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기획안

by 기혜선

최 대리는 오 차장님 계시니까. 공모전 같은 건 관심도 없나 봐.


우연히 복도에서 마주친 김 차장의 말이었다. 역시 예상을 벗어나는 사람이었다. 복도 끝에서 김 차장과 눈이 마주친 정혜는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피할 수도 없고 마주하기도 싫은 마음을 감추려 표정을 가다듬던 정혜는 예상치 못한 김 차장 말에 어쩔 줄 몰랐다. 김 차장은 애초부터 정혜의 대답은 바라지도 않은 듯 툭 뱉은 말만 남겨두고 사라졌다. 공모전 마감 하루 전이었다.


오 차장님이 계셔서….

정혜는 하루종일 김 차장의 말을 곱씹고 있었다. 자신이 오 차장에게 어떤 사람일까 고민한 적은 많았다. 그런데 오 차장이 자신에게 어떤 사람인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억울함이 올라왔다. 다른 사람들에게 정혜는 특별한 혜택을 받는 부러운 대상이었다. 정혜는 문득 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그 일이 떠올랐다.


기획팀에서 진행하던 자잘한 사업들에 조금씩 문제가 생기면서 본사 직원의 파견이 결정되었다. 오 차장은 정혜가 직접 가서 해결해 주길 바랐다. 덕분에 한 달 가까이 자리를 비웠던 정혜는 오랜만에 사무실 출근에 설레었던 기억이 난다. 조금 서둘러 나왔다. 업무 시작 전 준비와 마인드셋은 오 차장에게 보고 배운 것이었다. 자리를 정리하고 내 자리의 편안함이 이런 것이구나 생각했다.


업무 시작시간까지 시간이 많이 남은 것을 확인하고 정혜는 파견 나간 동안 작성하던 기획안을 마무리할 참이었다. 지난달 기획팀 회의에서 오 차장은 프로젝트 대부분이 마무리되고 있으니 새로운 기획안을 만들어 보자고 했다. 협력사로 출근하면서 조금 여유가 있었던 정혜는 기획안을 만들고 있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해보고 싶던 아이템을 잘 다듬어보고 싶었다. 나름 꽤 괜찮게 작성된 것 같아 뿌듯했다. 조금만 더 검토하고 잘 마무리해서 다음 기획팀 회의에 내놓고 싶었다.


정혜 씨, 그새 새 기획안 썼어?


오 차장이었다. 정혜가 오랜만에 출근할 것 같아 자신의 방에 가기 전에 일부러 들렀다고 했다. 하지만 정혜보다 새 기획안이 더 반가운 듯했다. 그리고 출력해서 보여달라고 했다. 정혜는 아직 미완인 게 아쉬웠지만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팀장님 검토는 거쳐야 할 관문이었다. 그리고 오 차장의 조언이 도움이 될 거라 확신했다. 아직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기획팀 안에 종이가 인쇄되어 나오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별일 없는 날이었다. 오 차장은 여전히 하루 종일 바빴고, 그날따라 부사장이 기획팀에 들렀다. 사람 좋기로 소문난 부사장은 가끔 불쑥 나타나 시답잖은 농담을 던졌다. 그리고 직원들이 크게 웃거나 받아치면 자기가 더 크게 웃었다. 그날도 의미 없는 농담을 한참 나누고 정혜에게는 파견 근무하느라 고생했다는 말을 건넸다. 그리고 오 차장을 만나야겠다며 사라졌다.


정혜씨 별 일 없지?


정혜가 오 차장의 전화를 받은 건 이틀 뒤 퇴근 후였다. 오 차장은 이틀간 임원진들과 일정으로 기획팀에 나타나지 않았다. 정혜는 웬일인가 싶었다. 안부라니. 보통 용건이 있으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는 오 차장이었다. 퇴근 후의 전화도 이상했다. 오 차장은 직원들에게 야근은 시킬지언정 이미 퇴근한 직원에게 전화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정혜는 안부를 묻는 오 차장의 목소리에서 뭔지 모를 여백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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