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미아

by 기혜선

3주 만의 전화 통화였지만 정혜는 오 차장이 병가에 들어가던 그 일주일 간의 대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늘 중심에 있던 오 차장은 이미 없었다. 여전히 중심을 찾는 정혜에게 허전함이 몰려왔다.


회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인 줄 알았던 오 차장이 병가에 들어간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정혜에게 사실 여부를 물었다. 사실 정혜는 오 차장에게 들은 것이 없었다. 공공연하게 오 차장의 오른팔이라고 소문난 정혜였지만 모르는 것이 많았다. 처음에는 은밀하게 묻는 사람들에게 아니라고 단언했다. 만약 오 차장에게 그런 계획이 있다면, 전체 업무에 영향을 주는 사실이라면, 정혜 자신이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다. 오 차장이 어딘가 아파 보인다던가, 병원에 가는 개인 일정 등이 있었다면 의심해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오 차장에게는 그런 내색도 그런 행보도 읽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정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오 차장이 어딘가 정말 많이 아픈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었다.


사람들의 질문이 확신으로 자리 잡을 때쯤 오 차장은 정혜를 불렀다. 그리고 별 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내가 좀 쉬게 됐어.

정혜는 자신도 모르게 얕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간의 소문이 헛소문이길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던 정혜였다.


어디 편찮으세요?


아니. 그냥 좀 쉬고 싶어서.


애써 조심스레 묻는 정혜에게 오 차장은 정말 별일 아니라는 듯 쿨하게 대답하더니 무언가 생각하는 듯 잠깐 멈추었다. 정혜의 질문을 곱씹는 것 같았다. 그리고 씩 웃더니 말을 이었다.


내가 쉴 동안 처리해야 할 중요한 일은 어느 정도 마무리해 두었어요. 정혜대리가 대부분 아는 사안이기는 한데, 그래도 혹시나 확인해야 할 내용이 있으면 여기, 이 파일을 열어봐요. 내가 하던 업무 관련 내용은 여기에 다 있어요. 그리고...


오 차장은 정혜가 알고 있으면 도움이 될 몇 가지 사항들을 당부했다. 미팅은 아주 짧게 끝났다.


갑자기 쉬고 싶다고?

그녀는 자신의 휴식을 위해 쉬는 사람이 아니었다. 정혜가 알고 있는 오 차장은 연차를 챙기기는커녕 휴일마저도 제대로 쉬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 차장은 긴 연휴 마지막 날에는 잠깐이라도 회사에 들러야 하는 사람이었다. 정혜가 우연히 그 사실을 알고 연휴 마지막날 회사에 나오는 까닭을 물은 적이 있었다. 오 차장은 그냥이라며 웃었다. 나중에 정혜는 오 차장이 연휴 동안 업무에 대한 흐름을 잃지 않기위해 업무 시작 전에 마음을 잡기 위해서라는 걸 알았다. 오 차장은 회사 일에 진심이었다.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쉬고 싶다고?


정혜는 서운함이 올라왔다. 자신이 오 차장의 오른팔이라는 소문은 영 틀린 소문은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오 차장은 많은 일을 정혜와 공유했고 정혜는 누구보다 오 차장의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완전히 맞는 말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자신만의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오 차장은 왜 병가를 냈는지는 고사하고 얼마나 쉴 것인지, 그다음 계획은 무엇인지 전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10여분의 짧은 업무 인계를 마치고 나오면서 정혜는 단지 자신의 역할과 일에만 충실해야하는 것이라고 다독였다. 여기는 회사라고.


오랜만이라 길어진 통화가 마무리되고 있었다.


차장님, 건강 조심하세요.


그래요 정혜 씨. 정혜 씨도 건강 잘 챙겨요.

힘을 키워요 정혜 씨. 정혜 씨는 할 수 있어요.


공모전에 대해 상의하는 정혜에게 오 차장은 하지 말라고 했다. 아이디어만 뺏길 거라고.

오 차장은 이상한 말을 하고 있었다. 힘을 키우라고? 무슨 힘을 키우라는 거지? 정혜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당신은요?


오 차장은 정혜에게 미래가 그려지냐고 묻고 있었다. 입사 후 정혜의 미래는 늘 오 차장과 함께였다. 정혜는 도리어 그 미래는 어디로 갔냐고 오 차장에게 묻고 싶었다. 오 차장은 전화를 끊으며 정혜에게 힘을 키우라고 했다. 스스로 힘을 가지라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생각하던 정혜는 길을 잃었음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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