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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Nov 28. 2022

오너와 베프

이야기로 엮는 리더십



A기업의 전략실장은 오너 겸 사장의 대학시절 베프이다.

오너는 그 친구가 공부도 잘하고 똑똑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회사의 실질적인 운영 전반을 넘겨주었다.

오너의 지론은 공부 잘하는 사람이 회사 일도 잘한다.. 였다.

그러다 보니 실제로 조직 직제상으로는 전략실장 본인의 역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사건건 간섭하고 나섰고 오너와의 관계를 잘 아는 직원들은 누구 하나 그의 말을 거역하지 못했다.

직원들 중에 눈치 빠른 친구들은 일찌감치 전략실장에게 줄을 댔고 눈치가 없거나 자칭 소신 있다고 자부하는 친구들은 데면데면하게 지냈다.


연말이 되면 회사 인사팀에서는 직원들의 평가업무로 바빴다. 직원들 각 개인에 대한 평가결과를 토대로 승진이나 연봉 인상을 결정하기 때문에 직원들 입장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시기이기도 다.

그런데 인사팀장이 전략실장과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전략실장은 자기를 따르는 직원들에게 반대급부로 승진도 시키고 연봉도 올려주어야 는데.. 이 인사팀장이 매번 원리원칙을 고수하니 보통 껄끄러운 게 아니었다.


전략실장은 고민 끝에 오너를 꼬드겨 인사제도 컨설팅을 추진하였다.

그럴듯한 구실을 붙였기 때문에 오너도 굳이 반대할 이유를 찾지 못했고.. 결국 전략실장과 개인적인 친분이 두터운 사람이 있는 인사컨설팅 회사에 의뢰하여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추진조직으로 별도 TFT를 만들어 심복 몇 명을 참여시키고 당연히 인사팀장은 배제시켰다.


여기서도 컨설팅을 의뢰하는 회사는 '갑'이고 컨설팅 회사는 '을'이라는 공식이 작용해서.. 회사의 인사제도는 거의 전략실장의 입맛에 맞게 설계되었다.

일이 자기 뜻대로 진행되자 전략실장은 자기 욕심을 채우고 싶어졌다.

베프인 오너가 알아서 자기를 좀 잘 대접해주면 좋았을 텐데.. 이 오너가 또 고지식해서 베프만 잘 챙겨주는 걸 남 보기에 낯간지러워하였다.

그러니 전략실장은 자기 몫을 스스로 챙길 수밖에 없다 생각하였고.. 베프 회사를 위해서 자기가 이렇게까지 생하는데 그 정도는 당연한 권리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였다.


인사 컨설팅 내용 중 평가제도를 정비하면서 조직 내 상대평가 개념을 도입하였고.. 자신이 속한 임원 그룹에 대해서는 임원 그룹 전체 내에서 철저하게 상대평가를 하는 것으로 제도를 뜯어고쳤다.

그리고 매년 임원 평가안 전략실장 본인 맘대로 작성해서.. 임원들에게 훈시 조로 한 마디씩 하는 걸 유일한 낙으로 삼는 노쇠한 회사 경영고문의 검토를 받는 것으로 하였다.

대신 경영고문으로 하여금 일 년에 한 번씩 각 임원들과 면담을 하도록 하여 자칫 자신한테 쏟아질 화살의 방패막이로 삼았다.

이렇게 변경된 제도는 똑똑한 컨설턴트들이 그럴싸하게 잘 포장하였고.. 오너는 제도 설계가 잘 되었다며 흔쾌히 승인을 하였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인사팀장은 한직으로 발령을 받았고.. 인사팀을 장악한 전략실장은 A에서 Z까지 자기 마음대로 했다.


