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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사라 Aug 03. 2021

나는 결핍이 많은 사람입니다

사랑, 할 수 있을까

인생의 어려운 질문에 부딪힐 때마다 

나는 항상 나무에게서 그 해답을 얻었습니다.’

우종영,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나무 의사 우종영 작가의 소나무에 대한 소개가 인상 깊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가 소나무이고, 4,000년의 세월을 지나오면서 한민족의 강인함을 상징하는 나무로 소나무를 소개한다. 소나무의 강인함은 해만 충분히 들면 산꼭대기 바위틈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질긴 생명력에서 온다. 1년에 딱 한 마디씩만 생장하면서 천천히 자라기 때문에 천년의 풍상을 견뎌 낸다. 속성을 택한 자유 생장 나무들과의 경쟁을 피해 소나무는 어떤 나무도 좋아하지 않는 바위 땅을 택해 어렵더라도 천천히 자라기를 선택해 왔다. 미국 캘리포니아 산악지대에는 4845년의 나이를 자랑하는 므두셀라 소나무가 있다.      


오래된 장수 소나무들은 속성수가 없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느리지만 자기만의 속도로 자라면서 경쟁을 하지 않는 나무이기에 오래 살 수 있다. 소나무는 주변의 나무와 비교하지 않고, 속성수들의 속도를 부러워하지도 않는다. 주어진 환경에서 강인함을 발휘한다. 소나무의 느린 속도감이 나의 느린 인생의 속도를 위로해 주었다.      


소나무는 항균작용을 하는 피톤치드와 테르펜이 있다. 솔잎과 송진에 탄닌과 정유 성분이 있다. 그래서 다른 식물들이 근처에 가기를 싫어한다. 이를 ‘타감작용’이라고 한다. 햇빛을 많이 받아야 하는 소나무가 주변 나무들이 자라는 것을 방해하는 화학작용을 하는 것이다. 이 물질들은 분해자들도 싫어한다. 솔잎은 탄닌도 있는 데다가 리그닌이 많아 맛도 없고 분해도 잘 안되기 때문이다. 소나무는 다른 나무가 주변에서 햇빛을 가리면 죽기 때문에 생존을 걸고 이상한 물질을 내뿜고 토양을 척박하게 한다.      




유일하게 소나무와 잘 어울려 자라는 식물이 있다. 그 이름은 맥문동이다. 햇빛을 좋아하는 소나무와 반대로 맥문동은 음지 그늘을 좋아한다. 이파리가 난을 닮아 가늘어 떨어지는 솔잎도 잘 피할 수 있다. 소나무처럼 사계절 내내 푸름을 지닌다. 소나무 아래 척박한 땅에서도 여름에 꽃을 피워낸다. 가을이면 검은 열매를 맺는다. 피로 해소와 체력강화에 좋은 약재료로도 쓰인다. 봄이 아닌 여름에 꽃을 피워내는 맥문동, 유일하게 소나무와 연인이 되어 함께 뿌리를 내리고 하모니를 이루며 살아간다.       


소나무는 성장 속도도 느리지만, 다른 나무와 더불어 살 수 없는 독특함을 지녔다. 소나무가 심어진 곳에는 다른 나무들이 공존할 수 없다. 하지만 소나무는 외롭지 않다. 자신의 단점과 독특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늘 곁에 함께 머물러 주는 맥문동이 있기 때문이다. 


소나무의 양지 취향과 어우러지는 맥문동의 음지 취향, 하늘 높이 자라는 소나무의 고고함과 어우러지는 낮은 키의 맥문동, 소나무와 맥문동은 다른 점도 많지만 사철 푸름을 자랑한다. 잎사귀도 솔잎처럼 닮았다. 맥문동은 소나무를 극진히 사랑하는 연인임이 분명하다.      


장항 스카이워크 가는 길에 소나무 숲을 뒤덮고 있던 맥문동을 처음 보았다. 

함께 걷던 남편이 맥문동이라는 식물의 이름과 특징을 알려 주었다. 다른 나무들은 소나무와 함께 살지 못하는데 소나무와 살 수 있는 유일한 식물이 맥문동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남편의 설명을 들으면서 맥문동과 소나무의 독특한 어우러짐에 나는 무척 감동되었다. 



소나무를 향한 맥문동의 수줍은 고백이 나에게 조그맣게 들려지는 듯했다.      


수줍은 고백 

(홍사라)

     

그대가 양지를 좋아하니

나는 음지를 좋아합니다.

그대가 하늘 높은 곳까지 높이 자라니

나는 낮은 곳에 늘 머물러 있겠습니다.

그대의 사철 푸름과 고고함과 강인함을 

나는 무한사랑하고 닮아가고 싶습니다. 

그대 곁에 아무도 없어도 외롭지 않게 

늘 그대의 벗으로 머물러 있겠습니다.     


생각해보니 소나무와 나는 닮은 점이 많았다. 소나무만큼이나 인생은 속도가 느렸다. 다른 사람들이 뛰어가거나 걸어갈 때 나는 달팽이처럼 기어가는 느낌이었다. 동기들이 모두 졸업해 활기찬 활동을 하고 있을 때 나는 출산과 육아로 멈추어 있었다. 졸업 후 체력이 저하되면서 나의 인생 속도는 더욱더 느려졌다. 






여성 목회자라는 독특함을 지녔다. 남자 목회자들은 아내인 사모들이 육아와 살림을 맡아 사역에만 집중하면 된다. 여성 목회자인 나는 출산도, 육아도 내가 감당해야 했다. 남자 동기들과는 출발선 자체가 달랐다. 나에게 주어진 여성성은 암담함을 안겨주었다. 


소나무의 독특한 삶에 무척 공감되었다. 나도 속도가 느리고, 독특함을 지녔기 때문이다. 


장항에서 맥문동을 통해 소나무의 희망을 보았다. 아무도 소나무 곁에 남지 않지만, 맥문동만은 소나무를 사랑한다. 소나무 곁에 머물러 꽃을 피워낸다. 결혼 후 남편은 독특한 소나무 같은 나의 삶에 맥문동이 되어 주었다.      



어려서부터 결핍이 많고 상처를 많이 가진 아내였다. 목회자라는 독특한 직업을 지닌 아내였다. 늘 학업과 사역을 쉬지 않고 병행하면서 일을 만들어 내는 아내였다. 소나무처럼 남편에게 날카로운 솔잎만 떨어뜨리는 아내였다. 맥문동처럼 남편은 늘 곁에 머물며 떨어뜨리는 솔잎에 아프다 불편하다 하지 않았다. 내가 양지를 좋아하니 자신은 음지가 좋다며 나의 독특함을 장점으로 칭찬하며 한결같은 사랑을 주었다.    

  

대부분의 가정은 남편이 소나무가 되고, 아내가 맥문동이 되어 살아간다. 반면 우리 부부는 아내가 소나무가 되고 남편이 맥문동이 되는 독특한 콤비를 이룬다. 우리는 서로의 다른 모습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살아간다. 


소나무처럼 속도가 느린 인생이어도 괜찮다. 

소나무처럼 독특함을 지녀도 맥문동과 함께 당당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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