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스페인 가을 여행(24)

결혼 40년 되던 해 2019년 늦가을

by 기현서

21. 빗 속의 부르고스(11.22)


찬 바람 불고 하루 종일 비가 오다


부르고스 도착한 날부터 시작된 비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그래도 어제는 오후에 몇 시간 정도 비가 그쳐 다니기가 좀 편했는데 오늘은 비의 양도 많고 찬 바람의 속도가 강해 우산을 펴고 다니기가 부담이 된다.


그래도 우리는 여행자라 우산 들고 비 오는 추운 거리로 나섰다. 호텔 건너편 불이 환하게 켜진 카페테리아에 들어가 엑스프레소와 카페콘 레체 그리고 샌드위치와 보카디요로 아침 식사를 해결했다. 직장인들이 출근길에 들려 아침을 여기서 해결하고 간다. 창 밖으로 비 오는 거리를 보며 잠시 감상에 젖는다.


짧지 않은 26박 27일 여행도 이제 종반전이다. 몇 개 도시를 이동하다 보니 벌써 20일 가까이 흘렀다. 아내도 시간이 많이 갔다고 말한다. 집 생각 나는 모양이다. 아니면 끝나가는 여행이 아쉬운 것 일까?


비 맞는 엘 시드 동상


엘 시드 광장은 호텔에서 50여 미터 거리에 있다. 말 타고 칼을 든 엘 시드 동상이 높게 서 있다. 동상 주변이 로터리 여서 항상 교통량이 많다. 가까이 접근하기에는 교통량이 많아 어렵고 멀리서 보고 말아야 한다. 구시가의 중요한 랜드마크다.


엘 시드와 부르고스 성과의 관계는 별로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엘 시드가 부르고스 태생은 맞지만 주요 활동 무대가 지금의 발렌시아와 무르시아 지역이기 때문이다. 당시 부르고스는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였고 엘시드는 기사였다.


스산한 부르고스 거리


부르고스 대학 거리와 군사박물관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선다. 중심지에서 벗어난 외곽에 있다. 거리를 측정해 보니 2킬로 미터 정도 된다. 그곳을 돌아본 후 주변에 있는 것으로 파악된 중국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가는 길이 험악하다. 비는 쏟아지고 바람이 세서 우산이 자꾸 거꾸로 뒤집어진다.


구시가를 벗어나니 흔하게 볼 수 있는 넓은 길에 아파트 풍경이 나오기 시작한다. 비는 쏟아지고 바람은 불고 젖은 낙엽이 깔린 거리가 매우 스산하다. 그동안 부르고스의 고풍스럽고 아담한 도시 풍경만 봤다. 조금 외곽으로 나가니 도로가 커지고 공간이 많아지며 단독주택보다 공동주택이 더 많다. 그러다 보니 풍경이 밋밋해진다.


그래도 스페인이다. 여유가 있다. 어디를 가나 플라자가 있고 파세오가 있으며 공원이 있다. 그 공간에서 비 오고 찬 바람 부는 늦가을의 부르고스를 원 없이 느낀다.


넓은 중국 음식점 홀에서 나와 아내만 식사하다


목적지는 찾지 못했다. 포기하고 점심을 먹기로 했다. 애플 지도 앱을 켜고 비 오는 거리를 헤매며 목표로 한 중국 음식점을 찾았다. 400 여 석은 충분하게 될 것 같은 큰 식당 점심시간인데 우리가 첫 손님이다. 아마 단체 관광객을 목표로 한 식당 같다. 아내에게 따뜻한 수프를 먹게 하려고 일부러 찾아왔는데 썰렁하다. 비수기 분위기가 잔뜩 배어있다.


따끈한 수프와 음식을 주문해 배 부르게 먹었다. 음식은 그런대로 만족할만 하다. 중국음식은 어디 가나 대강 돈 값은 한다. 아내는 포만감을 느꼈는지 저녁을 먹지 않겠다고 한다. 실제로 저녁을 사과 하나로 때웠다.


새아기가 놀랜 모양이다


새아기는 지난 5월에 우리 집에 들어왔다. 아들보다 서너 살 어리니까 우리 집에서 가장 나이 어린 사람이다. 생각과 행동이 젊고 명랑하다.


점심 먹으며 아이들 생각나 아내가 새아기에게 전화했다. 전화 후 새아기가 깜짝 놀란 것 같다고 말한다. 아내는 원래 전화를 잘하지 않는 편이다. 자기 기억으로는 5월 말 결혼 이후 새아기에게 하는 두 번째 전화라고 한다. 전화를 잘 하지 않은 시어머니가 그것도 해외에서 갑자기 연락하니 놀랄 수밖에. 전화는 안부를 주고 받으며 즐겁게 마쳤다.


요즈음 젊은이들은 직장에서 과거 우리들 보다 훨씬 힘들게 일하고 있다. 우리는 자식들이 부모 때문에 마음 쓰는 일이 없도록 항상 신경을 쓰고 있다. 가능한 한 정신적 그리고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고 싶다. 그렇게 노력하고 있다.


그래도 새아기는 마음을 쓸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인지상정이다. 새아기는 여행 출발할 때 봉투에 용돈도 담아주고 요즈음 유행하는 얇은 속 옷 패딩도 사다 주었다. 잘 쓰고 입고 있다. 그런데 시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장거리 해외 전화에 얼마나 놀랐을까? 시간이 지나면서 잘 적응할 것이다. 우리 부부는 새아기를 항상 고맙고 귀하게 생각한다.


아들의 늦은 밤 전화


비가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아 식사 후 호텔로 돌아왔다. 씻고 쉬고 있는데 아들한테 전화가 왔다. 아들은 분가해 살지만 우리 집과 가깝게 산다.


딸이 밤에 대학원 모임에 갔다가 늦어져 대중교통을 놓친 모양이다. 택시 잡는 것도 쉽지 않아서 아들에게 연락을 했고 아들이 밤늦게 조치해서 별 일 없이 귀가시킨 것 같다. 아들은 직장 회식이 있어 술을 마셨기 때문에 직접 운전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꽤 답답했던 모양이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는데 아빠에게 안부 겸 공치사하는 것이다.


물론 내가 여행 중이 아니면 딸이 아들한테 연락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내가 없으니 남매끼리 소통하는 수밖에 없다. 수고했고 그래서 그렇게 말해 주었다.


내가 자식들이 다 귀가하기 전에는 집에서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을 아들은 알고 있을까? 나는 원래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집에서 포도주 한 두잔 마시는 것이 전부다. 그런데 그것도 자식들이 밖에서 다 들어온 후 편해져야 마신다. 이런 것은 따로 말할 필요도 없다. 자기들도 자식 낳아 키우고 세월이 가면 자연스럽게 알아질 일이다.


아들은 힘들었다고 말하는데 딸에게 전화하니 남의 일 얘기하듯 대꾸한다. '별 일 없어?' 하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그래서 택시 얘기를 했다. 그제야 'ㅇㅇ가 말했구나' 하고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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