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문 들었어?> 하야시기린, 쇼코나오코, 김소연역 /천 개의 바람
새로운 로그인이 감지되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광고와 스팸 메시지를 받는 세상을 살고 있다. 중요 정보가 아닐 것 같다는 판단까지는 1초도 걸리지 않는다. 직감적으로 걸러내야 할 것을 가려내지 않으면 너무 많은 할 일과 씨름하는 하루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렇게 걸러낸 것 중에 중요한 사항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직감적으로 걸러버리는 정보에는 종종 중요한 것들이 있다. 나의 SNS에 문제가 생긴 것도 어쩌면 내가 알아차리기 훨씬 이전부터 신호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갑자기 나의 인별그램이 모두 로그아웃되었다. 처음엔 단순히 기기에서 정기적으로 혹은 일부러 로그아웃 시키는 그런 경우라고 생각했다. 처음에 공개 계정이 부담스러워서 만들었던 비공개 계정과 조금 익숙해지고 만든 공개 계정, 그리고 브랜딩을 해볼까 하고 얼마 전에 만들었던 계정까지. 나는 총 세 개의 계정을 가지고 있었다. 비공개 계정을 메인으로 세 개의 계정에 모두 로그인이 가능하도록 해놨는데 보아하니 공개계정 두 곳에서 다른 나라 로그인 시도가 있었고, 비번이 바뀐 채 모두 로그아웃 된 것이었다.
거의 하루종일 고군분투하며 비공개 계정에서 나를 확인시키고 모두 로그인은 했다. 평소에 계정이 세 개라서 관리도 힘들도, 굳이 필요 없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이라서 마지막에 만든.. 만든 지 얼마 되지도 않고 브랜딩도 마땅치 않아 지지부진하던 계정은 없애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게시물을 모두 지우고. 계정 삭제 했더니 더 이상 내 계정으로 연동되지 않았다. (나는 계정을 삭제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부산 여행 중이라고?
그리고 석 달쯤 지났나 보다. 갑자기 나의 비공개 계정에서 팔로우 추천인으로 내가 삭제한 계정이 떴다. 나는 계정 비활성화 상태라서 알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계정에 새로운 게시물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프로필 사진은 내가 설정해 둔 해바라기 인형 사진 그대로, 계정명도 그대로. 그런데 프로필 내용은 바뀌었다. 한식을 사랑하는 주말골퍼? 인생의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중? 예술 애호가, 세계여행..... 골프만 빼면 내가 공개계정에 자주 올리는 내용을 AI로 분석했나 싶었다.
1월 1일부터 올라오는 글은 더 가관이었다. 부산에 도착한 듯. 광안대교 풍경, 해운대 센텀시티 같은 사진을 올리고 부산의 밤풍경에 대한 글을 쓰더니 다음 피드에서는 호텔라운지에서 에프터눈 티 세트를 시키고 멀리 바다뷰를 보는 듯 올려놓은 글. 읽는 순간 확신했다. AI가 작성한 글이다.
".... 오후 티 세트를 주문할까 고민했지만 테이블에 놓이는 순간 모든 것이 가치 있다고 느껴졌어요. 각 디저트는 예술 작품처럼 정교하고 창밖의 바다 풍경과 완벽하게 어우러져요......"
느낌적인 느낌이었는데 '오후 티 세트'에서 완전히 확신해 버렸다.
나를 알고 팔로우했던 이웃들이 좋아요를 누르기 시작했다. 일단 아는 사람들에게는 이 사람은 내가 아니라고 메시지를 보내고 나의 공개 계정에도 이 계정에 대한 경고를 작성했다. '내가 아니라고.'
계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이미 알 수 없는 비밀 번호. 신고해도 인별그램 규정 위반사항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답변. 얼굴 사진으로 비번 대신 로그인 하는 방법은 게시물에 나의 얼굴이 없으니 불가능한 상황.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온라인 세상의 문제를 제대로 마주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자 나의 무력함에 지쳤다. 급기야 이 계정의 활동이 나에게 끼치는 손해는 무엇인가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지인들이 나인 줄 알고 행하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그들에게 내가 꾸준히 알리면 되는 거 아닌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에 대한 위안과 변명...
사실 무슨 문제가 있을지 예측할 수 없기에 팔로우를 끊을 수도, 살피지 않을 수도 없다.
이 피곤함이 손해라면 손해인가?
그 소문 들었어?
지난가을 초등 고학년 아이들과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눴던 책이다. 넘치는 정보 속에 가짜뉴스를 걸러내고 올바른 정보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하는 역량이 아주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 빠르게 퍼져나가는 이야기들 속에서 우리는 진짜를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아주 단순한 이야기 구조 속에 많은 이야깃거리가 들어있다. 좋은 일을 하던 하얀 사자가 소문으로 한순간에 무너지는 장면에서 아이들은 끝까지 해명하지 않은 하얀 사자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해석과 활용 기술이 범람하는 세상에서 자신의 피해를 해명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본다. 어떤 상황에서 특정 해석이나 의미가 부여되는 순간 다르게 퇴색되어 버리고, 그것이 사실로 둔갑해 버리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나를 지킬 것인가. 의도와 목적에 대해 생각하고 첨단기술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인가 싶다.
결국 아는 사람만 알면 되는 것 알면 되는 거 아니냐고 자위하는 나를 마주한다.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 계정 정보에서도 이제 내가 아닌 것은 아닌지 반문한다. 나의 이름을 쓰는 것도 아니고. 로그인 방법을 찾으며 보니 나에게 더 이상 문자도 메일도 오지 않는 듯하다. 전화번호도 메일도 바꾼 것으로 보인다.
근데 왜 내가 만들 것을 쓰고 있는걸까? 도통 이해되지 않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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