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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사라 Aug 09. 2021

가시가 많은 엄마여도 괜찮아

사랑, 할 수 있을까

자녀 교육의 핵심은 지식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자존감을 높이는 데 있다” 

-레오 톨스토이-     


결혼을 통해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되고, 셋이 넷이 되었다. 식구라는 이름을 지니고 한 둥지에서 함께 먹고, 함께 자고, 함께 품는 가족이 되었다. 그렇게 19년을 살아왔다. 내가 정의한 사랑은 언제든 지친 날개를 쉬고 다시 날아갈 힘을 주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따뜻했던 기억이 없는 나는 아이들이 태어날 때마다 고민이 되었다. 나는 가시가 많은 고슴도치 엄마였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흘려보낼 애정의 잔고가 없었다.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친구들은 아이를 키우는 모습이 즐겁고 행복해 보였다. 마냥 예뻐서 아이를 물고 빨고 끝없이 사랑스러워했다.      


나에게 온 생명이 손가락, 발가락이 무사하게 건강하게 태어난 것은 정말 감사했다. 그런데 그저 예쁘고 사랑스럽다고 하기가 어려웠다.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나의 자유가 구속되는 불편함이 아이의 사랑스러움보다 더 컸던 게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한 육아서적을 열심히 읽었다. 경험이 없으니 책을 통해 지식으로라도 아이를 어떻게 사랑할지, 어떻게 키워야 할지 배우고 싶었다. 책을 읽어도 아이들에게 언어와 스킨십으로 사랑한다 표현하는 것은 어려웠다. 엄마라면 당연히 물 흐르듯 표현해야 하는 사랑이 나는 경험해 보지 못해서 입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아이들에게 글로 '사랑한다’ 아주 가끔 표현하지만 말로는 ‘사랑한다’ 표현을 잘 못하는 불량 엄마이다. 고슴도치 엄마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방법을 오랫동안 고민했다. 






고슴도치 엄마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3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는 아이들의 아빠와 갈등이 있어도 아이들 앞에서 다투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 둘째는 항상 햇살 같은 밝은 미소를 발산하는 것, 셋째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놓치지 않는 것이었다.      


어릴 적 우리 집은 부모님의 부부싸움에 대한 풍경들이 많았다. 아빠는 매일 술에 취해 귀가하셨다. 아빠의 귀가는 곧 전쟁의 시작이었고 삼 남매는 할머니가 계신 방으로 이동해 이불 속에 숨어야 했다. 엄마와 아빠의 고성이 오고 간 뒤 물건들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전쟁 후 엄마는 피난을 가야 했다. 스무 살 무렵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이런 풍경이 반복 재생되었다.      


부모님이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엄마와 아빠가 서로를 사랑한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가족이 한집에 살면서, 부부로 살면서 사랑하지 못하고 매일같이 전쟁을 치르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너무 슬프고 아팠다. 부모님이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모습에서 나도 사랑받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늘 다투고 전쟁을 벌이는 풍경은 슬픈 자화상과 낮은 자존감을 안겨 주었다. 내 마음에 깊은 우울감을 선물해 어린 시절 우울감에 시달려야 했다. 혼자의 힘으로는 헤어 나올 수 없는 심적 고통이 마음에 가득했다. 만약 결혼해 아이를 낳게 된다면 나는 아이들에게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겠다고 굳은 결심을 했다. 


마냥 사이좋은 부부가 될 수 없겠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전쟁의 풍경을 보여주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다. 결혼 후 남편에게도 간곡하게 부탁했다. 신혼 시절 자주 침묵으로 보름 이상의 시간을 소비했던 우리 부부였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 신혼 때는 격렬한 전투를 종종 했다. 남편에게 아이들 앞에서 싸우는 풍경을 보이고 싶지 않으니 부디 싸우더라도 아이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싸우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남편에게 어린 시절의 아픈 상처들을 자주 이야기했기에 이해해 주었다. 우리 부부는 자존심이 둘 다 높아 신혼 초에는 갈등이 많았다. 다툼은 자주 생겼지만, 원칙은 지키려고 노력했다. 다툴 일이 생길 때는 아이들을 먼저 잠재웠다. 아이들이 잠들고 난 후 격렬하게 전쟁을 했다. 언성이 더 높아질 것 같은 날은 카페로 장소를 옮겨 전쟁을 벌였다.      





남편의 주식 투자 실패 사건이 발생했다. 제동을 걸어도 남편은 멈추지 못했다. 더는 제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결혼의 마침표를 어렵게 결심했다. 결혼 후 처음으로 친정엄마를 소환해 이혼하겠다고 선포했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아이들을 동생에게 부탁해 잠깐 놀이터에 나가 놀다 오라고 했다. 


전쟁이 끝나면 부부가 남남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혼을 하더라도 아이들에게는 마음의 흉터를 남기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이혼의 위기는 법정까지 골인하지 않았다. 남편이 브레이크를 밟겠다고 협의를 해주어 전쟁은 평화로 종결되었다.      


아이들에게 부부가 서로 미워하고 다투는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금까지 19년 동안 지켜왔다. 아이들을 재운 뒤 싸운 적이 많았다. 데이트한다고 외출해 차 속에서, 카페에서 언성을 높이며 다툰 적도 많았다. 하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부부가 다투거나 싸우는 모습을 보인 적이 한 번도 없다. 함께 살아온 부부의 시간이 쌓일수록 갈등을 조정하는 시간이 짧아진 덕분이기도 했다.  


고슴도치 엄마라서 지금도 사랑을 소리 언어로 잘 표현하지 못한다. 어색해서 스킨십으로 자주 쓰다듬지도 못한다. 그런데도 아들과 딸은 자존감이 하늘을 찌른다. 아들은 자신을  ‘보배로운 아들’이라 정의하고, ‘이 정도면 잘 자란 거예요.’라며 거들먹거린다. 딸은 자신을 ‘우리 집 빛나는 보석’이라 일컬으며 무엇이든 좋고 싫음을 분명하고 당당하게 표현한다. 집안에서보다 집밖에서 더 사랑받고 칭찬받는 아이들로 성장해 주어 다행이고 감사하다.      


여성학자 박혜란 작가는 가수 이적의 엄마로 더 유명하다. 그녀는 자신의 저서《다시 아이를 키운다면》에서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은 행복”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는 성공해야 행복하다고 믿어왔다. 미래의 성공과 행복을 위해서라면 현재는 불행을 참아야 하고 희생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는 행복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라고 정의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에 빠지지 않고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능력, 자신이 가진 것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 실패하더라도 다음에 성공할 수 있다는 긍정의 마음이 아이에게 주어야 하는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고슴도치 엄마는 내일의 행복이 아닌 오늘의 행복에 집중했다. 

가시가 많은 고슴도치 엄마도 자기만의 방법으로 아이들을 충분히 사랑할 수 있다.  

결핍이 많은 고슴도치 엄마도 아이들에게 홈메이드 자존감을 심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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