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40년 되던 해 2019년 가을
26. 마드리드에서의 휴식 둘째 날(11.27)
파세오 델 프라도(Paseo del Prado)의 가을은 깊어가고
스페인을 떠나기 전날이다. 특별하게 할 일이 없다. 스페인 한 달 살이 하러 왔는데 지내다 보니 다시 눈에 익고 익숙해진다.
날씨는 기분 좋을 정도의 차가움과 함께 햇살이 청명하다. 맥도널드에서 스페인식 메뉴로 아침식사를 마친 뒤 구시가가 아닌 살라망카(Salamanca) 지역을 걷기로 했다. 살라망카 지역은 프라도 미술관과 가까운 지역인데 전통적으로 부촌 지역이다. 현재도 그렇다. 현대식 건물은 드물고 옛 건물들이 관리가 잘 되어 있다. 마드리드 패션 거리인 세라노(Calle Serrano) 거리도 이 지역에 있다.
살라망카 지역 가는 길목의 파세오 프라도는 20일 전과 비교해 가을이 더 깊어졌다. 길 주변 나무들이 더 노랗게 변하고 낙엽이 많이 떨어져 있다. 20일 전 이 거리의 가로수 색깔은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그 사이 노랗게 물들었다.
파세오 프라도에서 보는 카스테야노(Castellano) 대로 풍경도 가을 일색이다. 9시 조금 넘은 시각이니까 아침 출근 시간은 조금 지났지만 차량 행렬이 바쁘다. 마드리드의 교통체증은 서울보다는 덜 하지만 출퇴근 시간 경우에는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멀리 보이는 거리 풍경은 햇살을 받아 환하다. 가을을 담뿍 담고 있다. 청명하다.
프라도 미술관을 지나 알칼라 문쪽으로 올라가는 길목 모퉁이에 코르레오(Correo) 건물이 있다. 우체국인데 스페인 어느 도시를 가나 코르레오 건물이 있다. 그리고 건물이 대부분 아름답게 지어져 있다. 지금은 시청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중국인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알칼라 문(Puerta de Alcalá) 로터리를 왼쪽으로 돌면 세라노 거리가 길게 이어진다. 길을 건너기 위해 알칼라 문 로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또 중국인들이 주변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스페인 여행하면서 거의 모든 곳에서 많은 중국인 관광객을 만났다. 스페인 최대 관광 고객인 듯싶다.
세라노 거리(Calle Serrano) 오래된 카페에서 커피 한잔
세라노 거리의 잘 차려진 카페(Pastelería Mallorca)에 들어갔다. 규모가 매우 큰 카페이기도 하고 종업원도 많다. 고급 카페다. 가격표를 보니 보통 카페의 1.5배 정도 되는 것 같다. 1931년에 이 자리에서 개업해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쉬어갈 겸 앉아 익스프레소와 카페라테를 주문했다. 커피 맛도 좋았지만 곁들여 나온 다과의 맛이 일품이다. 뜻밖의 좋은 경험이다.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세라노 거리(Calle Serrano)
세라노 거리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기 위해 도로 위에 전선을 달아 놓았다. 꼭 세라노 거리만 그런 것은 아니고 살라망카 지역 거리에 특히 많은 것 같다. 그곳에 불이 켜지면 아름다울 것이다. 가게들도 장식을 시작했다. 연말 세일 광고가 곳곳에 붙어 있다.
중국 식품점에서 한국 컵라면 사다
점심을 과거 자주 갔던 중국음식점에서 먹기로 하고 기억을 더듬어 찾아갔다. 결론은 찾지 못했다. 20년 가까이 됐으니 없어지지 않았을 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애플 지도 맵을 열어 다른 주변 중국음식점을 찾아갔다. 그런데 눈에 익다. 짐작해 보니 우리가 식품을 사기 위해 가끔 찾아갔던 중국 식품점이 있던 거리이다. 중국식품가게 자리에 중국음식점이 들어서고 식품점은 길 건너 앞 건물로 크게 이전했다.
아내가 중국식품점에서 컵라면 4개, 찹쌀, 단무지를 산다. 저녁에 밥을 해 먹고 라면을 먹겠단다. 내일 가는데 그렇게 많이? 그랬더니 먹겠다고 그런다. '당신도 많이 먹을라면서' 하고 핀잔도 준다. 한국 음식이 그리운 모양이다. 시간이 꽤 되었으니까. 하여튼 저녁 식사 값은 절약했다.
토르레 에우로파(Torre Europa)
토르레 에우로파는 카스테야나 대로의 레알 마드리드 축구장(Estadio Santiago Bernabeú) 바로 건너편 코너에 있다. 사무동 건물이다. 마드리드에서 높은 건물에 속하고 둥근 형태의 검정색을 띠고 있다.
역사적 구시가를 벗어난 지역에서 랜드마크 성격을 가지고 있는 건물이다. 과거 이 건물에서 근무했다. 현재에도 이 건물에 사무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돌아다니다 이 건물을 만나 사진을 찍어 둔다.
문득 몇 층쯤에서 근무했을까? 하고 쳐다보는데 전혀 기억이 없다. 하긴 20년 전인데... 참 세월이 빨리 가기도 했다. 요즈음 기준으로 보면 많은 나이가 아니다고 하지만 나도 이제 1년 2개월 지나면 칠순이다. 모든 것을 명쾌하게 기억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다.
스페인 여행 마지막 만찬으로 찹쌀밥을 먹다
아내는 찹쌀밥을 하고 상을 차린다. 단무지, 전날 남은 상치와 치커리, 가져온 고추장이 전부지만 출국 후 처음으로 흰 밥을 먹는다. 내가 컵라면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봤더니 내일 아침 두 개 먹으면 된단다. 한국음식이 꽤 그리웠던 모양이다.
내일 아침이면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짐을 싸야 한다. 긴 여행이어서 특히 아쉬운 것은 없다. 떠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