평가에 있어서도.. 회사의 그 해 성적은 죽을 쑤건 말건 전략실장 본인은 매년 최우수 등급을 받았고 전임 인사팀장같이 자기에게 뻣뻣한 임원들은 최하위 등급을 받았다.(집단내 상대평가이므로 집단의 성적에 관계없이 최우수 선수와 최악의 선수가 나온다)


평가결과에 따른 보상도 우수등급으로 갈수록 또 하위등급으로 갈수록 그 격차가 더 벌어지게 설계하여(취지는 그 흔한 '동기부여'라고 한다).. 전략실장 본인은 매년 평균치배에 해당하는 연봉 인상률을 적용받았고 성과금도 두배나 가져갔다.

당연히 전략실장의 눈밖에 나서 최하위 등급받는 임원은 연봉 동결에 성과금도 없었다.


결론적으로 보면 다른 임원들에게 돌아갈 보상을 자기가 가로챈 것이나 다름없었으나.. 회사 전체적으로 보면 돈이 더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라는 터무니없는 명분을 찾았다.

그리고 일도 제대로 안 하는 임원들에게 갈 돈을 열심히 일하는 자기가 가져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결론지었다.


서슬 퍼런 전략실장에게 평가 결과에 이의를 간 큰 사람은 없었고 혹시라도 누가 인사팀에 물으면.. '나는 모른다. 경영고문이 그렇게 결정하였다'고 설명하라고 시켰다.


노쇠한 경영고문은 훗날 이렇게 회고하였다.

"내가 임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일을 잘했는지 못했는지 알 수가 없는데 어떻게 평가를 하겠노? 그냥 전략실장이 가져온 보고서를 따를 수밖에..."




그 뒤로 전략실장은 한걸음 더 나아가 조직에 군기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면 베프인 오너를 이용하였다.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아서 그럴듯하게 스토리를 엮어 오너에게 일러바쳤다.

그리고 임원들을 집합시켜 놓고 오너로 하여금 한바탕 경을 치도록 하였다.


그런 일이 몇 번 거듭되자 오너는 베프의 말만 믿고 회사의 대다수 임직원들이 능력도 없는 데다 제대로 일을 할 의욕도 없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회사 임원들의 얼굴을 대할 때면 짜증부터 났고.. 얼굴에 싫은 빛이 역력한 오너를 대하는 임원들은 더욱더 언행에 주눅이 들 수밖에 없었다.

날이 갈수록 오너의 눈에는 그들이 더욱 못난 자들로 보였다.


오너는 그런 못난 자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베프가 정말 고맙게 생각되었고.. 믿을 사람은 너밖에 없다며 전폭적인 신뢰를 보였다.

이제 전략실장은 회사에서 명실상부한  2인자가 되었고.. 아니 회사를 좌지우지하는 데에는 오히려 오너를 제치고 1인자가 된 셈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회사는 점점 더 망가져 갔지만 신경 쓰는 임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오직 회사에 한 사람 전략실장의 눈치만 잘 보면 그럭저럭 지낼만했다.

심지어 젊은 직원들 사이에는 무조건적으로 전략실장을 신봉하는 팬덤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이제 연말이다. 연말이 되면 회사 인사팀에서는 직원들 평가준비로 바쁘다. 평가결과를 기준으로 승진도 하고 연봉 인상도 하기 때문에 직원들 입장에서도 중요한 시기이다.

과연 회사의 평가제도는 제대로 설계되어 있을까? 그 평가제도는 직원들을 위한 것일까? 그렇다면 직원들은 평가결과에 만족할까?

위의 사례에서 보듯이 평가제도란게 직원들을 무시한 채 일부 권력자의 입맛에 맞춰 포장만 그럴듯하게 조작되기도 한다. 그러다 권력자가 바뀌면 그의 입맛에 맞게 또 시간과 돈을 들여서 다시 조작을 시도 한다.

실제로 많은 회사에서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회사를 망쳐먹기 위해서 평가를 하고 있다. 평가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회사에 실력자가 바뀌고 뭔 제도를 새로 도입한다고 하면 먼저 돋보기를 들고 살펴볼 일이다.



* 이 글의 내용은 특정회사나 특정인물과 관련이 없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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