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40년 되던 해 2019년 늦가을
24. 여행의 종착지 다시 마드리드로(11.25)
잔뜩 흐린 날씨의 부르고스
아침 10시 마드리드행 버스를 탄다. 호텔에서 8시 30분에 나왔다. 하늘을 보니 비가 올 것 같이 잔뜩 흐린 날씨이다. 마드리드 날씨도 비슷할까?
5일 동안 머무른 실켄 그란 테아트로 부르고스 호텔은 편리했다. 저렴하면서도 시설도 좋았고 무엇보다도 가고자 하는 곳에 대한 접근성이 매우 좋았다.
그러나 이제는 아디오스(Adios)!
마드리드 가는 길
길게 생각되었던 26박 27일 스페인 여행이 끝나가고 있다. 마드리드에서 시작한 여행이 마드리드에서 끝난다. 마드리드, 톨레도, 세고비아를 빼면 다 낯선 도시들이었다. 동서남북 구분 못한 상태에서 지도 한 장 들고 이곳저곳 찾아다녔다. 그런데 이제 마드리드를 가니 그럴 일은 없다. 익숙한 도시이다. 3박 4일 머물며 충분하게 여유를 가지고 지낼 생각이다.
당초 살라망카(Salamanca)를 갈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마드리드에서의 편안함이 깨질 것 같아 그만 두기로 했다. 아내도 동의한다.
마드리드까지 260킬로 미터 거리이다. 버스로 3시간 간다. 버스의 가장 앞자리에 앉으니 전면 시야가 시원하다. 스페인 고속버스 창은 모두 선팅이 되어있다. 그러나 전면 유리는 그렇지 않아 풍경을 보는데 좋다.
버스는 잘 닦여진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차량이 많지 않아 길도 시원하고 양쪽 들판도 넓다. 스페인 국토는 한 반도 면적의 2배를 조금 넘는데도 불구하고 훨씬 크게 느껴진다. 아마 북부지역을 제외하고 산이 많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하늘도 광활하다.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일상적인 풍경이다.
마드리드 라스 아메리카스(Las Americas) 버스 터미널은 지하에 있다. 일단 지하 터널로 들어가서 미로 같은 좁은 통로를 이리저리 돌아 정차한다. 운전사들의 운전 솜씨가 좋다. 드디어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아파트 호텔 60 발코니스
아파트 호텔 60 발코니스(60 balconies)로 다시 투숙한다. 마드리드에서 마요르카로 출발할 때 미리 예약해 두었다. 카를로스 5세 황제 광장(Plaza del Emperador Carlos V) 코너에 위치해 있는 간판도 잘 보이지 않은 아파트 호텔이다. 과거 오래된 주거 건축물을 리모델링한 것으로 생각된다. 일반 호텔에서 볼 수 있는 반듯한 로비도 없다. 얼핏 시시하게 생각되지만 내부 시설은 넓고 편리하며 현대적이다. 주방 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깨끗하다.
우리의 서울역인 아토차역이 바로 건너편이고 플라자 마욜은 코너 바로 옆길을 20분 정도 쭉 걸어가면 만나진다. 주변에 카페도 많다. 맥도널드 가게도 바로 길 건너에 있다. 던킨 도너츠는 호텔 문 열고 나가면 바로 오른쪽에 있다. 숙박비는 싸지 않다. 호텔 등급이 4 성이다.
호텔 홍보를 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아파트 호텔은 처음이지만 여행이 끝나고 다시 돌아오니 이 호텔이 가장 편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선호가 다를 것이다.
추억 여행: 까에 리오 부야께 6(Calle Rio Bullaque 6) 그리고 카페테리아 라 하이마(La Jaima)
호텔에 짐을 놔두고 2000년과 2001년 2년 동안 살았던 곳을 가보기로 했다. 택시를 타고 살았던 아파트로 바로 가지 않고 라 바구아다(La Vaguada) 쇼핑센터로 갔다. 이 쇼핑센터는 대형 슈퍼마켓인 알캄포(Alcampo)가 입주해 있다. 그래서 매주 빠지지 않고 주말 시장을 보러 갔다.
쇼핑센터 주변 풍경은 그때와 비슷하다. 쇼핑센터 주변의 철 아치 구조물 그리고 파세오의 플라타너스 가로수 모두 그렇다. 아내가 쇼핑센터 주차장 입구 나무들이 큰 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나는 기억이 뚜렷하지 않다. 아내는 식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니 맞을 것이다. 집 베란다 화분에 심어진 나무들도 갓난 애한테 하듯 말을 걸어가며 정성스럽게 키운다.
쇼핑센터를 산책 겸 오가며 자주 다녔던 긴 골목길을 이리저리 걸어 과거에 살았던 아파트에 이르렀다. 20분 정도 소요된다. 예전의 수영장과 테니스장은 그대로다. 외벽은 다소 낡아 보였다. 하기는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눈어림으로 5층 살았나 6층 살았나 가늠해 보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수영장과 테니스장을 시원하게 내려볼 수 있는 층이었으니 그 정도였을 것이다.
