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40년 되던 해 2019년 늦가을
28. 삶은 현실이다(11.29)
아내의 아쉬움
아내는 여행이 종반에 들어서자 안 갈 것 같던 날짜가 벌써 다 지나갔다고 말한다. '벌써 5분의 3이 지나갔네' 그런다. '왜 아쉬움이 있어?' 하고 물어보면 '뭐 그런 것이 아니고 돌아가면 해야 할 일들이 생각나기 시작하니까' 하고 얼머부린다.
속으로 조금 아쉬운 것이다. 평생 집안일 도맡아 해오다 한 달 동안 놀면서 여행하니 얼마나 편했겠는가? 거기에다가 개인 전용 통역사 겸 비서 그리고 여행 가이드를 데리고 원없이 쏘다녔으니 아쉽기도 할 것이다.
돌아가는 길의 마드리드에서는 표현이 점점 구체적이다. '이제 가면 바로 김장해야 하고...', '베란다 장독대 청소도 해야 하고...', '김치 냉장고에 살 어름도 꽤 끼었을텐데 그 것도 제거해야 하고...'
아내는 다시 현실 속으로 돌아오고 있다. 나도 마음이 애잔 하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삶은 현실인 것을 ...
'아~ 또 여행 가면 되지..., 1년 있으면 내 칠순이고..., 당신 칠순도 있고..., 그냥 또 한 달씩 일 저지르자'. 아내는 '그때는 지금 보다 나이가 더 들었을 텐데 힘이 있을까? 사실상 긴 여행은 이번이 끝이지 뭐... ' 하고 말한다. 하여튼 상황 파악은 빠르다.
엉성한 바라하스 공항
바라하스 공항 공식 명칭은 '아돌포 수아레스 마드리드 공항-바라하스(Aeropuerto Adolfo Suarez Madrid - Barajas)'이다. 1975년 프랑코 총통이 민정 이양한 후 초대 수상이었던 아돌포 수아레스(Adolfo Suarez) 이름을 딴 것이다. 그는 스페인 민주화에 헌신한 정치인으로 평가되고 있다. 바라하스는 지명이다. 마드리드 시에 속해 있다.
외국항공사는 바라하스 공항 1 터미널에서 탑승한다. 지난번 마드리드에서 마요르카 갈 때는 4 터미널을 이용했다. 4 터미널은 이베리아 항공만 이용한다.
그런데 1 터미널이 4 터미널보다 많이 노후화되었다. 도착 및 출국장 서비스가 부족하다. 탑승 수속과 검색 등 출국 절차 모두 어지럽다. 이민국을 통과한 후 탑승구가 있는 A구역까지 찾아가는 길은 조금 과장하면 길도 멀뿐만 아니라 미로이다.
우리나라 인천공항이 참으로 훌륭하다는 것과 우리나라 사람들 일 처리하는 것이 참 효율적이고 고객지향적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머리에 들어온다.
인천 2 공항 도착, 현실로 돌아오다.
특별할 것도 없는 12시간 비행이다. 식사 시간이 되었다. 아내는 두말할 것도 없이 비빔밥을 선택해서 먹었다. 별 수 없는 한국인이다. 나는 소고기 스튜를 선택해 먹고 잠이 들었다. 잘 자고 나니 3 시간 남았다. 비행기에서 이렇게 잘 자본 적이 없다. 그동안 나도 모르게 피곤했던 것 같다.
인천 부근의 섬이 보이기 시작한다. 비행기가 착륙한다. 우리나라 기장 들의 비행기 착륙 기술은 세계 최고인 것 같다. 항상 느끼고 있다. 착지를 아주 부드럽게 한다.
공항 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여행은 끝나고 다시 삶 속으로 돌아왔다. 삶은 현실이고 현실로 돌아온 것이다.
아내와 어묵 탕
출국장을 나온 후 분당 행 버스표를 구매하려고 했더니 2 공항 시스템이 1 공항과 다르다. 무인 티켓 판매대만 보인다. 아내에게 짐을 맡기고 매표를 마친 뒤 뒤를 돌아보니 안 보인다. 찾아보니 조금 떨어진 곳에서 어묵탕을 사서 먹고 있다.
그 어수선한 시간에도 아내의 눈에 어묵탕을 파는 판매대가 포착된 모양이다. 내가 '이 와중에도...' 하며 불만스러운 눈짓을 보냈다. 아내가 머쓱해 했다. '어묵탕을 보니 순간적으로 먹고 싶더라고...'라고 말한다. 한식이 빨리 먹고 싶은 것이다.
아내는 특히 어묵을 유난하게 좋아한다.
떠났던 집으로 27일 만에 돌아오다
집으로 돌아와 짐을 풀었다. 크게 쇼핑 한 것이 없으니 가져간 짐 다시 가져온 셈이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돌아다니다 왔다. 계산해 보니 왕복 3일 빼고 24일 동안 34만 보를 걸었다. 하루 평균 14,000보 걸은 셈이다. 24,000보 걸은 날도 있었다. 자유여행이라 걷는 것이 일이었다. 또 걸어 다니다 보니 숨겨진 도시 풍경들을 볼 수 있었고...
아내는 내일부터 살을 빼는 일을 걱정하고 있다. 많이 걸어 다녔으니 뭐 그렇게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결심이 대단하다. 두고 볼 일이다.
집안은 어려움이 없었다. 다행이다. 우리도 건강하게 돌아왔다. 다시 내일부터는 현실을 직시하며 잘 살아가도록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