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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칼럼] 글쓰기를 운동처럼

<쓰기의 말들> 은유 / 유유출판사

by 기혜선
어려운 글쓰기


얼마 전 딸아이가 기말 과제로 제출했던 글을 읽어봐 달라고 했다. 대학에 간 이후 글쓰기 과제에 대한 첨삭은 안 해주겠다고, 알아서 쓰라고 했던 터라 제출한 과제에 대한 피드백을 부탁해 온 것이었다.

문학작품을 비교한 소논문 형식의 글이었는데 글의 형식은 수업시간에 잘 제시되었던 것 같다. 논문 같은 갈래가 뚜렷한 글은 형식적인 요소가 중요한데 제법 잘 갖추고 있었다. 무엇보다 두 작품을 비교하는 기준의 근거도 명확했고 결론에서의 종합적인 통찰도 괜찮게 보였다.


"잘 썼네"라는 한마디에 아이는 드디어 칭찬을 받았다며 좋아했다. 딸아이의 글에 칭찬한 게 처음인가 싶었다. 아마도 이전에는 첨삭이라는 목적에서 글을 읽다 보니 늘 고칠 곳을 말해주었고 그 점이 지적으로 들렸던 모양이다.


글쓰기는 늘 어렵다.

나는 여전히 첫 문장을 쓰는 것이 제일 어렵다.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이야기의 파편들을 큰 구멍 없이 엮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이미 내 머릿속에 떠오른 이유를 알고 있는 나는 생각들 사이의 구멍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읽는 사람은 다르다. 독자는 글쓴이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없기 때문에, 글 속에서 제시된 단서만으로 전체를 이해해야 한다. 결국 글쓰기란 결국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생각들을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형태로 재구성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공감과 명료함이다.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독자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까? 독자가 흥미를 느끼고 읽어나가도록 할 수 있을까? 혹시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생각을 침해하지는 않을까?


글쓰기 에너지를 회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글을 쓰는 것이다.


한동안 글쓰기가 너무 어려웠던 적이 있었다. 둥둥 떠다니는 파편들을 끌어 앉히기 어려웠다. 어지러운 마음을 글로 정리하고 싶은데 너무 산산이 조각난 파편들이었다. 꽤 오래전이었지만, 그때 용기를 주는 책이 있었다. 읽고 한동안 유유출판사의 책을 골라 찾게 만들었던 바로 그 책. <쓰기의 말들>이다

32445245036.20230920072208.jpg <쓰기의 말들> 은유 / 유유출판사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라는 부제처럼 글쓰기에 용기를 주는 말에 다시 한번 써보자며 글쓰기 공간을 찾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자기 자신을 글로 표현하는 것을 자기만의 운동으로 삼으라.


결국 꾸준한 글쓰기만이 답이다. 반복되는 연습과 근육의 단련 없이는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다. 글쓰기에 타고난 재능이 필요하다는 데 다소간 동의하지만 나아지는 과정은 연습과 노력. 운동과 같은 단련이 필요하다는 것은 진리이다.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 꾸준히 펜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딸아이의 글을 보며 다시 한번 느낀다. 글쓰기는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더 나은 표현을 찾아가는 끝없는 여정이라는 것을. 잘 썼다고 칭찬한 글에 A+를 받았다며 자랑한다. 거봐~ 잘 썼다고 했잖아.


글쓰기는 어렵지만 동시에 매력적이다. 매번 글을 쓸 때마다 조금 더 나은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나는 오늘도 쓰고 읽고 고치고 다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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