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 일인가 하고 가까이 가보니 어떤 할아버지가 강아지를 데리고 있었는데.. 눈이 부시게 하얀 털에 앙증맞은 빨간 조끼에 빨간 목끈을 맨 아주 귀여운 녀석이었다.
"야~ 새로 나온 강아지다!"
"아이 귀여워~!"
"그런데 귀가 좀 큰데? 앞발도 짧고..."
"아마 신품종인가 봐?"
초등학교저학년쯤 되는 꼬마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어느 토끼농장에 덩치가 크고 눈이 빨간 토끼 한 마리가 있었는데.. 이 놈이 성깔도 있고 공격성도 강해 다른 토끼들을 무척이나 괴롭혔다.
그런데 요 놈이 또 영악하기도 해서 농장주인이 보는 앞에는 얌전하기 그지없다가 주인이 없을때에만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평화로운 토끼농장을 원했고 또 그런줄로만 알고 있었던 농장주인은 어느 날 우연히 그 눈 빨간 놈이 만행을 저지르는 현장을 목격하고는 깜짝 놀랐다.
그놈이 자기 앞에서만 얌전한 체하면서실상은빨간 눈을 요리조리 굴리며 눈치를 본다고 생각하니 농장주인은 그놈이 교활하기도 하고 매우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잡아서 혼을 내주려고 했는데그놈 행동이 어찌나 민첩하던지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고.. 또 점잖은 자신이 토끼 한 마리 때문에 허둥거리는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 주기도 싫었다.
농장주인은 사냥개를 투입해서 그놈을 제거하기로 했다.
잘 훈련된 사냥개는 단박에 그 눈 빨간 토끼를 물어 죽였다. 그러나 사냥개 눈에는 그 토끼가 그 토끼인지라 그놈 말고도 여러 마리를 잡았다.
그리고 농장주인에게 잡은 토끼를 물고 와 칭찬해 달라고 컹컹 짖으며 꼬리를 흔들었다.
애꿎은 토끼들까지 여럿을 잃게 된 농장주인은 칭찬은커녕 화를 버럭 내며 사냥개를 내쫓았다.
토끼농장에 평화가 찾아왔다. 그러나 그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다른 놈들을 괴롭히는 또 다른 눈 빨간 토끼가 등장하였고 그놈은 먼저번 놈과 똑 같이 빨간 눈을 굴리며 농장주인 눈치를 보다가 틈이 생기면 다른 토끼들에게 달려들곤 하였다.
농장주인은 화가 났다.
이 놈들은 왜 이렇게 눈이 벌게 가지고 설쳐대는겨~?!
농장주인은 또 다른 사냥개를 투입하였는데.. 그놈 눈에도 그 토끼가 그 토끼로 보였고.. 역시 여럿을 물어 죽였다.
농장주인의 성화에 토끼들은 번식도 못하고 사냥개에게 물려 죽으면서 그 수가 현저하게 줄고 말았다.
이웃에 사는 한 노인이 토끼농장을 방문했다가 농장주인의 이야기를 듣고 한마디 하였다.
"흰 토끼는 원래 눈이 빨간겨~!"
A기업의 오너는 한 번씩 회사에 칼잡이를 내려 보냈다.
조직에 긴장을 주어 직원들이 나태해지는 걸 방지하고 또 직원들을 괴롭히는 눈 빨간 토끼를 솎아내고자 함이었다.
그런데 이 칼잡이가 대개는 허명(虛名)만 높은 개망나니 같은 작자여서 적절하게 조직에 긴장을 주고 눈 빨간 토끼나 솎아내는 일에는 애당초 관심이 없었다.
일단 오너가 말한 눈 빨간 토끼의 머리를 댕강자른 다음.. 조직을 리뉴얼한다는 미명 아래 자기에게 술대접을 하고 머리를 조아리는 자들은 그게어떤자들인가에 상관없이 감투를 하나씩 주고.. 옳은 소리를 하거나 자기에게 뻣뻣한 자들에게는 가차 없이 칼을 휘둘렀다.
칼잡이가 오너에게 말했다.
"조직 윗자리에는 그놈 외에도 온통 눈 빨간 토끼 천지였습니다. 제가 그 놈들을 모조리 날려버리고 그동안 그들의 등쌀에 숨도 제대로 못 쉬던 착한 토끼들을 발탁해 놓았으니 이젠 조직이 제대로 잘 굴러갈 겁니다."
오너는 칼잡이의 공로를 크게 치하하고 상금을 듬뿍 내렸다.
그런 일이 몇 번 거듭되자.. 회사 내에는 생식기능이 거의 퇴화된 수토끼랑 늙은 암토끼만 남게 되었고 개중에는 이 집 토끼가 아닌 척하는 놈들도 있었다.
오너는.. 조직이 나태해져서 성과가 안 난다며 또 다른 칼잡이를 물색하기 시작하였다.
회사를 망쳐먹는 건 무능한 오너와 경영자이고 실제로 성과를 내는 건 종업원이다. 그러나 많은 오너와 경영자들이 잘되면 자기가 잘나서 그런 줄 알고 못되면 종업원 탓을 한다. 착각은 자유라지만 그 결과는 쓰다. 훌륭한 오너나 경영자의 첫 번째 덕목은 사람을 보는 안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