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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호 Sep 10. 2024

삶이 고난이지만 그 고난이 또 살아가게 한다



道行之而成

도행지이성


길은 걸어가는 대로 완성된다. -장자(莊子)-



원래 사람의 팔자는 좋고 나쁨이 없다고 합니다. 하늘이 각자에게 각각의 팔자를 부여하였는데, 다 견딜만하고 살만한 길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팔자대로만 살면 '그런대로 잘 살았네' 하는 끝맺음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고, 내 팔자야!' 하며 신세타령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본래 타고난 팔자에는 문제가 없지만, 살면서  팔자가 꼬이는 데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팔자는 왜, 어떻게 꼬일까요?


주역(周易)에 따르면 사람은 64() 중 하나의 괘를 받아 인생을 살면서 여러 다른 괘를 만나된다고 합니. 바로 인연(因緣)입니다. 다른 사람이나 사물과의 관계에서 만나게 되는 연(緣). 거기에는 좋은 관계도 있고 나쁜 관계도 있습니다. 양쪽 다 좋을 수도 있고, 한쪽에는 좋고 한쪽에는 나쁠 수도 있고, 양쪽 다 나쁠 수도 있습니다. 나에게 나쁜 인연, 이를 악연(惡緣)이라고 합니다. 바로 이 악연이 거듭되면서 나의 팔자가 꼬이게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얻게 되는 결과를 '길, 흉, 회, 린' 네 가지로 구분한다고 합니다. '길(吉)'은 바라는 바를 얻은 경우, '흉(凶)'은 얻지 못한 경우, '회(悔)'는 얻긴 얻었는데 마음에 걸리는 것이 남는 경우(미련, 아쉬움, 회환 등), '린(吝)'은 얻긴 얻었는데 그 결과가 미흡한 경우입니다. 그런데 이 중 길과 흉만 놓고 보면 대략 70대 30의 비율이라고 합니다. 길이 흉보다는 두 배나 많으니, 대부분의 인생길이 살만한 셈입니다.


어쨌든 하늘은 왜 사람의 팔자에 길과 흉을 섞어 놓았을까요? 좋은 일만 있으면 다들 인생을 평온하고 행복하게 살 텐데 말입니다. 단지 하늘의 심술일까요? 주역에 그 원리가 나와 있습니다.


太極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 八卦定吉凶, 吉凶生大業


태극양의를 낳고, 양의가 사상을 낳고, 사상이 팔괘를 낳고, 팔괘는 길흉을 정하고, 길흉이 대업을 낳는다. -계사상전(繫辭上傳)-


'길흉이 대업을 낳는다.' 이것이 길흉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여기서 대업이란 천지창조를 말합니다. 즉, 천지창조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서 길흉이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다 하늘의 뜻인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하늘은 가득 찬 것을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길흉을 섞어 놓았다고 합니다. 사실 예로부터 내려오는 말 중에 그런 예를 수도 없이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부유한 집은 손이 귀하고 / 자식 많은 집은 먹고사는 게 걱정이고 / 높은 벼슬아치는 영락없는 바보이고 / 재능 있는 사람은 발휘할 자리가 없고 / 아비가 아끼면 자식 놈이 탕진하고 / 아내가 슬기로우면 남편이 어리석고 / 미인박명, 천재요절이고 / 달이 차면 번번이 구름에 가리고 / 꽃이 피면 바람이 불어 망쳐 버리고 등등.


이렇듯 하늘은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항상 부족함을 남겨 놓는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그 부족함을 채우려고 노력하게 합니다. 그게 또 사람들이 인생을 살아가는 의미가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원래 사람의 마음은 모가 났다고 하였습니다. 튀어나온 부분이 있고, 패인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튀어나온 부분은 더 도드라지게 하고, 패인 부분은 메우면서 더 큰 동그란 원을 만들려고 합니다. 하늘이 심어 놓은 그러한 본성이 우주의 삼라만상이 펼쳐지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이 됩니다.



사람의 팔자는 좋고 나쁨이 없고, 팔자가 꼬이는 게 문제라고 하였습니다. 각자의 팔자대로 열심히 살면 모두가 살만한 세상이 될 텐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악연(惡緣)을 만나면서 팔자가 꼬이기 시작하는데, 그 근본 원인은 바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비롯된다고 합니다. 게으름, 욕심, 집착이 바로 그것입니다.


게으름 대하여,


하늘은 본디 사람들이 제 팔자대로 열심히 살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게으름을 피우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도망치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이 자신을 망치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남의 팔자까지 꼬이게 합니다. 남의 인생을 망쳐 놓습니다. 하늘은 그런 사람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吉凶者 貞勝者也

길흉이란 정()함이 이기는 것이다. -계사하전(繫辭傳)-


여기서 '정(貞)하다'는 말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고 처음에 품었던 뜻을 굳게 지킨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따라서 흉운에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는 마음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이기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 이 세상 이치인 것입니다.


