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덧과 함께 사라진 9월
단축근무는 커녕 야근이나 안하면 다행.
8월 셋째주에 임신을 확인하였고, 그다음주부터 본격적인 입덧이 시작되었다. 친정엄마가 입덧이 심했다고 늘 말씀하셔서, 혹시 나도? 라는 생각을 하고 있긴 했는데, 나의 입덧이란 가히 상상을 초월했다.
8월 마지막주부터 메스꺼움과 구역질 정도로 시작되었던 입덧은, 점점 심해져 9월에는 정점을 이루었다.
먹기만 하면 토했다. 사무실에서 일을하다가 뛰쳐나가서 토한게 매일의 일상이었다. 그래서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다. 그런데 또 먹지않으면 먹지 않아 속이 더 안좋아졌고. 먹지않으니 이제는 노란 액체를 토하기 시작했다.
입덧에 좋다는건 다 먹어봤는데 아무 소용이 없었다. 유명한 입덧 캔디도 내게는 무용지물이었고, 입덧에 좋다는 크래커도 나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단순히 속만 안 좋앗던 것이 아니다. 말로 표현 할 수 없이 오장육부가 다 아팠다. 회사에서 앉아잇는것 조차 힘들고, 집에와서 끙끙 앓으면서 잠이들었다. 위와 장이 모두 아팠다. 입덧때문에 소화기관이 약해져서 인지, 아님 그냥 이것도 입덧의 한 증상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속이 너무아파서, 내가 임신이 아니라 죽을병에 걸렸는데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임신하면 초기에 아이는 갑상선 호르몬을 만들지 못해서, 엄마가 더 많은 갑상선 호르몬을 만든다던데, 이로인해 피곤함이 같이 동반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
속이 아프니, 잠조차 푹 자지 못하고, 너무아파 이를 너무 꽉 깨물어서, 아침에 일어나면 턱이 얼얼하고 치통까지 왔다.
그런데 그렇게 힘든 와중에도 나는 병가는 커녕, 단축근무조차 제대로 쓸 수 없었다.
왜냐면 당시 업무가 너무 많았기 떄문이다. 그때 '감사. 정기의회, 예산 , 2023년 업무계획 + 원래하던 기본업무' 을 모두 처리해야하는 시즌이었고, 서무+ 개인사업을 담당하고 있던 나는 엄청난 업무량을 처리해야했다. (2023년 2월이나 되어서야 완성된 2023년 업무계획을 왜 2022년 9월부터 만들어내라고 사람들 들복았는지 아직도 미지수이다.)
서무였던 나는 감사와 정기의회 2023년 업무계획을 위한 자료를 모두 수합하여 정리하고 책자를 만들어야 했고, 또 나는 내 개인 사업이 있었기에, 그 개인사업에 해당되는 각각의 자료들도 작성해야했다.
보통은 따로따로 진행되는 업무들인데, 2022년 그 해에만 그 세가지를 9월 안에 동시에 작성해서 제출하라고 들볶였다. ( 그리고 2022년 9월에는 추석이 들어있어서, 업무를 처리해야하는 시간이 더욱 부족했다.)
사람들이 보내주는 자료를 최종으로 정리하고 수정해야했기에, 단축근무를 하는게 쉽지 않았다. (종종 남아서 야근도 했고, 추석연휴에도 나와서 근무했던것으로 기억한다. ) 또 예산업무의 경우...하 그해에 갑자기 엄청난 액수를 삭감해야한다고 끝없는 조정을 요구했기에 평상시보다도 더 정신없고 바빳다.
입덧 + 엄청난 업무 로 진짜 1주일에 1키로씩 빠졌다. 원래도 많이 나가는 체중은 아니었는데, 입덧으로 힘든데 살까지 빠지니, 출퇴근할때 정말 지하철에서 기어다니다 시피 했다. (임산부 교통 바우처는 16주가 지나야 발급 받을 수 있기에 택시를 타는것은 부담도 되었고, 또한 ..입덧이 너무 심할때 택시를 타는것도 멀미가 나서 나는 택시를 탈 수 없었다. )
물론 나는 다행히 너무 좋은 동료들이 있었다. 당시 옆자리 내 짝꿍이 내 전임자이기도 했고, 워낙 좋은 사람이라서 정말 나를 많이많이 도와주었다. 그래서 너무 힘들어서 2시간 단축근무를 쓰고 퇴근하는 날이면, 그래도 그가 나의 업무들을 대신 처리해주곤했다. (아직도 너무 고마운 일이다. ) 그리고 부서원들도 좋은 분들이라서, 당시 나의 힘들어함을 이해해주시고 엉망진창으로 진행되던 나의업무들을 이해하고, 도움을 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조직'에서 '개개인'들에게 바라는 업무역량은 꽤나 엄청난 것이어서, 특히나 임신에 입덧 시즌을 보내고 있던 나는 너무나 괴로웠다.
(** 임산부라서 배려를 받는게 아니라... 개인들이 굳이 야근 주말출근을 하지 않아도 업무를 처리할 수 있을 만큼의 업무량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ㅠㅠ 흐흐흐ㅡ흫ㄱ)
병가를 내고 일주일이라도 쉬어볼까라는 생각이 정말 수십번씩 들었다. 하지만 내가 병가를 내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그렇게 들어가버리면, 나의 이 엄청난 업무를 , 나를 위해 배려해주고 도와주던 내 옆자리 짝꿍이 고스란히 혼자서 다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엉망진창으로 하더라도, 내가 나와서 내일은 하고 그사람이 도와주어야 하는 상황이 되어야지, 나를 위해 배려해준 사람에게 그런 짐을 주고 싶지 않았다.(부서장이 나쁜게 아니라..우리 조직의 시스템상 그럴 수밖에 없다..)
또 이렇게 힘든 와중에도 다행히 아이는 잘 자라주고 있었기 떄문에 병가를 쓰지 않았다. (만약 아이가 잘 자라지 않는 상황이었다면 나도 어쩔수 없이 병가를 사용했을 것이다. )
그렇게 2022년 9월은 내게 '힘들다'라는 기억만 남기고 통째로 사라져버렸다. 날짜가 어떻게 지나 가는지 몰랐다. 그냥 매일 출근하고 토하고, 하루하루 버텨내는게 일상이었다. 심지어 환절기라 가을옷을 꺼내입어야하는데, 옷장정리할 겨를이 없어서 매일 같은 옷을 입고 출퇴근 했다. 10월에 접어들면서 입덧이 좀 잦아들었는데, 어느날 TV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이 서거한지도 한달이 되었습니다.' 라는 멘트를 듣고.. (그녀는 나의 입덧과 업무량이 절정일때 돌아가셨다.) 와..벌써 한달이 지났구나..9월이 다 지나갔구나..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