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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잭변 LHS Apr 06. 2022

어쩌면 완벽한 해피엔딩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결말에 관하여

이 글은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결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결말을 미리 알고 싶지 않으시다면, 드라마를 먼저 보시고 이 글을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O와 수년간 함께 사랑했었다. 내가 첫 직장에 들어가서 힘겹게 적응하며 일을 배워갈 때, O 역시 프리랜서로서의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서로의 고충을 이해했고, 주말이면 그래도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함께 감사하던 사람이었다.


과거형으로 서술되는 모든 연애가 그렇듯이, 우리는 몇 년을 사귀다가, 몇 년 전 헤어졌다. 그 후 나는 몇 번의 다른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다 실패하기도 했지만, 결국 지금은 무척 사랑하는 사람을 새로 만나 수년간 행복한 연애를 이어가고 있다.


듣기로는 O 도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O가 연애를 시작했다는 그 새로운 상대방은, 공교롭게도 내가 건너서 아는 사람이었고, 그 사람의 성정이 참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기 때문에, 나는 그 소식을 듣고 놀라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그러던 지난주, 나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O와 마주쳤다. O는 지금의 연인과 함께였다. O가 나를 보더니 내게 먼저 다가와 밝게 웃으며 안부를 물었다.

- 여기서 보네요. 진짜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어요?

내가 O보다 연상이기는 했지만, O가 나에게 높임말을 하는 것은 여전히 어색했다.

- 응. 잘 지내. 둘이 같이 왔네?  

나는 조금 떨어져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O 연인을 눈짓하며 대답했다. O 남자친구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내게 살짝 웃어 보였다. O 그에게, 지난 연인이었던 나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했는지 눈치챌  있었다. O 내게 대해 가지고 있을 그 감정이 사랑은 아니겠지만, 지금의 나도 O에게 똑같이 느끼는 감정이라 어떤 것인지   있었다.  고마웠다는 감정이다.


공교롭게 그 주에 보게 된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마지막 회는, 그래서 내게 묘한 울림이 있었다. 많은 다른 드라마들은, 시청자들이 주인공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두 남녀 주인공이 행복하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장면을 보여주고 만다. 드라마로서는 참 안전한 선택이기도 하다. 그래서, 백이진과 나희도의 감정선을 따라왔던 시청자들도 둘이 결혼하는 행복한 결말을 바라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나희도의 딸의 성이 백 씨가 아닌 이유를 찾아 헤매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렇고 그런 드라마들의 안전한 결말이, 현실에서는 찾기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현실의 어떤 연인들은, 아니 대부분의 연인들이 결국 헤어지기도 하는데, 그것은 누군가가 잘못해서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죽을 듯이 사랑했던 두 사람 간의 이별은, 비극이 아닐 수 있다.


이별을 하고 모든 일이 옛 일이 되어버리면, ‘상대방을 사랑했던 나’라는 사람이 사라져 버리고, ‘나를 사랑했던 상대방’도 이제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 나를 사랑하는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며 진심을 담아,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이야기할 기회는 사라져 버린다. 분명히 그것은 슬픈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사랑했던 그 두 사람에 대한 기억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 우리의 이야기가 써지는 밑바탕이 되기도 한다. 그러면, 그 둘의 기억을 공유하는 옛 연인들은,  사랑했던 각자의 기억을 공유하는  우정으로 남는 것이다. 그리고, 끝내 그 시절 힘이 되어준 서로에게 고맙다는 마음이 가득 남아 그로써 아련하다면, 그 또한 완벽한 해피엔딩이 아닐까.


사실,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초반부는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다. 나는 그 드라마가 마치 90년대의 만화책 풀하우스 정도의 유치함으로만 도배된 드라마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마지막 회를 지나고 보니, 드라마의 초반부가 그렇게 유치했던 것은, 우리가 기억 속에 아름답게 각색해버린 그 시절의 반영이었기 때문인가 싶기도 했다. 마지막 회와 같은 지금의 현실에서 바라보면, 그 시절의 우리는 모두 유치하기도 했듯이.


인사를 전하고 뒤돌아 가는 O의 밝은 뒷모습을 보며, 다시금 나는 그 시절을 함께 버텨준 O에게 참 고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 각자의 행복을 마음속으로 빌었다.


 때에는 이별의 아픔 때문에 차마 전하지 못했던 ‘고마움 결국 나눠내고, 각자의 행복한 길을 걸어가는 백이진과 나희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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