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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잭변 LHS Sep 27. 2021

다방구에서 우리가 진짜 배워야 했던 것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감상평

*이 글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요한 사실들에 대한 결말은 제외하였습니다만,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사실들이 등장할 수 있으므로, 가급적 드라마를 먼저 보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다방구의 추억


내가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게임은 다방구였다.


다방구는 일종의 술래잡기인데, 술래팀은 도망자들을 모두 잡아야 게임에서 승리한다. 잡힌 도망자들은, 전봇대 주변에 손을 서로 붙잡아 길게 매달려, 일종의 감옥에 갇혀 있게 된다. 그러면, 아직 잡히지 않은 도망자팀은 술래팀의 감시를 피해서, 잡혀 있는 동료들의 맞잡은 손 어딘가를 손으로 쳐내 끊으면, 동료들을 구출할 수 있는데, 그게 도망자팀의 미션이다.



“우리가 다방구에서 배운 것들”


우리는 다방구를 통해 여러 능력들을 길렀을 수 있다. 술래가 어떻게 움직일지에 대한 예측 전략을 키웠을 테고, 누군가가 술래팀의 시선을 사로잡는 동안 동료를 구출할 수 있는 팀워크를 길렀을 테다. 그리고 잡힌 동료 중 누구까지를 구출해야 하는가에 대한 상황판단 능력도 함께 길렀을 수도 있다. 마치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쌍문동 천재’가 그랬듯, 우리는 사회가 칭송하는 그런 생존의 전략들을 잘 배워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뿐이겠는가?


어쩌면 그때 우리는 술래팀을 기망하는 방법도 배웠을 테고, 잡힌 동료들 중 누구까지를 버려야 하는가에 대한 냉혹한 판단 방법도 공부했을 수 있다. 그리고, 가끔은 술래의 손이 나에게 닿았음에도, 닿지 않았다며 우기는 방법을 배웠을 수 있고, 잡힌 동료들의 손을 제대로 치지도 않았으면서도 닿았다고 거짓말하는 방법도 배웠을 수도 있다. 그것은 드라마에서 조폭 덕수가 이기는 기망과 힘의 방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넷플릭스의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게임들과 인간 군상들은, 묘하게 어른들의 현실 사회를 닮아 있다. 노력으로써 승리를 쟁취하기도 하지만, 또 상대방을 속여 승리를 쟁취하기도 하고, 전략으로써 살아남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의 뒤에 숨어 목적을 이루고, 나 대신 위험을 감수할 누군가를 앞세우기도 한다. 어쩌면 그런 모습들 모두 그들과 우리가, 그 어린 시절의 다방구 같은 게임들에서 처음 배운 것일 수도 있겠다.

승패나 전략보다 중요한 것 : 깐부


하지만,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정작 우리가 그 게임들에서 배워야 하는 것들은 그 두 가지 모두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그 게임들에서 진짜 배워갔어야 하는 것은, ‘승패’를 위한 쌍문동 천재의 전략도, 조폭 덕수의 속임수도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잊고 있겠지만 정작 우리가 게임에서 배워야 했던 것은, ‘깐부’로 표현되는 ‘공존’이었음을 드라마는 이야기한다.  


등장인물들은, 게임을 거듭해가면서 연대를 만들어 간다. 어떤 자들은, 강한 자를 두목으로 하는 피라미드 형의 연대를 만든다. 하지만, 남은 다른 이들은 노인과, 외국인과, 여성과 노동자와 함께 소수자 연대를 만들고 또 거기서 깐부를 찾는다. (주인공에게서는 처음에는 그가 표상하는 소수자성이 잘 보이지 않지만, 드라마는 감각적으로 구성한 ‘불침번’ 장면에서, 주인공의 과거 회상을 통해 그의 소수자성을 마침내 드러낸다.)

불침번 장면에서 드러나는 과거

오징어 게임에서 이 사회의 소수자들이 구성한 연대는, 강자를 정점으로 하는, 불안한 피라미드형의 그 연대보다 훨씬 강한 유대를 보여준다. 서로의 이름을 묻고 가족에 대한 약속을 하며, 가끔 그 약속을 믿고 스스로를 희생하면서까지, 그들은 이 게임에서 최대한 유대를 기반으로 한 공존을 선택해가면서 살아나간다.


물론 시스템은 그들을 그렇게 공존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가장 악랄한 방법으로 그들이 승패에 집착하도록 룰을 짜버린다.


시스템과 깐부의 싸움


시스템의 관리자들은 “이 과정은 공평하다”라고 강박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룰들은 간단해 보인다. 하지만, 그 룰들은 단순하기 때문에 오히려 약자들에게 전혀 공정하지 않다. 도형을 잘못 고르거나 신체적 힘이 약하다는 어이없는 이유만으로, 시스템은 ‘공평’의 탈을 쓰고 죽음의 칼을 휘두른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여기, 드라마 밖 현실에서도 나아질 기미가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깐부’로 표현되는 약자들의 연대가, ‘12시가 되기 전’에는 끝내 승리할 것이라는 희망이 ‘오징어 게임’의 결말에 숨겨져 있다.

VIP 들은, 이번 대회의 우승자를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번 게임에서만은, 약자들의 연대가 선택한 공존을 위한 희생들이 최종 우승자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는 것이 하는 것보다 재미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최고 악당이 게임의 승패를 더 이상 지켜보지 않기로 하는 순간은, 악한에게도 이번 게임에서 깨달음의 순간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어린 시절, 우리가 즐겼던 게임의 가치는, 베팅의 대상이 되는 승패에 있는 것이 아니었고, 함께 게임을 즐기는 ‘깐부’와 또 다른 사람들과의 ‘공존’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최고 악한은 더이상 승패를 지켜보지 않기로 한다.

그래서 그 최고 악한이 죽음 앞에 내뱉는 ‘그렇게 재미있었던 것은 오랜만이었다’는 고백은, 그에게 후회에 가깝다. 탈락자들에게 공존이 아닌 죽음이라는 벌을 내린, 이전의 수십 번의 ‘오징어 게임’에서, 최고 악한은 끝내 재미를 찾지 못했을 것이다. “돈이 너무 없어서, 혹은 돈이 너무 많아서” 승패에 집착해버렸고, 함께 하는 ‘공존’의 재미를 잃어버렸던 것이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그렇게 공존을 잃어버린 우리의 이야기와, 그래도 남아있는 희망의 이야기를, 분명하고도 재미있게 풀어내었다.

드라마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이들


하지만 이 드라마의 메시지에는 아쉬운 점도 분명 있다. 유일한 성소수자 캐릭터를 폭력적인 캐릭터로 묘사한 점이라거나, 나이 든 여성에 대한 드라마의 시선이 무척 불편하다는 점은, 이 드라마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공존의 느슨한 끈일 수 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우리는 사람들을 쉽게 유형화하는 것이, 어린아이의 게임보다도 훨씬 더 교활한 일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만약 이 드라마의 시즌2가 나온다면, 그렇게 공존의 과정에서 더욱 소외된 자들의 이야기를 더 풀어내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한다. 


결국 혼자 남았기 때문에 오히려 우승의 의미를 잃어버린 승자에게 남은 운명은, 비행기를 타고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공존이라는 선택지를 끊임없이 배제시켜 버린 이 시스템을 부숴버리는 것일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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