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다시 할수 있을까
경상도가 고향인 남편과 1년 남짓 연애를 했다. 경상도 사람이고 막내였던 남자와 전라도 사람이고 장녀였던 여자가 커플로 만난 것이었다. 나를 향한 오랜 남편의 호감이 교제를 시작하게 된 동기가 되어 대화가 잘 통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하지만 경상도 남자는 전화 통화는 1분 이상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데이트할 때마다 느껴지는 경상도 남자의 무뚝뚝함이 시간이 지날수록 거리감으로 느껴졌다. 남편은 퇴근이 늦었고, 나는 다시 편입해 야간수업을 들어서 데이트는 늦은 저녁이 되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 데이트를 할 수 있었는데 그 시간도 무등산을 가든지, 담양 근처의 야외를 자주 갔었다. 한번은 담양 소쇄원을 저녁 늦게 갔는데 남편은 가로등도 없는 캄캄한 길을 혼자서 앞질러 걸어가는 것이었다.
나를 좋아하는 감정이 있다면 이런 어두운 길을 걸을 때는 손을 잡고 다정하게 걸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 사람은 도대체 나를 좋아하는 것일까?
데이트하고 돌아온 날이면 한참을 고민했다. 남편의 감정이 정말 나를 좋아하는 감정이 맞는지 늘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의심스러운 경상도 남자와 1년의 연애 끝에 결혼했다. 만약 우리가 직접 만나서 하는 데이트를 자주 했더라면 우리는 결혼까지 골인이 어려웠을 것 같다. 말로 하는 표현이 서로가 서툴고 더디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남편도 직장 퇴근이 9시가 넘을 때가 많았다. 나도 수업이 밤 10시까지 이어질 때가 많아 자주 만날 수 없어서 메일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내향성이 강해서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 못 했던 성격 때문에 소리 나는 말보다 글을 더 좋아했었다.
소리 나는 말을 하는 사람에게 말로 상처를 많이 받았다. 소리 나지 않는 활자로 기록된 글이 편했다. 어린 시절 활자가 친구가 되었고, 글과 책이 멘토가 되었다. 남편과 메일을 주고받으니 글을 통해 전해지는 남편의 진심이 느껴졌다. 직접 만나면 나에 대한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는데, 글을 통해 전달되는 남편의 진심은 구구절절 깊은 감동이 되었다.
어려서 책을 제법 읽고, 한자를 터득한 남편은 메일에 한자를 섞어 나를 향한 애정과 삶에 대한 철학을 글로 풀어냈다. 나에 대한 특별한 애정과 인생을 같이 걸어가고 싶은 그의 소망이 메일에 담긴 글귀마다 느껴졌다.
말로는 잘 표현하지 못하는 나도 글을 통해 내 마음을 전달했다. 남편에 대한 나의 특별한 마음을 용혜원 시인의 시에 담아 보냈다. 내가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시 한 편에 가득 담겨 있었다. 이 시가 나의 마음이라고 메일에 적었다.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
(용혜원)
그대를 만나던 날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착한 눈빛, 해맑은 웃음
한마디, 한마디의 말에도
따뜻한 배려가 있어
잠시 동안 함께 있었는데
오래 사귄 친구처럼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내가 하는 말들을
웃는 얼굴로 잘 들어주고
어떤 격식이나 체면 차림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솔직하고 담백함이
참으로 좋았습니다.
그대가 내 마음을 읽어주는 것만 같아
둥지를 잃은 새가
새 둥지를 찾은 것만 같았습니다.
짧은 만남이지만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오랜만에 마음을 다해
맞추고 싶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에게
장미꽃 한 다발을 받은 것보다
더 행복했습니다.
그대는 함께 있으면 있을수록
더 좋은 사람입니다.
직접 만나도 내 입으로는 전할 수 없었던 말, 남편에게 꼭 전하고 싶었던 말을 한 편의 시에 담아 글로 적어 메일을 보냈다. 시 한 편을 통해 전달된 나의 마음에 남편은 너무 행복하다 답장을 보냈다. 말이 서툴렀던 우리는 글을 통해 소통하며 연애했다. 덕분에 서로를 더 깊이, 더 넓게 알아가고 이해할 수 있었다. 남편은 경상도 남자여서, 나는 결핍이 많은 여자여서 우리는 말로는 표현이 늘 서툴렀기 때문이다.
‘말’이 아닌 ‘글’ 덕분에 우리는 무사히 결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