽃이 피었을 땐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일주일 뒤 꽃 진 자리에 씨앗이 맺힌 걸 보고 무릎을 쳤다. 수많은 눈이 나를 바라보는 듯한 그 모습이라니.




쇠뜨기.jpg 쇠뜨기풀이 변해가는 모습 ⓒ 바람풀


쇠뜨기풀은 그 자체로 한 그루 나무를 연상시킨다. 포자로 번식하는 양치식물로 연갈색 포자식물이 먼저 자라고 난 뒤에 초록이 긴 줄기를 피워 올린다. 쇠뜨기풀 군락지는 그 자체로 숲이다. 내가 만약 '마루 밑 아리에티'처럼 작아진다면 쇠뜨기 숲은 내 놀이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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