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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현서 Oct 01. 2022

핑크 타이드: 대중 영합적 좌파 지도자들의 시대

 핑크 타이드(Pink Tide)란 1990년대 말부터 중남미에서는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좌파 정당이 연달아 집권에 성공하여 대부분의 국가에서 좌파 정권이 들어선 정치적 현상을 표현하는 말이다. 핑크(Pink)란 색깔이 내포하고 있듯이 중남미 좌파정권은 붉은색으로 상징되어 왔던 기존의 좌파 색깔과는 다르게 온건한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것도 개별 국가별로 차이가 있다. 특히 베네수엘라는 '21세기 사회주의'를 주창하며 기존의 사회주의 이념에 중남미 해방자인 볼리바르(Simón Bolivar) 장군의 정치적 이념을 가미해 볼리바르식 사회주의 체제를 만들었다. 베네수엘라의 입장에 동조하며 정치적 연대를 한 좌파 국가들로 에콰도르, 볼리비아, 니카라과 등이 있는데 학자들은 이들 정권들을 급진좌파 정권(Radical Leftist Government)으로 그리고 나머지 국가들은 온건좌파 정권(Moderate Leftist Governmnt)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중남미 좌파 정권의 등장은 베네수엘라의 차베스(Hugo Chavez) 정권이었다. 좌파 군인 출신이었던 차베스가 1998년 말 대선에서 승리하고 1999년 대통령으로 취임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물론 중남미에서 좌파 정권의 출현은 그 이전에 1959년 쿠바 혁명으로 등장한 카스트로(Fidel Castro) 정권, 1970년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은 칠레의 아옌데(Salvador Allende) 정권, 산디니스타(Sandinista) 좌파 반군 혁명으로 집권한  니카라과의 오르테(Daniel Ortega)가 정권 등이 있었다. 아옌데 정권은 1973년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군부 쿠데타로 무너졌는데 이후 합법적 선거를 통해 좌파 정당이 집권한 것은 차베스 정권이 처음이었다.


 차베스는 1992년 쿠데타 시도 후 투옥되어 있다가 1994년 2월 집권한 라파엘 칼데라 대통령의 사면으로 석방되어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1997년 ‘제5공화국 운동(MVR, Movement for the Fifth Republic)’을 만들어 1998년 대선 후보로 나서 승리했다.


 제5공화국 운동은 그가 1982년 군 현역 시기 비밀리에 조직한 ‘볼리바르 혁명운동 200(MBR-200)’이 모태가 되었다. ‘제5공화국 운동’은 다시 차베스가 추진했던 볼리바르 혁명에 동조하는 제반 정당과 단체를 아울러 현재의 ‘베네수엘라 통합사회당(PSUV)’이 되었다.


 1999년에 집권한 차베스 대통령은 그가 사망한 2013년까지 대중 영합적(populist)인 사회주의 운동을 추진하였다. 그는 특히 사회주의 이념에 중남미 독립운동의 영웅 볼리바르 사상을 더한 볼리바르 사회주의 이념을 강조하며 베네수엘라 정치제도와 문화를 개조하기 시작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볼리바르 사상(Bolivarianism)’을 대중민주주의(popular democracy), 경제자립, 부의 균등한 배분, 정치적 부패 종식 등 대중 영합적 수사로 해석해 자신의 통치권 확보와 연장에 활용하였다. 1999년 헌법 개정을 통해 국명도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으로 변경했다.


 이로서 푼토 피호 협약(Puntofijo Pact)에 따른 40년 동안의 정치 엘리트 들 간 정치 경제 권력과점의 민주주의는 종식되고 차베스 대통령이 주도하는 좌파 정치가 시작되었다. 그는 헌법의 제정과 개정을 통해 베네수엘라를 사회주의 국가로 개조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전통적인 보수 기득권 세력과 끊임없는 정치 사회적 충돌을 하였다.


