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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Sep 30. 2022

친구의 전화


며칠 전 저녁에 거실에서 TV 뉴스를 보고 있는데 서울에 사는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은호야 잘 지내나? 오랜만에 여기 친구들 모여서 밥 한그릇 는데 니 생각나서 전화했다. 화상통화로 다시 연결할 테니까 얼굴 한번 보자~"

"그래 그러자~"


화상통화로 다시 연결된 화면에는 오랜 친구 네 명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야~ 반갑다. 잘 지내나?"

"그래~ 반갑다. 니들도 잘 지내쟤?"


세월의 흐름 비껴갈 수는 없어서 머리가 벗어진 친구도 있뚱뚱하게 배도 나오고 얼굴에 주름도 지고 해서 젊은 날의 풋풋함과 생기는 많이 퇴색되었지만.. 그래도 눈가에 웃음을 띤 얼굴에는 여전히 예전의 모습이 남아 있는 그리운 친구들이다.


"은호야~ 니 얼굴이 좀 바뀐 거 같다. 우째 더 젊어 보이냐? 인자 퇴직했다고 편하게 잘 지내는가베?"

"그래 그렇쟤? 내 스타일 좀 바꿨다. 머리 염색도 하고 파마도 하고 눈썹 문신도 했다. 나이 들수록 추하지 않게 더 가꿔야 안 되겠나?"

"맞다 맞다. 그래야지~ 너는 머리숱이 많아서 좋겠다."

"OO아~ 너는 머리가 벗어진 게 시원하게 보이 힘도 있어 보여서 좋다. 머리숱 많은 거 하나도 부러워할  없다. ◇◇~ 도 얼굴이 참 좋아 보인다. 요즘도 여전히 잘 나가는 모양이네~"


화상으로나마 오랜만에 친구들의 얼굴도 보고 목소리도 들으면서 수다를 떨고 나니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몇 년에 한 번씩 만나고 가끔 통화하는 친구들이지만.. 바로 어제 만났던 것처럼 전혀 어색하지도 않고 얼굴만 봐도 웃음이 피어오르는 그런 친구들이다.




이 친구들은 고등학교 동기들이다.


어렸을 때 가정형편이 좋지 못했던 나는 빨리 사회에 나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중학교를 졸업하고 인문계가 아닌 실업계 고등학교로의 진학을 원했다.

원래는 제도 설계가 적성에 맞는 것 같아 공고에 가길 원했는데.. 담임선생님께서 나중에 대학교에 진학하려면 공고보다는 상고가 수월하다며 굳이 상고를 가라고 추천하셨다.

당시 마땅히 대학교 진학에 대해 조언을 받을만한 사람도 없었고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그 말이 맞는듯하여.. 그렇게 상고로 진학하게 되었다.

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졸업하신 그 학교이다.


상고를 졸업할 무렵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 말씀대로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길이 열렸는데.. 바로 고교 동창회장님이 경영하시는 회사에 입사하는 것이었다.

당시 동창회장님은 해마다 고교 후배들 10여 명을 선발하여 자신이 경영하는 회사의 직원으로 채용하고.. 회사를 다니면서 대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장학금도 주고 근무시간도 배려해 주는 특혜를 베푸셨다.

다행스럽게도 나도 거기에 선발되 어린 나이에 돈도 벌고 학자금 부담도 없이 학업을 이어가는 정말 큰 혜택을 받게 되었는데.. 얼마전 통화했던 친구들은 바로 그때 같은 길을 걸었던 친구들이었다.

고등학교, 첫 직장 그리고 대학교까지.. 젊은 시절 청춘의 한복판에서 기쁜 일 슬픈 일 어려운 일을 모두 함께 겪으며 진솔한 마음나눴던 소중한 친구들인 것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새로운 직장을 찾으면서 다른 친구들은 꿈을 좇아 모두 서울로 올라갔고.. 나만 부산에서 자리 잡게 되면서 서로 떨어지게 된 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가끔씩 내가 서울에 갈 때나 친구들이 부산에 내려올 때 그리고 집안에 경조사가 있을 때 한번씩 만나는 사이지만.. 만나면 언제나 반갑고 옛날에 함께 늦은 밤거리를 휩쓸고 다니던 추억을 회상하며 한잔 술로 회포를 푸는 여전히 막역한 사이이다.




인생의 전반전을 마치고 후반전을 살면서..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그런대로 모두들 잘 살아온 것 같다.


번듯한 직장에서 나름대로 중요한 일들을 하면서 열심히 살아왔고.. 무엇보다도 여전히 두발로 힘 있게 걸을 수 있고 소주 한두 잔 부담 없이 마실 정도는 되는 건강을 유지하고 있으니.. 지금까지는 괜찮은 인생 아니겠는가?

거기에 세세한 가정사는 잘 모르겠지만 겉보기라도 모두들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있으니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다.


외국계 의류회사의 한국법인 CEO를 하다 지난 7월에 퇴직한 친구가.. 강릉에 아파트 전세를 구해서 와이프와 둘이 때늦은 신혼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곳에서 주변에 경치 좋은 곳으로 놀러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면서 여유를 즐긴다고 한다.

그렇게 한 2년 살다가 또 다른 곳으로 옮길 예정이라고 한다.

난 퇴직 후.. 생각만 있었지 '외지에서 한달살기'도 막상 도전해보지 못했는데.. 그 친구는 퇴직하자마자 바로 실행한 것이다.

역시 회사 CEO 출신이 맨날 남 뒤치다꺼리만 하던 관리부서 출신인 나하고는 달랐다.

그러면서 빈방 있다고 나보고 놀러 오라고 한다.

부럽다~ 친구야~!


서울 친구들이 올해 안으로 부산에 한번 내려오기로 했다고 한다.

그래 친구야~

온천장에서 꼼장어 소금구이랑 양념구이 구워놓고 소주 한잔 하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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