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다. 비가 내리면 왠지 마음이 허전해지고 비 내음과 몸에 닿는 비의 감촉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특히 오늘같이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면 빗속을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우산 걸쳐 쓰고 집 앞 하천변으로 나갔다. 엊그제만 해도 심심했던 유채밭에 노란 꽃이 활짝 피었다. 왼쪽엔 벚꽃 오른쪽엔 유채꽃. 그 사이 초록색 보행로를 따라 한적한 길을 걷는다.
봄비가 뺨이며 손등이며에 와닿고, 비를 머금어 무거워진 꽃송이가 하나 둘 꽃잎을 떨군다. 분홍 꽃잎이 바람에 날린다. 그러나 가지에는 여전히 수없이 많은 꽃송이가 달려있다. 절정이다.
누군가 앉아서 쉬어갔을 벤치에 분홍꽃비가 내렸다. 아니 꽃눈이다. 바닥에도 빼곡하게 쌓였다. 막 떨어진 꽃잎이 여전히 예쁘다. 사람들이 밟지 않으면 그 모양 그대로 더럽혀지지 않을 것 같다. 그 모습이 아까워 일부로 돌아서 걸었다.
햇살 가득한 봄날, 햇볕에 반짝이는 벚꽃길도 예쁘지만, 봄비가 촉촉하게 적셔주는 꽃길도 운치가 있어서 좋다.
그 감성이 아까워 집으로 향하지 못하고 카페에 들렀다. 따끈한 아메리카노를 앞에 놓고 창밖을 응시한다. 차가 지나가고 우산을 받쳐든 사람들이 지난다. 모두들 여유 있는 모습이다. 커피 한 모금을 마신다. 은은한 향과 익숙한 쓴맛이 좋다.
이럴 때 책이라도 한 권 있었으면. 달콤 쌉쌀 멜로도 좋고, 가슴 시린 이별이야기도 좋고,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시집도 좋을 텐데. 어쩌면 조금만 더 어렸다면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감정은 일찌감치 메말라 버리고, 핸드폰을 열어 요즘 꽂힌 AI 소설을 끄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