라 하이마(La Jaima) 카페테리아는 아파트에서 100미터도 되지 않는다. 아주 소박한 동네 카페이다. 타파스나 다른 음식 맛이 좋았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떠드는 장소이다. 우리도 종종 가서 포도주에 이베리코 하몬을 먹었다. 스페인을 떠나온 뒤 자주 생각나던 곳이다. 아내와 나는 옛날을 추억하며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가 그때와 같다. 바텐더도 그대로다. 다만 공간이 조금 넓어졌다. 어수선한 분위기도 같다. 이 카페테리아가 그리웠다.
자리를 잡고 앉아 타파스(Tapas)로 아내는 오징어 튀김을 그리고 나는 모르시야와 안초비를 주문했다. 물론 생맥주와 함께. 종업원에게 20년 전 이 곳에 자주 왔다고 하니 이곳에서 24년 근무한 종업원이 있다고 한다. 그가 왔다. 아내는 그의 얼굴을 기억했다. 종업원은 그 당시 한국 사람들이 많이 왔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기’그리고‘김을 떠 올렸다. 내 기억에는 뚜렷하게 남아 있지 않다. 그때는 그가 젊었기 때문일 것이다.
바텐더 안에서 이베리코 하몬을 썰어주던 키 크고 마른 노인이 있었다고 했더니 지금은 은퇴했다고 한다. 그 일을 지금 자기가 하고 있다고. 제일 선임인 것 같다.
카페에서 하몬은 썬다는 것은 가장 선임이라는 의미이다. 하몬은 대패로 벗겨 내는 것 같이 칼로 잘 썰어내야 그 맛이 좋다. 썰어 낸 표면에 기름기가 반지르르하게 보이고 색깔도 맑으면 보기도 먹기도 좋다. 그래서 이 일은 경험이 많은 사람이 맡는다.
타파스와 맥주를 다 먹고 마신 뒤 포도주 한잔에 이베리코 하몬을 주문했다. 무척 반가워한다. 자기 일이다. 20년 전과 같이 썰어 오겠다고 한다.
그래 이 크기 맞다. 길게 썰어낸 것이 아니다. 기름도 보기 좋게 흐르고 손으로 집어 먹기 좋게 썰어져 있다. 정말 20년 전 그대로다. 기억 속에 있는 접시다. 천천히 정말 천천히 포도주 한 잔에 이베리코 하몬 한 접시를 다 비웠다. 추억의 카페에서 추억의 음식을 음미하며 먹었다.
이제 다시 오기 어려울 것이다. 카페를 나오며 소박한 입구 사진을 한 컷 찍었다. 라 하이마(La Jaima).
동네 슈퍼 메르카도나(Mercadona)
다시 라 바구아다 쇼핑센터로 돌아오는 골목길에서 가끔 갔던 동네 슈퍼마켓에 들렀다. 위치는 그대로인데 많이 커졌다. 그때는 1층밖에 없었다. 지금은 에스컬레이터까지 설치된 2층 매장도 있다. 아주 정돈되어 관리되는 슈퍼마켓이다.
이 슈퍼마켓 해산물은 항상 신선했다. 그래서 아내는 해산물은 이 곳에서 구입했다. 한 번은 싱싱한 멸치를 사 와 멸치젓을 담근 적도 있다. 해산물 매대를 가 봤더니 역시 신선하다. 아주 깨끗하게 손질되어 있고.
아내는 저녁 식사로 고추장에 찍어 먹겠다고 상치와 치커리 등을 산다. 한국 음식이 그리운 것 같다. 한 달 가까이 한국 음식을 먹지 않았으니 그렇기도 할 것이다.
카르로스 5세 황제 광장 분수대의 불빛 장식
아내가 갑자기 창가로 와 보라고 한다. 커튼을 제치며 광장 분수대 나무의 불빛 장식이 보기가 좋다고.
분수대 옆 나무에 불빛 장식을 해 놓았다. 연말이 가까운 것이다. 호텔 방이 2층이라 커튼을 제치면 바로 밑에 길이 있고 노상 카페에 사람들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이 사람들 같으면 발코니에 않거나 또는 기대서 밑을 구경한다. 그러나 우리는 동양인이라 오히려 구경당하기 십상이다. 커튼을 닫아도 밖을 대강 볼 수 있으니 그냥 커튼을 내린다.
아내는 불빛 장식을 볼 수 있는 방이란 것에 대단히 만족한다. 우리가 두 번째 투숙하니까 호텔에서 호의를 가지고 이 방을 준 것이라고. 모든 것은 해석하기 나름이다. 나는 전에 사용했던 방이 더 넓고 편리했다.
긴 여행 끝 돌아가는 길목의 마드리드 첫날밤은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