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월간 샘터 기자님과 사진작가님이 우리 집을 찾았다. 샘터에 '아빠가 차린 식탁'이란 코너가 있는데, 거기에 실을 인터뷰와 빵 만드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사진작가님은 각종 촬영장비가 든 커다란 트렁크를 힘들게 들고 오셨다.
그날 내가 만든 빵은 바로 단팥소보로빵. 만드는 과정이 오밀조밀하고 완성된 빵모양도 그럴듯해 사진빨이 서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여러 번 만들어보았던 빵이라 나름 자신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 카메라 앞이라 그런지 마음먹은 대로 매끄럽게 되지는 않았다. 빵이라는 게 1차 발효, 2차 발효를 거치며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일이다 보니 마음이 급했던 것도 한몫했다.
정신없는 세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만드는 과정은 삐뚤빼뚤 했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구워진 빵은 적당한 구움색에 모양도 그럴듯하게 나왔다. 시식을 하는 작가님께서도 맛있다고 해주셨다. 긴장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단팥빵에는 당연히 흰 우유지. 어릴 적 추억을 떠올리며 흰 우유에 빵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며 인터뷰를 이어 나갔다. 글이 실릴 코너 주제답게 지금까지 가장으로서 열심히 살았던 이야기, 퇴직 후 빵을 만들게 된 계기, 빵에 얽힌 스토리 그리고 앞으로의 희망사항 등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이어졌다.
내 이야기가 샘터에 실린다고 했을 때, 아내는 '그 유명한 책에 실린다고?' 하며 깜짝 놀랐었다. '어, 내가 빵 만드는 게 이야기가 된다니까!' 나는 으쓱하며 대답했다. 내가 퇴직 후 빵 만드는 걸 별로 탐탁하게 생각지 않았던 아내에게, 그래도 샘터 덕분에 조금은 체면치레한 셈이 되었다.
월간 샘터는 1970년에 창간된 국내 최장수 교양지이다. 은행이나 웬만한 사무실에 들렀을 때, 한 두 권은 쉽게 눈에 띄는 책이었다. 나도 한때 정기구독을 하며 즐겨 읽기도 하였다. 서민들의 진솔한 이야기에 공감도 하고, 가슴 아픈 사연에 눈물을훔치기도 하고, 남을 배려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에 훈훈함을 느끼던 책. 그것이 샘터였다. 내가 애정하는 에세이중의 에세이, 장영희의 '내 생애 단 한번'과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도 작가가 월간 샘터에 기고했던 글을 모은 책이다.
며칠 전 월간 샘터 6월호를 우편으로 받았다. 그리고 숨죽이고 열어보았다. 기자님께서 글도 잘 써주시고 사진작가님께서 사진도 잘 찍어 주셔서 만족할만한 기사가 실려있었다. 특히 기자님께서 요즘 나와 딸이 함께준비 중인 북카페 책방온실도 소개해 주셔서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나에게 있어서 빵을 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단순히 여가 시간을 채우기 위한 취미일까? 회사를 퇴직하고 뭘 할까 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빵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무엇인가 작은 것이라도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30여 년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내 관리업무만 하다 보니 늘 남들 뒤에서 뒤치다꺼리에 급급했었다. 사람들이 저질러놓은 일 뒷수습하고, 제대로 못하는 일 쫓아다니며 잔소리하고. 그러면서도 잘하면 본전이고, 대부분 남들 잘못에 제대로 관리 못한다고 책망을 들었다. 한때 직원들이 재미를 느끼며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조직문화를 만들어보자고 열과 성을 다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허황된 꿈이고 보스의 생각은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정말 크게 낙담을 하였다. 믿었던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도 컸다.
퇴직 후, 잠깐의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학원에서 빵을 배우며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다. 빵을 만들 때만큼은 잡념을 잊었고 마음이 편안하였다. 거기에 더불어 모양을 갖추어 나오는 빵을 보면 그게 또 기쁨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학원 교육을 마친 후에도 집에서 이것저것 만들어보며 홈베이킹을 취미생활로 굳히게 되었다. 빵은 내가 힘들어하는 시간을 짧게 끊어주었고, 다시 힘을 내어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 주었다.
기다림.
빵을 만드는 것은 발효라고 하는 기다림의 연속이다. 그것을 건너뛰면 빵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인생도 그런 게 아닐까? 앞만 보며 바쁘게 살다가 고비를 만났을 때,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갖는 것. 그리고 욕심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할 힘을 모으는 것. 빵을 만들며 그 이치를 조금은 깨달았다.
세상에 기다림 없이 되는 것은 없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그리고 또 하나. 열심히 하다 보면 다음엔 작가로서, 소설가로서 인터뷰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그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