 또한 차베스 대통령은 역내 중남미 좌파 운동을 주도하며 쿠바 카스트로 이후 중남미 사회주의 지도자로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2013년 3월 5일 암으로 사망하였고 그의 정치적 유산과 과업은 그가 생전에 후계자로 공식 지명한 니콜라스 마두로(Nicoás Maduro) 에게 남겨졌다.


 차베스 등장 당시 중남미 사회는 1980년대부터 실시된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유지되어 왔다.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실시는 거시경제적 성장에는 기여했지만 사회복지 축소와 소득분배의 불평등을 야기하여 중남미 전체적으로 '가난한 대수 대중(The Poorest Majority)"를 양산했다. 이 '가난한 다수 대중'은 미국이 주도적으로 정착시켰던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새로운 정치적 동력이 되어 대중영합적(Populist) 좌파정권 등장의 배경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1980년 대 중남미에 대한 미국의 외교정책이 좌파 정권 등장의 배경이 되었다는 것은 매우 역설적이다.


 21세기 들어 중남미에서는 콜롬비아를 제외하고 대부분 좌파정권이 들어섰다. 다만 좌파정권의 성향과 체제 변화 수준에서는 개별 국가별로 크게 차이가 있다. 즉 베네수엘라와 같이 헌법 개정 등을 통해 국가의 정치 경제 사회체제를 사회주의 체제로 변화시킨 급진좌파 국가가 있는 반면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 파라과이, 페루 등과 같이 경제성장보다는 소득분배를 더 강조하는 온건좌파 국가들이 있다. 참고로 베네수엘라는 쿠바 카스트로 정권의 자문을 받아 국가개조를 실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에콰도르, 볼리비아, 니카라과 등은 베네수엘라와 같은 수준의 국가개조를 추진하지 않았지만 차베스가 주창하는 21세기 사회주의 이념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며 지지하는 형태로 급진좌파 국가에 포함되었다.


 중남미 좌파정권이 확산할 수 있었던 중요한 경제적 배경은 21세기 초 일차산품 국제 가격 상승의 긴 사이클이다. 일차산품 가격 상승과 이에 따른 외국인 투자 증가로 외환유입이 크게 증가하자 좌파정권들은 경제개발정책으로 신채굴주의(New Extrativism) 논리를 강조하며 이를 활용해 과감한 소득분배정책을 실시할 수 있었고 반대 급부로 가난한 다수 대중의 정치적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신채굴주의는 국제시장에서 자원의 종속성, 세계화된 다국적 자본, 자원개발지역의 고립상황, 환경파괴, 노동착취, 인권유린 등 기존 채굴주의의 긍정 또는 부정적 결과를 인지하면서 정부가 과거 소극적 역할을 하는 입장에서 탈피해 자원개발에 직접적으로 참가하고 통제하며 수익을 관리 배분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다국적 기업이 전적으로 자원 채굴과 통제를 해왔지만 앞으로 자원 채굴은 다국적 기업이 하되 정부는 이를 직간접적으로 통제하며 간섭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그 수준과 범위는 개별 국가 간에 차이를 보이고 있다.


 중남미 좌파정부는 이러한 새로운 틀 속에서 자원 수익에 대한 정부 지분을 과세 부과 등을 통해 증대하고 이를 재원으로 경제사회개발정책을 추진하려고 했다. 따라서 신채굴주의는 ‘중남미 신개발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 정책의 실시로 좌파 정권의 집권 기간 중 중남미 중산층의 비중은 커지고 극빈 계층은 크게 감소했다.  


 그러나 2010년대 중후반부터 시작된 일차 산품 국제 가격의 하락으로 좌파정권이 운용할 수 있는 재정이 부족해 각종 사회복지정책이 퇴조하고 그동안 외면해왔던 산업 성장의 역효과가 경제 불황으로 이어지며 좌파 정권의 퇴조가 시작되었다. 특히 새롭게 중산층으로 부상했거나 극빈층에서 벗어난 사회계층이 사회복지 축소로 계층이 하향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커지면서 시위 등 정부에 대한 강력한 사회적 저항을 하기 시작했다.