하늘이 내려 준 팔자대로 살면 되는데, 그러면 그 팔자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단순합니다. 그것을 알려고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무지(無知)도 게으름에서 비롯됩니다.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 게으름이 팔자를 꼬이게 합니다. 나의 본성과 기질은 어떠하고, 무엇을 조심하고 경계해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나의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무엇을 남겨야 할까?' 하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서 늘 생각하고 공부하고 가슴에 품어야 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살아내야 합니다. 무엇이든 시련을 거쳐야 단단해집니다. 삶이 고난의 연속이지만 그 고난을 거치면서 단단해지고, 다시 살아가게 하는 힘을 얻게 됩니다. 하늘은 그렇게 고난을 뚫고 나가는 사람들이 이기도록 이치를 정해놓았다고 합니다.


욕심에 대하여,


'분수껏 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 그릇을 알고 그 이상으로 욕심을 내지 말라고 합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욕심을 부리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이 또 자신은 물론 남의 팔자를 꼬이게 하고, 남의 인생까지 망쳐 놓습니다. 하늘은 그런 사람들 역시 용서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벌을 내린다고 합니다.


上九亢龍有悔

용이 너무 높이 날아오르 후회가 있다. -주역 건괘(周易 乾卦)-


땅을 기어 다니던 이무기가 비룡(飛龍)이 되어 하늘을 납니다. 그렇게 하늘을 날며 분수껏 지내면 되는데 욕심을 냅니다. 더 높이, 더 높이 날아오릅니다. 이를 항룡(亢龍)이라고 하는데, 분수를 모르는 용입니다. 결국 하늘의 벌을 받고 바닥으로 추락해버리고 맙니다.


하늘로 높이 날아올랐다가 태양열에 밀랍으로 붙인 날개가 녹아 떨어져 바다에 빠져 죽는 이카로스 이야기나, 하늘에 닿으려고 바벨탑을 쌓았다가 하늘의 노여움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 고대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분수 넘치는 욕심을 경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을 열심히 살되, 욕심을 경계하고 분수껏 살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집착에 대하여,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정성을 다하면 하늘이 감동한다는 뜻입니다. 비슷한 말로 '간절하게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둘 다 사람이 최선을 다해서 무언가가 이루어지기를 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오로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다음은 하늘의 뜻입니다.


盡人事待天命

진인사대천명


중국의 고전 삼국지에서 제갈량이 한 말이라고 합니다. '제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쓴다 해도 목숨은 하늘의 뜻에 달려 있으니 하늘의 명을 기다릴 뿐입니다.' 그 유명한 제갈량이 그럴진대, 일반 범인(凡人)들이야 말해 뭐 하겠습니까?


'집착(執着)'은 '어떤 것에 대하여 얽매여 계속해서 마음을 쓰는 것'을 말하는데, 그 근간은 이기심입니다. 욕심입니다. 하늘은 꽉 찬 것을 싫어한다고 하였습니다. 한 사람에게 다 채워주지를 않습니다. 어떤 바라는 것이 있을 때, 그것이 소원을 넘어서 집착이 되어버리면 하늘은 절대 들어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히려 방해를 하여 이루어지지 않게 한다고 합니다. 하늘이 방해하고, 땅이 방해하고, 귀신조차훼방을 놓는다고 합니다. 될 것도 그르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라는 것이 있을 때, '이걸 이루지 못하면 내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식의 집착은 아주 위험하다고 합니다. 바로 하늘을 노하게 하는 태도입니다.


天道虧盈而益謙  人道惡盈而好

도휴영이익겸  인도오영이호겸


하늘의 도는 가득 찬 것을 이지러지게 하며 겸손한 데는 더하고, 사람의 도는 가득 찬 것을 미워하며 겸손한 것을 좋아한다. -주역 겸괘-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되 결과는 하늘에 맡겨야 한다고 합니다. 바로 겸손입니다. 욕심을 비우고, 마음을 비우면 하늘이 이루어 준다고 합니다. 겸손한 자는 하늘이 돕고, 땅이 돕고, 귀신까지도 돕는다고 합니다.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면 내 정성을 하늘이 알아준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내 정성이 부족한 것입니다.


인생길에서 수많은 고난을 만나게 되지만, 그 고난이 또 살아가게 합니다. 게으름, 욕심, 집착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주어진 팔자대로 열심히 살면, 그래도 살만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 이 글은 강기진著, '오십에 읽는 주역(周易)'에 나오는 내용을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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