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다 맛집

유달리 사이다가 맛있어서 내가 사랑하는 집들의 이야기

by 잭변 LHS

사이다는 공산품이지만, 음식점마다 그 맛이 묘하게 다르게 느껴진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그렇다. 음식을 다 먹었는데도 이상하게 칼칼함이 입에서 가시지 않을 때, 사이다를 시켜 한 입 머금으면, 분명 '아! 여기가 사이다 맛집이구나' 싶은 곳이 있다.


오해하지 마시라. 이 글은 사이다 회사의 협찬을 받은 글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특정 사이다를 추천하지 않는다. 칠성사이다, 킨사이다, 혹은 스프라이트를 불문한다. 물론, 스프라이트가 사이다의 일종인지에 대하여는 심각한 존재론적 의심이 제기될 수 있으나, ‘사장님, 여기 사이다 하나만 주세요’라고 청했을 때 아무 말 없이 스프라이트를 가져다주는 사장님은 보았어도, ‘아 저희 집은 사이다는 없습니다. 다만 스프라이트와 콜라가 있어요. 설마 스프라이트를 사이다로 주장하시는 것은 아니시겠죠?’라고 진지하게 되묻는 사장님은 이제껏 만나보지 못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스프라이트도 사이다의 일종으로 간주하겠다. 이에 본인의 정체성에 이의가 있는 스프라이트는 따로 연락 주시기 바란다.


여하튼, 주변 사람들에게도 가끔 “야 여기가 사이다 맛집인데 저녁 여기서 먹지 않을래?”라고 이야기하면, '네 놈이 드디어 미쳤구나'라고 이야기를 하거나, 내가 농담한 줄 알고 웃음을 터트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깊은 사이다 맛을 내기 위한 여러 조건을 다 갖춘 사이다 맛집은 좀체 찾기가 어렵기 때문에,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할 때는, 나는 진짜 내 주변 사람들도 그 사이다를 마시고 감탄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꺼낸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이다 맛집을 찾기 위해, 수많은 집에서 사이다를 시켜 보았다. 그 결과 나는 내 나름의 사이다 맛집 리스트를 가지고 있으며, 사이다 맛집을 추천받은 지인들에게도 공감을 얻었기 때문에, 사이다로 음식점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 나만의 독특한 취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후술 하겠지만, 또 좀 특이한 취향이면 어떠랴.)


우선, 사이다 맛집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 그 집의 음식이 적당히 느끼하고 맛있어야 한다. 예컨대, 많은 사이다 맛집은 양념이 걸쭉한 음식이나, 기름진 음식을 판매하는 곳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내가 꼽는 사이다 맛집 중에는 고깃집이 많이 있다. 하지만 고기가 너무 깔끔해서 사이다의 쓸어내림이 필요하지 않은 집들도 있는데, 그런 집은 그냥 음식 맛집이지, 사이다 맛집은 아니다. 결론적으로 '사이다 맛집'이라면 그 집의 메인 음식들이, 깔끔하지 않으면서도 묘한 중독성이 있어야 한다. 그 음식들을 한입 베어 물면, 내 입에서 그 존재감이 한껏 느껴지는데, 음식이 식도를 지나면서 '나는 이곳 너의 식도에 그냥 머물러 있고 싶다. 아늑하군. 하지만 사이다 한 모금이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라고까지 말하는 것 같다. 그럴 때에 식당 직원분에게 홀린 것처럼 가격 따위는 물어보지도 않은 채 '여기 사이다 하나요'라고 주문할 수 밖에 없다. 하긴 사이다가 아무리 비싸도 3천 원을 넘어가는 경우를 본 적은 없다. 개인적으로는 1500원이 적정선이라고 보지만, 물가상승률과 사이다에 대한 절박함을 생각할 때, 3천 원 미만이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이다가 비쌀수록, 사이다 맛집일 가능성이 높다. 사장님도 자기 가게의 사이다가 맛있게 영글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책정한 가격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명색이 사이다 맛집이라면 입안을 헹굴 사이다가 차가운 온도에서 보관되고 있어야 한다. 사이다를 잘 보관하기 위한 냉장고까지 따로 마련할 필요는 없을 테고, 그 집의 냉장고가 어떤 형태인지에 따라 사이다의 적정 온도도 달라지겠지만, 그 묘한 온도는 일률적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각 가게마다 메인 메뉴의 온도와 마지막 식사의 자극이 다르기 때문에, 그 가게에 가장 알맞은 사이다의 온도는 다 다르다. 그런데, 많은 사이다 맛집들은, 기가 막히게 그 온도를 맞추어 사이다를 내어 놓는다. 어떤 영악한 사이다 맛집은, 그 온도가 얼음을 통해서만 낼 수 있는 온도인 줄을 아는 것인지, 얼음컵과 사이다를 내어준다. 이런 집의 사이다도 맛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마지막이 중요한데, 사이다 맛집에는 적당한 온도의 '유리컵' 또는 '철제 컵'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이제껏 내가 찾아낸 사이다 맛집은, 모두 유리컵 혹은 철제 컵으로 음료수를 서빙하고 있었다. 반대로 플라스틱 컵은 잘 단열되거나 온도가 느껴지지 않는 법인데, 그런 플라스틱 컵에 사이다를 서빙하는 곳 중에는 아직 사이다 맛집을 찾아낸 적이 없다. 그것은 아마도, 유리컵 자체의 차가움이 손으로 전달되거나, 혹은 철제 컵에 의해 사이다의 차가움이 손으로 전달되는 경우에야 비로소 사이다의 시원함이 느껴지기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그렇게 보면, 사이다는 입으로 먹는 것일 뿐 아니라, 눈과 손으로 먹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누군가는 반론하기도 한다. 음식점의 요체는 메인 요리인데, 어떻게 공산품인 사이다를 기준으로 음식점을 찾을 수 있느냐고.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음식점의 요체는 '먹는 경험의 즐거움'이다. 그 즐거움의 원인이 꼭 메인 음식의 맛일 필요는 없다. 누군가에게는 음식점의 인테리어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장님의 친절함이 즐거움의 기준일 수 있다.


그리고, 사실 사이다가 당긴다는 것은, 단순히 사이다의 맛뿐 아니라, 조금은 느끼한 메인 음식이 먹고 싶다는 말이다. 또 그 메인 음식을 깔끔하게 씻어줄 사이다가 동시에 그립다는 말이기도 해서, 사이다에 대한 취향은 오히려 메인 메뉴 하나에 대한 취향보다도 더 종합적인 취향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사이다 맛집을 고르는 내 기준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그것은 음식점을 고르는 기준에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좋아하고 또 싫어하는가. 심지어는 사람들과 만나면서도 우리는 각자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싫어하는 사람들을 구분하게 된다.


그런데 그 기준은, 사회가 일반적으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기준과는 다를 수도 있다. 사회의 다수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요소들로만 사람의 매력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고, 또 사실 사람에 대한 취향이 있지이 일률적이지도 않다.


그런데, 그것은 사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볼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에, 나는 다른 사람에게 왜 매력적인지 궁금해할 필요가 없다. 메인 요리가 아니라 사이다로도 선택받을 수 있는 음식점처럼, 우리의 매력은 그것을 알아봐 준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두어도 괜찮다.


무엇보다 곁들여진 사이다 맛으로 사랑받는 음식이 세상에 있다면, 우리도 우리가 이해 못 하는 어떤 기준으로든지, 우리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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