 이를 배경으로 다시 경제성장과 산업정책을 강조하는 우파적 이념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이 결과  아르헨티나의 마크리(Mauricio Macrí) 정부, 칠레의 피녜라(Sebastián Piñera) 정부, 브라질의 보우소나로(Jair Bolsonaro) 정부 등 주요 국가에서 우파정권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한편 기간 중 진행되었던 베네수엘라 마두로(Nicolás Maduro) 좌파정권의 실패로 발생한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디아스포라는 죄파정권 실패의 상징으로 평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남미 좌파정권의 명맥은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쿠바를 중심으로 이어졌다.


 좌파정권의 퇴조와 함께 새롭게 정권을 잡은 우파정권들은 집권 초기의 긍정적 경제성과와는 다르게 다시 과거 우파정권들의 부정적 측면을 답습하는 등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사회복지 수준이 더욱 악화되자 다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였다. 여기에 2019년 말부터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 성공적으로 대응하지 못하자 우파정권에 대한 신뢰감이 떨어졌다..


 이 결과 2020년~2021년 들어 중남미 각국에서는 새롭게 좌파정권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하고 있다. 멕시코에서는 일찍이 암로(AMRO)로 불리는 좌파 성향의 오브라도르(Andrés Manuel López Obrador)가 2018년 12월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마크리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하고 페론당의 페르난데스(Alberto Fernandéz)에게 정권을 넘겼다. 페르난데스 정권에는 남편인 키르츠네르(Nestór Kirchner) 대통령과 12년 동안 좌파정권을 이끈 크리스티나 대통령(Cristina Fernandéz)이 부통령으로 참여하고 있다. 페루에서는 빈농 교수 출신인 카스티요(Pedro Castillo)가 2021년 7월 그리고 칠레에서는 좌파 성향의 보리치(Gabriel Boric)가 2022년 3월 11일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여기에 오랫동안 우파정권이 이끌어왔던 콜롬비아에서는 과거 좌파 게릴라 단체인 '4월 19일 운동(M-19)'의 지도자이었던 페트로(Gustavo Petro)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는 2022년 8월 콜롬비아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브라질에서도 금년 10월 2일에 치러지는 대선에서 좌파 정당인 노동당 창설자로 대통령을 두 번 연임한 룰라(Luis Inácio Lula da Silva)가 현직 대통령인 우파 성향의 보우소나로 보다 여론 지지율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중남미에서 새롭게 일고 있는 좌파정권의 등장을 제2차 핑크 타이드로 부르고 있는데 이는 차베스로부터 시작된 1차 핑크 타이드와 다른 측면이 있다.


 1차 핑크 타이드가 원론적인 21세기 사회주의 및 반미주의와 권위주의를 동반했다면 2차 핑크 타이드는 진보주의와 사회주의 성향을 동시에 가지면서 반미 성향은 예전보다 줄어들었고 권위주의와 사회 보수주의보다는 자유주의와 진보주의적 성향을 더 보여주고 있다.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는 중남미 좌파 정권은 사회보수주의-권위주의-반미 노선의 1차 핑크 타이드와 진보주의-자유지상주의-친미계열 노선의 핑크 타이드로 구분되고 있는데 전자는 베네수엘라, 쿠바, 니카라과가 대표적이고 후자는 칠레,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온두라스, 벨리즈와 곧 바뀔 브라질이 대표적이다. 그 중간에 멕시코, 페루, 볼리비아가 있다.


 경제 사회적 부문에서도 2차 핑크 타이드는 1차 핑크 타이드와 다르게 산업구조 개편과 빈곤층 교육기획 확대와 녹색성장 등 국가의 기반을 다지려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 1차 핑크 타이드의 한계점이 자원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해 결국 중남미가 가지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2차 핑크 타이드는 산업구조 다변화와 녹색성장을 위시한 신성장 전략과 빈곤층의 교육기획 확대로 중남미의 근본적 사회구조를 바꾸려고 하고 있다.


 또한 1차 핑크 타이드가 가부장적이며 성소수자에 배타적인 모습이었다면 2차 핑크 타이드는 성평등과 성소수자의 권리 증진에 우호적인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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