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과 자책에 대하여
우리는 실수를 합니다.
그것은, 각자의 끔찍한 직장에 입사했을 때였을 수도 있겠네요. 혹은, 우리가 비트코인을 처음 듣고도 500개를 사놓지 않았을 때였을 수 있고, 서울의 아파트 가격이 비싸다면 사지 않았을 때일 수도 있겠습니다. 또는, 우리의 첫사랑을 놓쳤을 때였을 수도 있겠죠..
그래서, 우리는 후회합니다. 그때의 선택과 과거의 부지에 대해 곱씹으며 많은 시간을 보내기 마련이죠.
그런 후회는 잘못된 것도 아니고, 어쩌면 발전에 중요한 요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후회의 시간이 없다면, 지금까지 인류는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손을 데었다면, 우리는 뜨거운 것을 더 이상 만지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되죠. 그렇게 경험을 통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인간이라는 동물은, 후회라는 기제에 감사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하지만, 후회가 가져오는 두 가지의 반응- ‘반성’과 ‘자책’은 다른 것입니다. 과거의 실수에 대하여 분석하고, 앞으로의 선택에 대한 교훈으로 삼는 것은 이성적인 ‘반성’의 영역입니다. 그에 반해, 과거의 실수를 한 스스로를 탓하고, 비난하는 것은 순전히 감정적인 ‘자책’의 영역이겠죠.
우선, ‘과거의 나’에 대한 그 감정적인 ‘자책’이 온당한지부터 생각해봅시다.
과거의 ‘나’는, 지금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히 잘못 판단을 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미래의 내가 실패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분명히 아닙니다. 당시의 나는 그때까지 주어진 정보에 근거하여, 나에게 가장 바람직하고 안전한, 혹은 현명하다고 예상되는 선택을 한 것일 뿐이죠.
물론, 돌이켜 보면 과거 그 선택을 할 때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던 요인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반성’으로써, 앞으로의 선택에서는 그런 점들을 함께 고려하면 되겠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선택에 대하여 감정적인 ‘자책’을 하는 것은, 당시 스스로를 위해 최선이라고 판단되는 선택을 했던 우리 스스로에 대한 부당한 비난일 뿐입니다. 우리가 진정 안타까워해야 하는 것은, 미래의 예측 불가능성이지 나의 성실한 선택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우리의 삶은 미래에도 많은 선택을 통해 형성될 것입니다. 그런데 자책 때문에 제대로 된 선택을 할 기회들을 놓치게 된다면, 그때야말로 과거의 실수가 삶에 약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자책’을 멈추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여러 번 혼이 나고서야 나쁜 행동을 멈추기도 했던 기억 때문인지, 스스로에 대한 훈육방식도 자연스럽게 ‘자책’에 기대게 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는 그 둘을 구분해 내고, 자책의 목소리를 관대함으로 줄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자책의 목소리 때문에 삶에 다양성을 가져다줄 수 있는 선택들과 변화의 용기를 잃을 수 있으니 말이죠.
‘실수’에 대한 반응이 ‘자책’으로 남아 삶의 선택들을 막는다면, ‘실수’는 곧 ‘실패’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수에 대해 반성은 하되 자책하지 않고 관대해질 수 있다면, 실수는 ‘우리가 성공하는 과정’의 하나가 되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