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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사라 Aug 03. 2021

그의 그늘까지도 기꺼이 사랑할 수 있기를

사랑, 할 수 있을까

〈이태원 클라스〉라는 드라마에서 가장 여운이 남는 장면이 있었다. 극 중 여주인공 조이서는 아이큐 162의 똑똑한 소시오패스이다. 소시오패스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의 하나로 분류된다. 공감 능력이 결여되어 잘못된 행동에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조이서는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박애주의자 박새로이를 사랑하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성공시켜주기 위해 조이서는 대학을 포기하는 결단력을 발휘한다.      


조이서의 짝사랑이 사랑다운 진짜 사랑임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다. 어느 날 조이서는 박새로이 몸에 군데군데 흔적으로 남은 흉터들을 발견했다. 흉터가 생긴 이유를 묻는다. 몸 곳곳에 새겨져 있는 다양한 상처를 만지면서 조이서는 박새로이의 힘겨웠던 과거를 추적한다. 박새로이 마음의 그늘을 남은 흉터와 상처를 통해 헤아린다.      


박새로이가 그동안 혼자 감당해온 그늘의 시간을 조이서는 눈물로 어루만진다. 조이서는 사장으로 성공할 박새로이를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 조이서는 박새로이의 그늘을 사랑했다. 박새로이의 상처를 손으로 만지며 우는 조이서의 눈물이 사랑다운 진짜 사랑이라 느꼈다. 상대의 그늘을 헤아리고 그늘을 품는 것이 사랑다운 진짜 사랑이라 정의하고 싶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나의 그늘을 볼 수 있고, 나의 그늘까지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도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의 그늘을 볼 수 있기를, 그의 그늘까지 기꺼이 사랑할 수 있기를 원했다. 모든 사람에게는 양지와 음지가 공존한다고 생각한다. 양지는 누구에게나 보이지만 음지는 마음 깊은 곳에 감추어 두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깊숙한 그늘을 볼 수 있고, 그늘까지 사랑할 수 있어야 사랑다운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남편을 만나 연애를 하는 동안 서로의 그늘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했던 나의 그늘을 남편에게 오픈했다. 남편의 그늘은 무엇일지를 곰곰이 살폈다. 내가 발견한 남편의 그늘은 그의 부모님이었다. 남편은 늦둥이 막내로 태어나 큰형님과 15살 차이가 났다. 어린 시절부터 연로하신 부모님을 마주해야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부모님을 떠나 고등학교는 진주에서, 대학은 부산에서 다니면서 부모님과 함께 한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이 부족했다.      


남편은 부모님에 대한 마음이 각별했다. 각별한 마음이 효자의 경지에 이를 정도가 되었다. 신혼 시절 명절이면 남해 시댁을 방문했다. 막내였지만 우리 부부는 가장 먼저 시댁에 도착해 제일 늦게 시댁을 나왔다. 오래 머물렀는데도 떠나올 때 남편은 연로한 부모님을 남겨두고 떠나는 마음이 좋지 않다고 항상 아쉬워했다.      


남편에게 사랑한다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남편을 잘 내조하지도 못하는 엉터리 아내라서 남편의 그늘을 더 사랑하고 싶었다. 남편의 그늘인 그의 부모님을 더 사랑하고 나의 부모님처럼 섬기는 것이 사랑다운 진짜 사랑이라고 정의했다. 



친정아버지가 스무 살에 돌아가셔서 연로한 시아버지가 살아계신 것이 그냥 좋았다. 신혼 시절 혼자 시댁을 방문했을 때 시아버지께서 나에게 “너는 막내딸이다”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 한마디가 참 따뜻했고 환대받는 느낌이 들었다. 첫아들을 임신해 9개월 만삭이 되었는데 시아버지께서 탈장 수술을 하러 광주병원에 입원하셨다. 일주일 넘게 입원해 계셨는데 매일 병실을 오가는 나에게 다들 “딸이냐?”라고 물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시부모님은 몸이 아프시면 언제나 광주 오셔서 입원하셨다.      


다른 형제들이 직장을 다녀서 간호가 어려운 현실적인 사정도 있었다. 무엇보다 편찮으신 부모님을 곁에 두고 돌봐드리고 싶은 남편의 마음이 제일 간절했다. 시아버지는 젊어 결핵을 앓으셨다. 폐가 건강하지 못해 감기에 걸리면 폐렴과 함께 호흡곤란이 왔다. 입원을 한번 하면 보통 한 달 반이 넘게 입원 치료를 해야 했다. 일 년에 한두 번은 기본으로 시아버지는 입원 치료를 하셔야 했고, 그때마다 남편은 광주로 모셔왔다.




시어머니는 갈비뼈가 자주 부러지셨고, 뼈가 붙는 시간은 한 달이 넘게 걸리셨다. 두 분 다 연로하시니 자주 아프시고 한번 입원을 하시면 기본 한 달이 훌쩍 넘어갔다. 일 년에 한 두번 이상은 시부모님이 번갈아 입원하셨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신지 2년전 돌아가시기 전까지 거의 18년 동안 시부모님이 입원하실 때마다 간호했다. 나중에는 아들이 성장해서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프시면 왜 광주로만 오시나요?” 질문할 정도였다.      


남편은 부모님이 곁에 계시는 것이 좋았다. 시아버지가 입원해 계신 날들은 병원 간이침대에서 매일 잠을 자고 출근을 할 정도로 지극정성이었다. 시어머니의 건망증 치매가 점점 깊어가고 시아버지의 건강도 너무 악화하였다. 돌아가시기 전 두 달은 우리 집에 머물다 집 가까운 요양병원에 입원하셨다. 결국 회복이 안 되셔서 시아버지는 먼저 떠나가셨다.      


남편에게 시아버지는 너무나 큰 산이었다. 요양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도 매일 퇴근길 시아버지를 뵙고 귀가할 정도였다. 과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남편이 버틸 수 있을지 그것이 걱정되었다. 남편에게 한 번도 매를 들지 않으셨고, 시골 섬 동네에서도 남편을 데리고 서점 나들이를 하셨다고 했다. 그 당시 구하기 어려운 녹음 카세트를 사주실 정도였으니 남편은 정말 극진한 사랑을 받았고 받은 사랑을 자신도 돌려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시댁은 명절이면 흰색 한복을 갖춰 입고 경건하게 제사를 지냈다. 명절에 성묘하러 가면 사촌들과 형제들은 모두 줄을 서서 절을 했고 우리 가족만 서 있는 분위기였다. 시댁에서 교회를 다니는 가족은 우리 집이 유일했다. 남편의 그늘이었던 시부모님을 사랑했다. 18년 동안 아쉬움 없이 시부모님의 병간호에 헌신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부모님을 위해 수고한 우리 부부에게 형제들이 기독교장으로 장례를 진행하도록 동의해 주었다.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정호승     


누군가를 사랑할 때는 그늘까지 사랑할 때, 사랑다운 진짜 사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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